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Jun 23. 2021

세대 간 소통과 불통

꼰대가 꼰대에게


마국 그랜드캐니언 협곡: 시생대 이후 20억 년 동안의 많은 지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유럽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 때 본사와 잘 안 풀리는 일은 전화를 걸어 협의하곤 했는데 통화를 하다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였다.


유럽에서 출근 시간이면 한국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어가서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제 때 퇴근은 못 해도 간식 먹고 야근에 돌입할 시간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의 미세한 차이가 마찰을 일으켰다. 벤치에 앉아있다가 교체 투입된 팔팔한 선수와 전후반 뛰고 연장전에 들어간 탈진한 선수의 체력엔 큰 차이가 있다.


쌍둥이 형제 사이에도 세대 차가 있다는 세상이다. 60대 노인과 20대 청년이 대화하면서 반세기에 근접하는 시차를 인정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그르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속한 유교 문화권은 고 맥락 사회다. 상대방이 나를 많이 알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거시기' 같은 함축적인 표현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동질성을 강조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심지어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웃는 얼굴로 토론하기가 힘들다.


단차가 많은 세대들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맥락과 동질성을 과도하게 기대하면 소통이 불통이 된다. 이제는 일단 다르다는 전제하에 대화를 시작해서 같은 것을 찾아가는 게 반대의 경우보다 안전하다.


청년이 노인에게 좋은 말씀 한 마디 해달라고 자청하는 상황은 요즘 상상하기 힘들다. 대화의 방향은 자연히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흐른다. 양측의 통신장애는 신호를 생산하는 측에서 제거하는 게 순리다.


생산자는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서 포장하고 홍보하고 설득한다. 마케팅에 push - pull 기법이 있다. 요즘 표현으로 밀당 방식이다. 브랜드에 자신이 있으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push 방식이 먹히지만, 식료품 시장의 시식 코너처럼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사고 싶게 만드는 pull 방식이 생명력 있다.


치열하게 보낸 (= 보냈다고 생각되는) 청춘에 대한 자부심으로 점철된 노인의 훈계는 push 마케팅에 해당한다.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된 거품 낀 무용담은 '라떼'라는 신조어로 희화화된다. 소비자를 무시한 일방적인 강매는 상품 가치를 떨어뜨린다.


노인은 도리와 논리 위주로 생각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수용 능력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낌과 이미지 위주로 행동하는 젊은이의 입장을 감싸 안으면서 차분하게 정리된 메시지를 전할 때 그들은 귀를 연다.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글과 영상도 있다. 콘텐츠만 좋으면 효과적인 전달 매체는 많다


노인의 지혜는 과거의 경험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단절된 과거는 하품을 자극하는 옛날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에 수렴하는 과거 그래서 현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과거만이 지혜의 재료가 된다.


현재 진행형 시제에 주파수를 맞추고 현재의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부터 하자. 새로운 문화의 주체는 노인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라는 속담 패러디도 웃어 넘기기 전에 한 번쯤은 그 배경을 생각해 보자.


이주민, 페미니즘, 성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치워놔야 대화의 공간이 생긴다. 공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이래야 되는 것도 없으며,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되는 것도 없다고 했다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논어 이인 편). 동의는 안 하더라도 다른 견해의 존재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유연성을 갖추어야 '현재'와 대화가 된다.


세대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 로서 시대를 기준으로 분절된 집단을 의미한다. 세世는 사람의 한 평생을 뜻하고 대代는 교대한다는 동사의 뜻도 있다. 생멸하는 인간 세상에서 머물다가 후세에 자리를 내주면서 물려줄 자산은 생물학적, 경제적 유산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의 회로에서 학습한 지혜를 남겨주는 의무는 성인聖人에만 국한된 역할이 아니다.




세대 간 통신에서 노인은 을乙이다. 억울할 때도 있다. 유익한 말을 해주고 싶어도 ‘시대에 뒤처지는 사고를 하는 권위적인 구닥다리’라는 신세대 나름의 고정관념으로 발언권조차 얻기 힘들다. 온당한 말도 저들 듣기 싫으면 꼰대의 잔소리로 돌려버린다. 답답하다고 친구끼리 모여 앉아 낮 술 마시며 푸념해봐야 낭비적이다. 식당에서 안 팔린 음식을 식구끼리 자가소비하는 기분은 허탈하다.


을은 뭉쳐야 산다. 연대連帶하라.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다른 책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동물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지구 상에서 대규모로 연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대인 단체 AIPAC(이스라엘 협회)와 총기 협회 NRA가 강력한 로비 그룹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은퇴자 협회 AARP가 미국의 3대 이익 단체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로 치면 노인 협회 비슷한데 미국 내 약 4천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비영리 시니어 단체로서 자신들과 사회를 위해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파편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노인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집약할 연대가 필요하다. 노인과 그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를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약해지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