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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05. 2021

'여직원 좀 바꿔주세요'

기업 조직의성차별

'거기 여직원 좀 바꿔주세요'


거래처와 이런 식으로 통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보다 덜하지만 아직 있다. 성별이 여자인 직원한테만 볼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다. 용건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남자' 직원의 시간을 빼앗기엔 하찮은 사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여직원'은 대개 사무실에서 보조적인 서무 업무를 맡아하는 여자 직원을 뜻한다. 여직원은 성별 포함 직무까지 함축하는 업계의 편리한 코드가 되었다. '여자 친구'가 성별이 여자인 친구의 통칭이 아닌 것과 같다.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한 80-90년대, 회사에서 여자 직원의 업무와 직급은 대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업무 전산화가 월급봉투 찍어내는 수준이었을 때라 서류 작업에 사람 손이 많이 갔다. 공문서와 선적 서류는 손으로 쓴 초안을 다시 타이핑해서 완성되었다. 대기업에서는 고졸 여직원을 따로 뽑아서 타이핑이나 보조업무에 활용했다. 그들은 격무에 시달리다 결혼과 동시에 자동으로 퇴직했다. 옛날 얘기다.


이제 직장에서 성별을 가지고 직무와 승진에 차별을 두지 못하게 되어있다. 정부도 솔선해서 여자 간부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중앙부처 과장급과 공공기관의 임원중 여자의 비율이 20%를 넘어서고 있다.


여성가족부

하지만 기업 현장은 좀 더디다.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직급이 올라가면서 여자의 비율은 현격하게 줄어든다. 2020 년 상장법인 전체 여자 임원의 비율이 5%가 안된다고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3월 발표한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100 점 만점에 25점으로 9년 연속 OECD 꼴찌를 하고 있다.


유리천장: 조직에서 일정 서열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유하는 말.


우리 기업 조직에 잔존하는 성차별을 가부장제의 전통으로 변명하기엔 궁색하다.

요즘 가정에서 돈은 남편이 벌어와도 쓰는 건 부인 소관이다. 돈 쓰는 사람이 실세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에게 물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역할의 분담으로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체력이 약한 여자가 하기 어려운 일자리는 많이 줄었다. 오늘날 성별에 배타적인 분야는 조폭이나 유흥업소 정도가 아닐까 한다.


출산의 공백 등을 우려해 요직에 여자 받는 걸 꺼려하는 관리자들이 있다. 우리나라 여자의 고용률은 출산 시기인 삼십 대에 푹 꺼졌다가 40대에 좀 올라가다 만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갑자기 다음 주일부터 쓰겠다는 여자 직원은 없다. 미리 여유를 가지고 대비할 수 있으며 공백의 충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남초 사회에서 여자와의 소통에 불편해하는 관리자도 꽤 있다. 수직적인 서열 질서에 매끄럽게 편입하지 못하는 여자 부하가 신경 쓰인다는 얘기다. 부부간에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




여자 직원의 승진에 상한선을 그어놓고 제동을 거는 회사에,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갈 때 눈치를 봐야 하는 회사에,

과연 재능 있는 여자 인재가 들어오고 싶겠는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교적 조직 내 성 평등이 보장되어 있는 공공기관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여성 법조인도 전체의 30% 정도가 된다고 한다. '남성 범죄인'은 전체의 80% 정도.

판사도 여자, 검사도 여자, 변호사도 여자인데 범인만 남자인 재판이 실제로 벌어진다.


기업의 성패는 인재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데서도 갈린다.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인재 풀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기업의 경쟁력엔 한계가 있다.


기업은 가장 실리적이고 민첩한 집단이다. 기업에서 성공에 필수적인 여성 자원의 운용 개선에 미적대는 이유가 궁금하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 인력의 활용을 직원 복지나 정부 정책에 대한 협조 정도로 보는 경영자의 시각에 있다.


지금 시대의 경제는 근육보다 지적 역량이 중요한 지식산업이 주도하고 있다.

여성 인력의 현명한 활용이 성차별의 사회 문제 해결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영실적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인식하는 기업이 성공한다. 그런 기업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사우디 정부가 여자의 운전을 허용하고 난 후에 자동차 경기가 살아나고, 외국인 운전사에게 썼던 연 4조 2000억 원의 임금을 아끼게 되었다고 한다. 보편적 가치가 돌고 돌아 경제적 실익으로 돌아온다.



OECD 2020 여자 고용률 : OECD 홈페이지


선진국은 국민소득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불과 2년 전에 여자의 운전을 허용한 부국 사우디를 선진국에 넣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여성 고용률이 60%에 미달하고 OECD 37국 중 30번째인 한국도 선진국이라고 내세우기는 어색하다.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이 반비례하지 않고 동반 성장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일자리의 90%는 기업에서 나온다. 기업이 주도하면 사상 최저의 출산율과 저조한 여성 고용률을 해결할 수 있다.


정부 부처 중 여성가족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되어있다. 직역하면 성 평등 가족부다. 성 평등을 주관하는 중앙 정부 부처가 따로 있다는 건 이 문제가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 젠더 문제가 첨예하다. 여성이 세력화하고 정치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사회의 변화가 더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편 가르기에 매몰되는 현상은 소모적이고 안타깝다.




구별과 차별은 구별해야 한다.

사람을 성별이나 인종, 종교 따위로 이미 설정된 프레임에 의해 판단하면 부당한 차별이고,

남자 여자가 아닌 개인으로서 재능과 경험, 취향을 반영해서 근거를 가지고 구분하면 정당한 구별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실수하고 핀잔받는 성차별적 언어처럼, 무의식 중에 용인하고 있지만 (합리적인 구별이 결핍된) 차별적인 프레임들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부나 기업이 아닌 사회 구성원 또는 소비자가 인식하고 따져 물어야지 바로잡을 수 있다.


기업 임원중 여자가 극소수인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쪽 성별이 압도적인 직군도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 납득할 만한 '구별'의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여객기 승무원과 TV 기상 예보 진행자에 유독 젊은 여자가 많다. 각각의 직무와 특정 연령대의 성별 사이에 '프로페셔널한' 연관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성차별뿐 아니라 성 상품화까지 의심할 수 있는 사례다.


성 평등은 정부, 기업 그리고 사회가 참여해서 양성 양방향으로 균등하게 유지하고 감시해야 완성될 것 같다.






혹시 이 글에서 몇 군데 쓰인 '여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가 많다면 우리 사회에서 '여자'란 단어가 이미 비칭卑稱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를 구분하는 포괄적이고 평이한 '남자''여자' 중에서 '여자'만 이상하게 들리면, '여자'를 수식해온 남존여비 개념에 의해 여자들뿐 아니라 '여자'라는 단어도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닐까요?


단어 '여자'와 왜곡된 개념을 분리하고 복구시켜 원래의 뜻으로 불러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그러지 않고 '여자'라는 말을 되레 화장실이나 구분하는 용도로 방치한다면 무책임한 2차 가해가 됩니다.


학대받고 고통받은 낱말을 밀쳐내고 엉거주춤 획일적으로 갖다 붙이는, 성性의 측면만 강조한 '여성'이라는 말이 바로 성차별적이고 비겁한 언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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