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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30. 2021

논어를 읽고, 외워 써봤다.

독서록

논어論語를 읽고 외워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논어집주論語集註 강독을 들으면서 원문을 읽어 나갔는데 1년 반이 걸렸다.


논어 집주는 중국 송宋나라의 주희朱熹가 논어의 장구章句에 대한 선대先代 학자들과 자신의 주석註釋을 모아 엮은 책이다.


중국 고전은 함축적이고 모호한 내용이 있어서 해설서를 읽는 게 편하고 재미있지만, 가급적 한문 원문을 읽어서 내공을 쌓은 후 번역문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시작했다.


여기서 '읽었다'는 소설책처럼 술술 책장을 넘겼다는 얘기가 아니라 '뜻을 분별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읽다

1. 글이나 글자를 보고 그 음대로 소리 내어 말로써 나타내다.
2.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다.
3. 경전 따위를 소리 내어 외다.

표준국어대사전/네이버


우리나라 사람은 논어를 따로 읽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논어가 원전인 경구들을 많이 접하면서 산다.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잔소리를 자조적으로 '공자님 말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유교사상은 우리 전통시대의 정치 이념이자 생활윤리였고 논어는 유교의 성전聖典 역할을 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己所不欲 勿施於人' 한 번쯤 들어본 구절이다. 제자가 평생 지키며 살아갈 말 한마디를 청하자 공자가 던진 말이다.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온다. 뒤집으면, 성경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같은 꽈다.


논어는 2500년 전 사람인 공자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글이다.

올해 전 세계에서 출판된 책 중 앞으로 2500 년 후에도 읽힐 책이 한 권이나 있을까.

논어가 수천 년을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은 비결을 생각해 본다.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아니 그때도 이런 문제가 있었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공자가 질타하고 있는 당시의 세태는 대부분 오늘날에도 잔존하는 문제들이다. 공룡을 반려동물로 길렀을 것 같은 까마득한 고대에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갈등했다는 걸 알게 되면 갑자기 옛사람들과 동지의식을 느낀다.


'요즘 정치를 하는 건 위험하다 今之從政者 殆而'에서 '요즘' 은 수천 년 동안 현재형이다. 길가는 행인이 공자 일행에게 했다는 말인데, 논어에 정치政治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골치 아프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물었더니 공자는 식량과 무기를 충분히 마련하고 백성을 믿게 해야 한다고 한다. 자공이 '그러면 셋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뭐요' 하고 캐물으니 믿음이라고 답한다. 경제, 국방보다 국민의 신뢰가 우선이라는 말인데 참으로 지당하다. '족식 족병 민신지의 足食, 足兵, 民信之矣' (논어 안연 편)


당시 노나라의 실력자인 계강자가 도둑을 걱정하자, 공자는 대뜸 너나 잘하라고 일갈한다.

'진실로 그대가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설사 상을 주더라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자지불욕苟子之不欲 수상지雖賞之 부절不竊.(논어 안연 편)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지금 들어도 하나 어색하지 않다.


정치하는 사람이 바름으로 이끌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게 하겠느냐면서 지도자의 솔선을 주문하고 있다. 정자 정야 政者 正也.(논어 안연 편)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논어의 핵심 사상은 인仁 덕德인데 특히 인을 강조하면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인의 개념은 이전에도 사용되어 왔지만 공자가 처음으로 철학의 영역으로 들여놓았다고 한다. 혼란스러운 춘추시대의 정국을 바로잡기 위해 어질 인을 주장했다.


그런데 논어에서 인仁의 정의를 분명하게 규정하지는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에 따라 공자의 인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효성과 우애가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克己復禮爲仁


인에 뜻을 둔다면 악한 것이 없다 苟志於仁矣 無惡也


공손함, 관대함,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恭ㆍ寬ㆍ信ㆍ敏ㆍ惠



사람다움이 인의 공통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공자의 운전기사 격인 번지樊遲가 묻자 비로소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樊遲問仁 子曰 愛人'이라고 요약한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상통하는 인간 존중이 인류 최고의 보편적 가치임을 재확인해 주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로 확장되는 인간 존중의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해법이 있다


문제를 풀려면 문제의 알맹이를 알아야 한다.

급소를 찌르는 듯한 문제의 직시 그리고 해결책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데 지금도 유효하다.


'백성은 가난보다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논어 계씨 편 ) / 낭송 논어.

다른 말로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다. 정치의 최종 목표가 외적인 성장보다 균등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고도의 정치적 역량이 요구되는 경지다.


공야장 편에서 제자들이 공자의 희망을 물으니 '나이 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들에게 신의가 있으며 젊은이를 감싸주는 것'이라고 한다.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논어 공야장 편) / 낭송 논어. 세대 간 갈등에 대한 해법이다.





어려서 국민학생 시절, 할아버지 앞에 마주 앉아 있을 땐 뭐라도 써야 했다. 그게 룰이었다. A4 크기로 잘라 쌓아 놓은 신문지에 먹을 갈아서 쓴 게 뭐였는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구구단도 있었던 거 같다. 그때 할아버지 책상에 쌓여있던 책 중에 논어도 있었을까?


같이 배우는 동학 몇 명이서 매주 배운 원문 구절을 외워서 쓴 다음 사진을 찍어 카카오 톡에 올리기로 했다. 논어의 원문은 다해서 만 육천 자 정도가 된다. 나이가 드니 한 번에 300여 자씩 외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일주일이 지나갔다. 외우는 시간은 길어지고 잊어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소리 내서 읽고 외우다 보니 옛 선비처럼 몸이 절로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외워봤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슬금슬금 피하는 걸 본 다음부터 그만뒀다.


물론 여기서 '외웠다'는 현재 완료가 아니라 과거형이다. 현재성이 없다. 한 번 외웠다는 얘기이며 뒤돌아서면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소消실되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한 지식처럼 짧은 시간만 보유하는 단기 기억에 속한다. 다만 외운 것을 손글씨로 옮기니까 약간은 오래간다.


그보다, 암기한 구절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인용해서 표현하면 의사 전달에 도움도 되고 내용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을 통해서 재현할 때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이된다고 한다.


논어는 20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편은 다시 20-30 장구로 나누어진다. 군자불기君子不器처럼 몇 글자 안 되는 거저먹기 장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건 200 자가 넘는다. 뜻을 모르면 글은 부호의 연속에 지나지 않고 삼백 개의 부호를 외우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장구를 순서대로 연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앞뒤의 맥락을 알면 좀 수월한데, 나의 내공으로 안되면 억지 스토리라도 만들어 20여 장구章句를 줄줄이 엮었다. 외우는 과정에서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앞뒤 맥락을 (창작을 해서라도) 파악하게 되었지만, 모발이 본체를 이탈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내용을 이해하는 걸로 안 되는 게 허사虛辭다. 焉, 矣. 以, 斯 같은 어조사가 구절 중간이나 끝에 붙는데 맥락에 따라 뜻이 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허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한문 해석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던데,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도 외울 때는 나를 괴롭혔다. (내게는) 의미 없는 글자를 빼먹어서 틀리면 참 서럽다. 앞으로 더 알아야 할 부분이다.


읽고-외우고-쓰고-잊어버리는 '4 행정'의 순환을 거쳐 기억이 머릿속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냇물이 스쳐가는 바위에 이끼가 끼듯이, 조금이나마 자취가 남지 않았을까 위안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렇게 맺은 논어 글귀와의 든든한 연줄이 내가 바른 길을 가는데 힘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두보杜甫의 시에서 인용한 '인생 칠십 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는 늙은이를 으쓱하게 만들지만,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는 정신을 버쩍 들게 한다. 논어 위정 편에 나오는 말이다.

'나이 칠십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 당신의 얘기로서 과거형이지만, 나잇값 하라는 명령형으로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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