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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28. 2021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보는 것

꼰대가 꼰대에게



대학생 조 모 씨(25)는 겨울 방학 동안 집에서 가까운 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한 노인과 시비가 붙었다. 한 노인이 열람실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자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 노인은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 고 하면서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조 씨는 도서관 대신에 커피숍이나 카페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고령화 사회로 급속하게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도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 등으로 노인 혐오 문제가... 이하 생략
아시아 경제 2020.1.18



작년 어느 일간지의 기사다. 기사 내용으로만 보면 노인 혐오라기보다는 노인이 혐오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게 맞다.


도서관은 온갖 종류의 도서 문서 기록 따위의 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요즘은 본래의 용도와 좀 다른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입시생, 취준생, 고시생 등 다음 단계 도전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장소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학생이라는 뜻에서 생生 자가 붙는 것 같은데 고생苦生의 생자와 겹쳐 들리면서 안쓰럽다. 도서관의 책 대신 공간을 빌리는 셈이다. 냉장고를 음식물 저장고로 쓰는 식이지만 현실이다. 


공간을 찾아 도서관에 가는 또 다른 부류가 있는데 퇴직자들이다. 대개 남자다. 소속을 떠나면 소득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직장이 제공해 주던 공간도 따라 없어진다. 그 공간이 독방일 수도 있고 책상일 수도 있다. 재직 시 자신을 구속하면서 숨 막히게 했던 공간이 회사를 떠나니 아쉬워진다.


그렇다고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일본에서는 정년퇴직 후 집에 있는 늙은 남편을 '누레오치바 濡れ落ち葉(ぬれおちば)'라고 부른다던데 젖은 낙엽이라는 뜻이다. 쓸어내도 착 달라붙어 안 떨어지는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뜻으로 노인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이다. 이런 소리 안 들으려면 집에서 나와야 한다.


직장과 집에서 내동댕이 쳐진 퇴직자 중에 개인 사무실을 차릴 만큼 여유가 있는 이는 드물다. 대다수는 산과 도서관으로 향한다. 명퇴든 은퇴든 직장을 떠난 50-60대의 퇴직자들에게 도서관은 이렇게 사무실 대용이 된다. 도서관에 와서 재취업을 위한 공부나 자기 계발을 위한 독서를 본격적으로 하는 퇴직자들도 있지만 소일 삼아 나오는 사람이 많다.


도서관에서는 이런 두 부류의 이용자들을 열람실이라는 공간에 수용한다. 서가가 있는 자료실과 구별하기 위해 열람실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어색한 이름이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준비생들은 고도의 정숙한 환경을 요구한다. 옆자리의 마우스나 키보드 소리 같은 사소한 소음에도 신경이 거슬린다.


반대로 도서실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퇴직자들은 왔다 갔다 이동이 잦고 부산하다.


각종 통신 연락을 스마트폰에 의존하므로 거기서 발생하는 소음도 무시 못 한다. 이어폰을 꼽고 졸다가 전화라도 오면 갑자기 민첩해진다. 열람실의 좁은 책상 사이를 비집고 튀어 나가면서 이미 대화를 시작한다. 심지어는 앉은자리에서 통화를 끝내는 이도 있다. 통화 내용은, 뭐하고 지내느냐는 안부 전화 또는 모임 시간 삼십 분 앞당기자는 '하나도 급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친구들한테서 오는 전화가 성가셔서 대충 제끼기도 하고 모임도 띄엄띄엄 나가더니 이제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훅 밀려오는 외로움에 한 통의 전화도 반갑다.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결례에 둔감해지거나 상대방의 너그러운 이해를 기대한다. 내가 평생 낸 세금으로 지은 시설에서 이 정도쯤이야 하는 배짱도 생겨 어쩌다 누가 뭐라고 하면 대번에 '요즘 껏들' 하면서 노여워진다. 그러다가 위에 인용한 기사 같은 일이 벌어진다.


노인의 굼뜬 행동 정도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인내해 주지만, 노인의 무례를 한 평생 사회에 기여한 보상의 일부로 포용할 만큼 우리 사회가 너그럽지 않다. 오히려 노인 혐오를 부채질할 뿐이다.


퇴직자가 사회에 기여한 과거의 업적을 인정받는 길은 평생의 활동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현재에 활용하는 것이다. 네이버나 구글에서는 디지털 데이터만 검색할 수 있다. 세상에는 아직 데이터로 변환되지 않는 생생하고도 가치 있는 정보가 무수히 많다. 퇴직자들의 뇌리에 각인된 아날로그적 정보는 인터넷에 뜨지 않는다. 퇴직자들은 경험이라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엔진이다. 엔진은 혼자서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가 그 성능을 인정하고 운용해야 한다.


세대별로 활동하는 장소가 갈리는 요즘 세상에 도서관만큼 남녀노소가 골고루 공유하는 공간도 드물다. 이용 목적 또한 다르므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세대 갈등의 축소판이 될 수 있다. 한쪽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직업을 찾고 있고, 다른 한쪽은 사회 활동을 마치고 직장에서 철수한 집단이다. 생애 주기에서 대척점에 있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두 그룹이지만 촉매가 있으면 어울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도서관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어쩌면 내가 수십 년 봉직하고 나온 바로 그 직장에 들어가려고 몇 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인터넷을 치면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직장의 문화는 기업 평판 사이트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기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과 적성은 거기 다녀본 사람만 안다. 도서관에서 소통할 수 있는 멍석만 깔아준다면 이용자들 간에 세대를 뛰어넘는 신뢰와 친근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소명에도 근접한다.


공공 도서관은 사회적 안전망의 일부로서 이용자의 정신적 심리적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이 집에서 나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지붕과 벽이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늘어가는 노인의 도서관 이용 실태를 연구하면 도서관이 우리 사회의 노령자 문제 해결에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보는 건?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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