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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07. 2021

 '블록체인 무엇인가'

독서록


책: 블록체인 무엇인가

다니엘 드레셔 지음 / 이병욱 번역


내가 속한 독서 동아리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한다.

이번 책은 우리 동아리에서 이제까지 읽었던 인문학, 사회과학 류와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회원들의 분위기도 달랐다.


'한번 훑어보니 순전히 기술적인 내용이라서 이해가 안 되더라...', 

'차라리 블록체인 전문가를 불러서 얘기를 듣는게 좋겠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비유하자면, 자동차 산업의 미래 분석을 기대했는데 엔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더라는 식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이 책은 흡입-압축-폭발-배기로 이어지는 엔진의 4 행정 기본 원리를 이해하자는 것이지,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 그리고 4기통과 6기통 엔진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루는 수준이 아니다.


블록체인하면 즉시 연상되는 비트 코인의 시세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이 책을 선택한 건 물론 아니다. 그런 건 언론, 인터넷에 넘칠 정도로 떠돌아다니는데 읽어봐도 속 시원한 얘기는 없다.


과학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블록체인이 미래 산업의 생태계를 바꿀 주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그저 돈놀이의 새로운 수단에 지나지 않는 기술을 과장해서 이념처럼 떠받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천지를 개벽시킬 새로운 무엇은 처음엔 '미미하게' 등장한다.


1990대 초, 내가 나가 있었던 네덜란드 지사의 현지 신입사원이 어느 날 내 방에 들어와서 그랬다. '인터넷이라는 게 있는데요, 그걸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 편리할 텐데요.' 나는 모니터에서 눈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오케이 '. 거기 생략된 말은 ' 그래 인마 넌 맨날 어디서 이상한 거만 주워듣고 와서 나를 귀찮게 하지' 불과 30년 전 얘기다.


'블록체인' 이란 물건이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를 건설적으로 파괴할지 아니면 그저 질서를 교란하다 말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적어도 그 원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존의 가치를 대체할 만큼 최소한의 논리가 받치고 있는지를 책을 통해서 더듬어 보는데 꼭 전문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일단 미국에서 많이 팔린 블록체인 기초 관련 책 몇 권의 한국 번역서를 검색했다. 기술적 원리를 설명하되 사전 지식 없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이는' 책을 회원들에게 추천했다.


블록체인 무엇인가 / 다니엘 드레셔 지음  이병욱 번역




블록체인의 작동원리


여차하면 책을 덮어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를 의식했는지 저자는 비유와 그림을 동원해서 저속으로 설명해나간다. 내용을 25단계로 나눠서 풀어가는데 그중 8단계에서 21단계까지가 작동원리에 해당한다.


블록체인의 개념을 얘기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개념이 탈중앙화脫中央化인데 영어 decentralization의 번역이다. 중앙의 통제에 대한 대안으로 P to P (peer to peer 사용자 간 직접 접속 ) 제안했다. 우리가 돈을 맡겨놓는 은행이 중앙에 해당하는데 은행의 발권, 보관, 중개 기능을 집단의 자율이 대신한다는 아이디어다. 우리끼리 돈도 새로 만들고 직접 주고받자는 얘기.


소유권의 통제를 중앙이 아닌 집단의 관리에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변조를 어렵게 하기 위해, 소유권과 그 거래를 불가역적인 데이터 (데이터를 보고 원래 거래 내용을 추측하지 못함)로 변환하고 데이터끼리 줄줄이 엮어놓는 방식을 선택했다. 500개의 레고를 조립한 후 130번째 조각의 색깔을 바꾸려면 전체를 다시 조립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소유권의 기록과 이동을 지문처럼 고유한 데이터로 변환시킨 다음 집단이 관리하는 네트워크에 올린다. 네트워크에 올라온 데이터가 일정한 룰에 의해 검증받은 후에 '블록'이 되면 비로소 집단에 의해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


여기서 블록이 되는 과정에 생뚱맞게 '해시퍼즐 hash puzzle' 이란 게 등장해서 겨우겨우 이해해 나가는 독자를 puzzle(어리둥절하게 만듦) 시킨다. 데이터를 공식적인 '블록'으로 등록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운 퍼즐을 풀게 만들었다. 자율 관리의 허점을 보완하는 장치인 셈인데 퍼즐은 네트워크 상의 아무나 풀어도 되며 그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선물한다고 되어있다.


컴퓨터로 반복하는 인해전술식 시행착오에 의해 퍼즐을 풀게 되어있어서 비트코인 채굴이라는 말이 나왔다. 기술보다는 (무식한)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중요하다. 연산 작업의 효율을 높여주는 그래픽 카드의 시세가 올라가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낙양의 지가가 올라갔다는 고사가 생각난다.


그림 14-3

'해시함수',' 블록헤더' 따위 용어가 블록체인 개념에 진입하는 장벽이 되는 순간에 저자의 친절한 비유와 그림은 독자를 달래준다. 해시 참조를 설명하기 위해 외투 보관소의 보관 티켓을 예로 든다든가, 종이 책의 페이지를 블록에 비유한 그림 14-3 은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 번역자는 본문 중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옮긴이 주'에서 친절하게 보완 설명해 준다.




비트코인


책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지만 독자는 비트코인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토론 중에 어쩔 수 없이 화제가 비트 코인으로 반복 회귀해서 블록체인의 원리를 알아보는데 방해가 되기까지 했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은 비트 코인의 가치와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정부가 보장하지 않는 암호 화폐가 말 그대로 화폐 맞는지 아니면 주식인지 자산인지 무슨 징표token인지 왈가왈부했다.


현실 거래의 프로세스


블록체인의 원리는 그렇다 쳐도 실제 비트코인의 거래는 어떤 식으로 기록되고 정보에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따위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고 결국 미결로 남겨 놓았다.


1. 거래를 네트워크에 올리면 누군가 해시퍼즐을 풀어서 블록을 생성한다는데,


의문:


1) 거래할 때마다 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 아무도 안 풀어준다면?)


2) 거래는 절차에 따라 즉시 등록되는 게 상식 아닌가?


3) 신뢰에 대한 문제로 비용을 과다하게 소모하는 건 아닌지?



2. 백신 접종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한다던데,


의문 :


1) 공개 네트워크에서 개인의 정보를 공개해도 되나?


2) 그러면 이것도 해시 퍼즐을 풀어야 블록이 생성되나?



3. 블록체인의 네트워크에서 과반수가 합의를 해야 한다는데, 즉 권위 체인을 다수결로 선택한다던데


의문 :


네트워크 구성 노드의 50% 이상이 담합하면 조작, 이중 지출( 더블 스펜딩 ), 또는 거래 철회도 가능하다는 얘긴가?






올해 초 미국 뉴욕 증시를 들었다 놓은 사건이 있었다.

게임스탑 (NYSE 종목코드: GME)이라는 전망도 별로 좋지 않은 비디오 게임 소매 체인의 주식이 급등했는데 알고 보니 대규모 헤지펀드의 공매도 계획에 저항하는 개미군단 ( 개인투자자)의 집중 매수가 빚어낸 결과였다.

2011년, 같은 뉴욕 월가에서 Occupy Wall Street ( 반 월가 )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금융사들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항의하는 운동이다. 이들은 극소수의 금융가들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비판하고, 1% 가 아닌 99%의 사람들을 위한 사회를 주장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금융 독점 자본의 횡포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의 실력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금융자본을 중앙이라고 가정하면 일종의 탈중앙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월가 시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거래 수수료 없는 온라인 무료 주식거래 앱 '로빈 후드'가 출시되었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시세가 올라감에 따라, 권위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소유권 개념이 현실화되었다. 블록체인은 중앙이 존재하지 않는 ( 또는 중앙을 배제시킨 ) 탈중앙화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유권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다. 소유권의 보호는 개인이 국가권력에 복종하는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다. 하지만 시민이 국가에 독점적으로 위임한 권한은 시민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고, 그 권한을 견제하는 정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자치로 분권하고 나아가 시민자치로 분산시키려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블록체인 플랫폼엔 투명성, 무결성integrity, 신속성을 활용하면 금융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무서운 확장성이 있다.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을 문명사적인 사건으로 보는 이도 있다.


한편 중앙의 간섭을 받지 않는 소유권의 거래는 중앙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독립적인 데이터 저장소이자 유기적인 자율 조직체가 공적 보안을 대신해 준다. 모든 소유권과 그 거래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는 블록체인 환경에서 소유권의 가성비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타인의 소유를 배제하는 사적 소유의 욕구가 사적 사용권으로 충족되면서, 자연히 구독과 임대(임차) 같은 공유경제의 확대가 가속될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과거 데이터를 열람은 하되 변경은 못하게(또는 되게 어렵게) 해 놓았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삼차원의 세계에서,

인간도 시간이라는 블록체인에 얽혀있다.

지나간 과거를 기억은 하되 바꾸지는 못한다.


과거의 말과 행동을 부인하거나 '위변조'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단골로 내놓는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핑계는 사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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