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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n 11. 2021

약해지지 마

꼰대가 꼰대에게


퇴직 후 얼마 동안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직장 생활 앙코르 공연까지 끝나고 객석이 조용해지자 사춘기가 왔다.


십 대 사춘기 때 이 세상이 살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사유했다면 '60 춘기'엔 세상에 대한 나의 잔존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소싯적에 요즘 아이들 벼슬하듯이 질풍노도급 사춘기를 '행사'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어려서 비실비실 지나간 사춘기가 60대에 다시 찾아왔나 보다.


일단 근로 소득이 중단되었는데 유지비는 더 들어가니 나의 경제적 가치는 마이너스가 되었고,

가족에 대한 부양을 졸업한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는 기회도 역할도 없이, 일방적으로 물어보고 요구하는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렸다.


직장을 다닐 때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수단 가치에 방만하게 가려져 있던 나의 얄팍한 쓸모가 드러났다.

나의 가족적인 가치도 마이너스라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가치의 총합은 음수이고 존재하는데 비용만 들어가는 존재인가?




은퇴한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코로나 시국 전) 여행에 매진하는 사람들, 몇 년 치 여행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귀국하기 무섭게 다음 여행을 준비하느라고 코피 터진다. 

또 다른 부류는 지역이나 종교단체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사회와 가족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직장 생활하느라 못 가본 곳들을 버킷 리스트에서 하나하나 지워가며 다니는 것도 재미있고, 귀한 손주를 남한테 안 맡기고 돌봄으로써 자식 며느리가 마음 놓고 사회 활동하게 도와주는 것도 보람 있는 '여생'의 선용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기대 여명을 고려할 때 오륙 십 대의 퇴직자들이 일과를 여생 선용으로만 채우는 건 좀 이르고 낭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년이 되어 직장을 나오기도 하고, 힘에 부쳐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직장을 떠났다 해서 졸지에 관련 분야에 대한 모든 기술과 지식이 수돗물 끊어지듯이 고갈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노인은 일정한 분야에 대해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견해가 있다. 바로 평생을 통해서 체득한 일가견이다.


그게 전문 지식이나 직업적 경험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우리 사회의 특정한 분야 일수도 있다.


성공을 했든 실패했든 관계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끼처럼 낀 경륜의 가치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냐 따라 달라진다.


가족의 부양 책임이 끝난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을 사용하는 방식과 목적을 달리하면 길이 보인다. 직장이란 틀에서 벗어나서 의무가 아닌 나만의 사명mission을 정립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저명한 대학병원 교수가 퇴직 후 벽지의 보건소장으로 내려가서 의료 사각지대 주민들에게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뉴스를 봤다. 보수報酬와 명예를 뒷전으로 미루니까 새로운 공간이 앞에 열린다. 평생 자동차를 정비하다 퇴직한 사람은 차 엔진 소리만 듣고도 고장 여부를 판단한다.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문을 해주며 정비업체가 강권하는 불필요한 수리를 줄여 주는 서비스를 시작할 수도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된다. 

발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온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있다.

교통을 정체시키고 사고를 유발하는 무질서한 불법 주차는 우리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를 수시로 교대하는 범칙이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승객이 버스를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큰길 한가운데까지 뛰어간다.


세계 10 대 경제 대국의 위상에 모순되는 풍경이다. 단속인력이 부족하거나 지자체장들의 관심 부족 등으로 방임하지 있지만 문화적인 사회생활을 저해하는 사안들이다. 노인들이 나서서 지적하고 단속을 위임받는다면, 어르신으로 대접하며 각종 비용을 부담해 주는 사회에 진정한 어른으로서 밥값의 일부를 갚는 게 된다. 노인끼리 모여 푸념하고 욕을 해봐야 감정만 상하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으로 유명해진 일본의 100세 시인 시바다 도요는 92세 때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해서 99세에 시집을 냈다.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 엔으로 출판한 시집이 무려 150만 부 넘게 팔려나가며 일본 열도를 감동시켰다. 그의 90년 인생의 지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품이다. 생활에 가려져 있었던 재능을 뒤늦게 발견해서 당시 동북부 지진에 지쳐있던 일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사례다.




직장의 정년이 내 가치의 정년은 아니다.


나의 가치는 내가 감정한다. 사회가 용도 폐기 처분한 나를 재평가하고 잔존가치를 발견하여 사회에 기여할 틈새를 찾는 게 바로 가치의 창출이다.


김장을 해서 잘 익은 김치만 먹는 게 아니다. 아삭아삭하고 상큼한 덜 익은 김치도 먹고 푹 익은 묵은지도 쓸 데가 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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