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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31. 2021

회식이 사라져야하는 이유들

모순 투성이 직장 회식

© 2eeeeee, 출처 Pixabay



부장이 '나가서 저녁이나 하지' 하고 한마디 던지면 직원들은 하던 일을 덮고 엉거주춤 일어서며 수화기부터 들었다. 저녁 8시가 넘어 상사가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회식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유는 할아버지 제사 정도였고 결혼기념일 같은 건 얘기해 봐야 본전도 못 건졌다. 회사 일을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식이나 회의나 회會자 돌림이고 회사일이었다. 야심한데 회식을 소집하는 부장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언제 찾을지 모르는 직속 상사인 본부장이 퇴근했거나 레이더에서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자기 일정의 공간이 생겼다. 불시 호출의 먹이 사슬에서 최하단에 위치한 말단 직원의 시간은 언제든지 회사에 의해 소비당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 시절 얘기다.


그동안 직장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회식 한 번하려면 미리 날을 잡아야 되고 직원들이 2차 3차를 피하는 현실은, 꼰대 관리자들이 세상 좋아졌다고 자조하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천지가 개벽이나 한 듯이 한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직 거기서 거기다.




직장인은 신입사원 환영회식으로 시작해서 송별회식으로 끝난다. 입사 면접할 때부터 몇 병 마시냐고 물어보는 경영자도 있다.


직장인들의 흔한 고민 중에 회식이 포함되어 있다. 직급이 낮을수록 더 그렇다. 인터넷에서 회식을 검색하면 대개 부정적이다. 연관 검색어들을 연결하면 꼰대 상사와 / 삼겹살 구우며 / 폭탄주 말다가 / 2차를 거쳐 노래방에 가야 끝나는데 / 빠졌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 자동 완성된다.


브런치에서도 직장 생활은 단골 얘깃거리인데 그중에 회식에 대한 고민이 눈에 많이 띈다. 일보다 회식이 더 힘들다 / 왜 상사는 회식을 좋아할까 / 음주 강요, 그래서 앉는 자리를 전략적으로 선점해야 / 코로나 끝나면 회식도 돌아올 텐데... 등.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사회 관습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많아졌다. 회식hoesik 발음 그대로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데 번역이 까다로울 정도로 특이하다는 얘기다. boss상사 , drinking 음주, hierachy위계 질서, refuse거절 같은 단어가 줄줄이 딸려 나오고 회식과 술을 피하는 기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피곤한 척하기 / bottoms up원샷을 강요하면 다른 얘기 꺼내기 등 영악한 회식 요령까지.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도 hoesik이 올라 있는데 회식의 순기능은 몇 줄 안되고 역효과는 강제로 술 멕이기부터 성추행, 음주운전까지 빽빽하다.


3.2Adverse effect
3.2.1Excessive drinking and forced drinking
3.2.2Forced attendance at hoesik
3.2.3Loss of human relations with late hoesik
3.2.4Lack of intent3.2.5Conflicts with law
https://en.wikipedia.org/wiki/Hoesik


회식이 한국의 골 때리는 문화로 소개되고 있다. 우리가 좀 먹고 사니까 그 정도 하지 안 그랬으면 대번에 '니네는 술 땜에 안 돼' 하고 빈정거렸을 터이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대표가 폭탄주 돌리면서 직원들 앞에서 재롱떠는 그림이 언론에 나온다. 이 나라에서는 음주가 필수적인 경영 및 영업 전략drinking strategy 이라며 비방이라도 전수하듯 귀띔했을 한국인 임원들을 한 대씩 쥐어박고 싶다.




회식의 정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 또는 그런 모임이라고 되어있다. 현실적으로는 1) 회사 돈으로, 2) 퇴근 후에, 3) 동료들과 조직적으로 술을 마시는 모임이다. 퇴근 후에 회사 동기끼리 근처에서 한잔하거나 상사가 몇 명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사는 건 회식이 아니다.


1) 참석자 모두가 공짜로 술과 밥을 먹는 즐거움은, 2+3) 조직의 장이 압도하는 위계질서를 감내하는 고통으로 상쇄된다. 우두머리의 기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상사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는 거 자체가 노동이다. 회식이나 회의나 같은 회會 돌림이다. 게다가 상사의 흘러간 무용담에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으면서 체질과 무관하게 술을 강요당하는 지경에 이르면 노동의 강도는 올라간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개떡 같은 협박 때문에 중간에 도망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투자 대비 수익이 저조한 사업이나 사업체는 도태당하게 되어있다. 시대가 바뀌어서 회식이 이미 '적자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이유는, 다른 업무와 달리 변화에 가장 둔감한 관리자들이 주도한다는 데 있다. 부하직원으로서 '상사 직영 사업'에 토를 달았다가 불경죄로 몰릴 수도 있다. 이제까지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멍청하게 계속하는 걸 어제의 비용이라고 한다. 비즈니스에서 관성의 법칙은 독이 될 때가 있다.


조직 내 단합과 소통이라는 회식의 알량한 명분은 미신 수준이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구축한 팀워크는 알코올이 증발되면 다시 주저앉게 되어있다. 소주병을 들이대며 형님 동생 하며 의기투합을 했든, 말 꼬리 잡고 주먹다짐을 했든 그 기억은 유효기간이 24시간을 넘지 못한다. 조직의 단합과 소통이 '위하여' 몇 번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관리자는 순진하거나 게으르다. 한국 회사들이 비용을 들여가며 대부분의 직원들이 환영하지 않는 회식을 질질 끄는 배경엔 경영자의 관성과 착각이 있다.





경영


우리나라 기업은 회식비를 직원 복리후생비로 처리한다. 학자금 보조나 경조사 비처럼 직원을 격려하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회사가 급여 말고 추가로 쓰는 예산이다. 예전에 호주머니가 가벼운 '샐러리맨'에게 회식은 회사가 베푸는 혜택이자 좋은 회사의 기준이었다. 지금은 젊은 직원도 퇴근 후 술 한잔할 여유는 있다.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회식으로 개인의 시간을 빼앗긴 직원은 격려받기는커녕 좌절한다. 회사는 기껏 돈 쓰고 욕먹는다.


야근은 업무라도 해결하지만, 회식은 보람도 없고 생색도 안 나는 중노동이다. 회식이라는 처절한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남아도 다음 날 부대의 전투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회사가 돈 써서 직원의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있다.


사회


성인 남녀의 70%가 직장을 구할 때 연봉보다 워라밸을 고려한다는 통계가 있다. 불규칙한 퇴근시간으로 직장 다니며 육아를 병행하는 게 좌절되고 출산 의욕의 감소로 이어진다. 회식은 유능한 직원의 유입을 방해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13명이 음주로 인해 죽는다고 한다. 음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도 연 십 조원에 육박한다고 듣는다. 기업의 접대와 회식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짐작한다.


직장 내 성추행은 많은 경우 회식 자리에서 비롯된다. 음주운전도 마찬가지다. 회식이 범법자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세무회계에서 회식비는 한도가 없다. 직원 복리후생비라고 해서 얼마를 쓰던 비용으로 인정해 주고 과세 대상에서 감해준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회식비를 접대비와 유사하게 취급하는데, 일부 (예를 들면 50%,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임시로 100% 인정해 준다고는 하지만)만 비용으로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에서 회식비를 쓰는 만큼 세수稅收가 줄어드는 구조다.




요새 저녁에 식당에서 여러 명이 둘러앉는 자리를 보면 가족 중심이다.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회사 회식이 가족 회식으로 대체된 셈이다.


회식이 그리워서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는 관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참에 회식도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기업 수지에 도움이 되고, 직원들의 비업무적인 애로를 줄여주고, 출산율이 올라가고, 사회가 건전해진다.


회식이 기업 경영과 사회에 초래하는 손실을 감안할 때 지금 같은 회식은 이미 없어졌어야 할 모순 투성이 관행이다. 관리자들이 앞장 서면 된다.


직원들과 할 얘기는 업무 시간에 직설법으로 해야 약발이 듣는다.

MZ 세대 이해한답시고 자기가 목 줄 잡고 있는 젊은 직원들과 호프집 가고 노래방 가봐야 얻는 것 별로 없다.

차라리 구박받으며 낯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게 영양가 있다, 정 그들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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