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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n 02. 2021

인터넷과 경쟁하는 노인의 지혜

꼰대가 꼰대에게

퇴직한 후에 지역에서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수료한 다음 배정받은 학교에 나가 한두 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어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중학교 현장 강의 경험이 없는 강사들은 실제 수업도 참관하고 마지막에는 수업 리허설까지 했다. 나름대로 교안에 살을 붙여서 시범 강의를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충격적인 평가를 받았다. 결정적인 지적사항이 왜 자꾸 과거 얘기를 들먹이냐였다.


특강의 주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업이었다. 현대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컴퓨터, 인터넷도 첨에는 반응이 긴가민가 했다는 나의 경험을 덧붙여서 설명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를 입증하는 좋은 사례라고 자신했는데, 무안하게도 그렇게 옛날 얘기 늘어놓으면 애들이 싫어한단다. 당시 강사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던 나의 꼰대식 수업에 제동이 걸렸고 재 심사를 받아야 했다.


수업 시간에 화장하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여학생들하고 '라포르'가 형성돼 수업 분위기가 좋아진 건 성공사례에 해당했다. 나한테 가르치라는 말을 아니었지만 황당했다. 어린아이들이 화장하는 것조차 못마땅한 나다. 결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수업에 몇 번 나가고 나서 중단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들려준 일제시대 때 얘기며 6.25 동란 비화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요새 와서 꼰대라는 말을 부쩍 많이들 쓴다. 정의를 검색해보니까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는데 근래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라고 나온다. 나이 많은 사람을 싸잡아서 부르는 통칭이기도 하다.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도 전에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실업자가 자칭自稱하는 자조적 표현이 되었다. 구직자나 퇴직자처럼 당사자의 의도에 반해 직업이 없는 사람은 백수도 아니고 건달도 아니다.


퇴직한 노인은 자동으로 꼰대와 백수 2관왕에 등극한다. 하는 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류로 찍히면서 집 안팎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유교의 경로사상은 부모에 대한 효도가 사회적으로 확대된 윤리 개념이라고 본다. 이는 단순히 쇠약한 어른들을 배려하자는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연장자의 경험을 활용하는 국정 운영 메커니즘의 일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걸언례乞言禮라는 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나라에서 팔십 세 이상의 노인을 초대해 대접하고 그들로부터 시정할 만한 국가 정책이나 제안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말을 구걸한다는 걸언례의 뜻으로 미루어 볼 때 노인에 대한 접대성 이상이었다고 생각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고전 예기禮記의 문왕세자편에도 '양로걸언養老乞言'이 등장한다. 노인들을 모시고 후손들을 위한 유익한 말을 듣는 공식적인 행사였다.


지금 시대에 와서 노인의 말이 공해 수준으로 전락한 배경엔 서양 문물이 도입되면서 희박해진 경로 의식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노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가치가 절하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존하는 데이터의 90%가 2016 년 이후에 생성되었다고 한다 ( IBM Marketing Cloud Study). 수만 년 인류 사회가 축적한 정보가 수년간 생성한 데이터의 불과 몇% 밖에 안되다는 얘기다. 구글에서는 1분에 400만 건이 검색되고 있다고 한다. 궁금한 게 있다고 동네 경로당 찾아가서 무릎 꿇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모르면 누구에게 물어보기 전에 일단 인터넷에 들어간다.



Photo by Daria Shevtsova from Pexels



사람의 모든 경험을 전산화할 수는 없다. 기업에서도 인적 경험을 디지털 경험으로 변환시키는데 애를 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코로나 시국에 원격 근무를 하다 보니까 직원 간 경험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고 한다. 오직 인적 소통을 통해서만 그 격차를 좁힐 수 있다. 세대 간에도 소통이 필요하다.


지식이 농축되어 원리라는 가닥을 잡으면 지혜가 된다. 노인이 평생을 통해 체득한 지혜는 소중하고 가치 있다. 다만 전달하는 기술이 세련되어야지 인터넷 같은 소스에 밀리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을 성급하게 추상화해서 언성을 높이면 꼰대로 돌아가버린다. '나 때는 말이야..' 어법은 역효과가 난다. 전달할 철학을 설득과 제안의 문법으로 포장해서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불편할 망정 들을만한 잔소리가 된다.


가사가 아무리 좋아도 군가처럼 멜로디가 단조로우면 노래가 안 팔린다. '요즘 애들은 나약해 빠졌어' 같이 꾸짖는 감정이 얽힌 주장은 실속 없이 밥알만 튈 뿐이다.


위에서 인용한 걸언례에 노인을 초청한 또 하나의 동기는 80 넘은 노인들은 두려움이나 이해타산 없이 거침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통하는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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