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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Dec 28. 2021

친구 따라 지리산 종주하기 1

색불이공 色不異空

도원의 결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은 남에게 끌려 덩달아 일을 저지르는 걸 풍자하는 속담이다. 여기서 물론 '강남'은 서울의 아파트 많은 거기가 아니라 중국의 양쯔강 남쪽 지역. 중국사史의 주 무대는 황하 유역인 중원인데 양쯔강 이남까지의 장거리 여행이 당시엔 대단한 모험이었나 보다.


속담은 부화뇌동을 경계하고 있지만 판단의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인생의 동선이 비슷한 친구 말을 덥석 믿고 동업이나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입신 영달한 경우도 흔하다. 친구 따라 오디션 보러 갔다가 연예인이 되었다는 성공담도 있지 않은가.


친구 서넛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지리산 종주 한번 같이 하자고 바람을 잡았더니 즉시 그러자는 화답이 돌아왔다. 오늘 밤 이래도 갈 듯한 기세다. 혹시 둘레길 한두 구간으로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했다. 퇴직 후에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친구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알코올을 앞에 두고 투합된 의기는 휘발성이 높다. 알코올이 날아가면 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지리산 종주는 걷는 거리가 최소 34킬로미터에다 획득 고도( 올라가는 누적 높이)는 2700 미터를 넘는다. 말이 능선 길이지 산봉우리를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므로 산을 좀 탄다는 이들에게도 힘들었다는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누구는 멘털까지 털렸다든가... 그래서 주위에 종주 얘기하면 이 나이에 미쳤냐며 손사래를 친다. 한 번 이래도 갔다 온 사람들이다. 종주 따라갔다가 하도 힘들어서 가자고 꼬드긴 놈을 손보려고 했다는 사람도 있다. 난이도로 하면 중원에서 강남 가는 것보다 못할 것 없다..


지금 대번에 좋다고 한 친구들은 당연히 초행이다. 일단 모객엔 성공했지만 상품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으면 자칫 노인 상대 사기로 몰릴 수 있다. 종주에 대해 설명했다. 때는 5월 중순이었다.


지리산 종주 구간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노고단 사이의 마루금을 이어 밟는 걸 종주라고 하는데 백두대간 북진北進방향의 첫 구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산줄기를 가리키는 것이고. 


접근하는 길목이 여럿 있다. 전남 구례에 있는 성삼재에서 하차, 노고단에 올라 천왕봉까지 걷고 경남 산청군 중산리로 내려가는 경로가 예사다. 성삼재, 중산리의 앞자를 따서 '성중' 종주라고도 한다. 성삼재까지 대중교통이 뚫리기 전에는 화엄사에서 시작해서 노고단으로 올라갔다. 지금도 화엄사 출발을 고집하며, 천왕봉 찍고 대원사로 내려가는 40킬로미터 넘는구간에 '화대(화엄사-대원사)' 종주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여서 차별화하는 수구파가 있다. 90킬로짜리 확장형 종주도 있다고 들었다. 이름하여 태극종주.


종주 방향을 대개 성삼재에서 시작해서 중산리로 잡는 이유 중엔 중산리 천왕봉 구간의 악명 높은 깔딱 고개 5-6 킬로가 있다. 중산리 매표소의 해발이 630미터고 천왕봉은 1915 미터이니 고도 차이만 1300 미터에 이른다. 지리산 정상에 오르는 최단 구간이지만 오르다가 기운 다 빠진다. 예전엔 등산로 곳곳에 살벌하게 심정지 사망 사고 지점을 표시해 놓았었는데 올라갈수록 망자의 나이가 젊어지더라. 60 대에서 40대로... 지금은 심장 안전 쉼터로 대체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산리에서 출발하기로 한 이유는 오르막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가파른 길은 내려갈 때 무릎에 충격이 크다. 늙은이들은 더하다. 삭은 무릎에 무리한 부담을 주어 못쓰게 되느니 차라리 힘든 게 낮다는 판단을 했다. 중산리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잡으면 종주 첫날이 제일 고단하다. 일정의 설계에 따라 달라지지만 첫날 세석 대피소에서 잔다고 해도 중산리 천왕봉 간 된비알을 포함해서 십여 킬로를 걷는 거라서 난도가 높다.


몸 만들기


친구들을 달래서 거사 일정을 여유 있게 석 달 뒤 팔월 중순으로 잡았다. 우선 내 몸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중산리 직벽을 타고 올라가서 세석 대피소까지 해지기 전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코로나로 어차피 국립공원 대피소도 손님을 안 받는단다. 매점은 운영하지만 숙박은 안된다고. 하루에 돌파했다는 초인도 있지만 종주 길에 최소 하룻밤은 중간에 있는 대피소에서 묵어야 한다. 우리는 두 밤. 그래서 지리산 종주는 대피소 예약이 필수다.


몇 달 있으면 코로나도 누그러지고 대피소도 다시 열겠지 하는 기대 속에 그동안 시간을 가지고 훈련을 해서 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제일 힘든 첫날 구간을 고려할 때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는 등판능력과 오래 걷는 지구력 둘 다 필요하다.


칠십이 낼 모레인 노인네들이 훈련 몇 달 한다고 갑자기 몸이 좋아지지 않는다, 망가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훈련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한도를 알아내고 그 8할 정도를 써서 목표에 접근 가능한지 알아 봄에 있다. 노인의 활동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안은 무리하지 않는 거다. 객기 부리다 사고 나면 식구와 사회로부터 지탄의 과녁이 된다. 노인이 운전하다 사고 내면 뉴스 앞 대가리에 나이 대가 먼저 튀어나온다. 미국에서 살인사건 나면 인종을 들추는 것과 같다.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노인네들이 집에서 손주나 보지 모하러 나다니다가..' 종전의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의 2 탄이다


따라서 훈련의 ( 본 게임은 물론이고 ) 대 원칙은 '무리하지 말자'였다. 힘들면 즉시 중지해서 몸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막는다. 군대에서 유격 훈련할 때처럼 악이다, 깡이다 하며 몸을 혹사하는 건 노인에게 금물이다.


젊은 시절 오르던 산을 다시 오르면서 너무 무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무리하면 심장마비나 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이 한계 내에서는 스포츠 도보 여행은 물론 일에서도 많은 것이 가능하다.
황혼의 미학 / 안셀름 그륀 저


몸은 나이에 따라 상태가 변화한다. 병원에서도 환자의 나이를 제일 먼저 본다. 피부만 늙고 머리만 세는 게 아니다. 근육도, 뼈도, 생각까지 늙는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건 공허하다. 늙음은 자연의 이치다.


순리順理는 자연의 이치에 거역하지 않는 겸손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겸손은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구별된다. 유교 3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은 자연계의 여덟 가지 사물/현상을 가지고 우주 만상의 변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 바람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다른 사물을 움직여서 하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가볍고 부드럽지만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바람을 동양에서는 하늘의 섭리에 비유했다. 밥 딜런의 매가리 없는 노래 '블러위닌더윈드Blowing in the wind'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바보야 바람 속에 답이 있어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weakest link (=구멍)


팀과 같이 종주 첫날 구간과 유사한 근교 산행지를 물색했더니 청계산에서 광교산까지 이어 걷는 코스가 떠올랐다. 청광 종주라고 부르는데 청계산 입구역에서 이수봉과 광교산 넘어 광교 경기대역까지 걸으면 좋이 20킬로가 넘는다. 중산리에서 세석 가는 거리보다 길지만 획득 고도( 올라간 높이의 총합 )가 1300 미터가 넘어 난도는 비슷해 보였다. 다른 이들이 등산 앱에 올린 기록을 보면 청광 종주는 8-9 시간 걸린다. 지리산 종주 모집하는 카페 글에 청광 종주해 본 사람이라는 자격 조건도 가끔 눈에 띈다. 청광을 주 훈련장으로 정하고 공략하기로 했다. 초반에 이수봉 오르는 한 시간 정도 깔딱도 있어 연습 문제로 적합하다. 그 후 이수봉 길은 오르막 난도의 환산 기준이 된다. 이수봉 한 개 반 폭, 두 개 폭...


첫 단체 훈련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판교에서 안양 넘어가는 하오 고개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출발 기점 11킬로, 전체 구간의 반 정도 걸었는데 벌써 오후 세시가 다 되었네. 초여름 날씨가 무덥기도 했지만 중도 하산의 결정적인 단초는 일행 중의 한 친구가 제공했다. 지나가는 소리로, '한국학 연구원 근처에 잘 아는 호프집이 있는데...' 극한 상황에서 무식한 욕구가 목표 달성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중도 포기를 촉발하기도 한다. 나중에 실전에서도 같은 경험을 (긍정적으로) 하게 된다. 


남들 광교역까지 가는 시간에 우리는 겨우 반 왔다. 산에서 점심을 두 시간씩 앉아 퍼질러 먹은 니나노 모드에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다음부터 산행 중 점심시간도 삼십 분으로 줄이기로 했다. 아울러 점심 메뉴도 주지육림에서 간편식으로 바꾸었다. 배낭 무게와 먹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집에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오던 한 친구는 경고를 받았다. 


현지 상황을 상정해서 산행 때마다 비화火식 식사를 번갈아 가며 실험했다. 먹는 것도 훈련의 일부다. 김밥은 하루 이상 보관이 곤란하고, 발열 식품은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 햇반은 생으로 씹을만한데 현지에서 기온이 내려가면 이빨이 안 들어갈 수도 있겠다. 전자레인지가 있는 대피소에서는 햇반을 사 먹고 아니면 빵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소보로 같은 건 며칠 갈 수도 있다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 친구들끼리도 식성이 많이 다르다는 걸 발견했지만 더 큰 과제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극복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이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식성마저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 후 현충일 날 청광을 완주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자신감은 생겼지만 시간은 11시간 넘게 걸렸다. 다른 사람들 기록보다 두 시간 더 걸렸다. 내가 구멍이고 문제였다. 선두가 안 보일 정도로 뒤처지는 바람에 전체의 진행 리듬을 깨뜨렸다. 따로 개인 훈련이 필요했다.


초조해지면서 좋다는 건 다 챙겨 먹기 시작했다. 운동선수들이 갖고 다닌다는 에너지 젤, 폭염에 현장 근로자들에게 지급한다는 식염 포도당, 수험생들에게 멕인다는 무슨 물약, 저런 건 누가 마시나 하던 이온 음료까지. 약을 한 보따리씩 드신다고 우리 엄마 흉보던 내가 어느새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6,7 월에 집중적으로 10킬로 이상 가면서 가파른 등산로들을 발굴해서 걸었다. 주로 청광을 뛰었지만 빡세다는 치악산의 구룡사 코스도 왕복했다. 세어보니 혼자 간 거 포함해서 열댓 번에 누적 거리는 200 킬로미터, 100시간이 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체력이 좋아진 건 아니다. 다만 힘이 들 때도 마음의 여유 또는 배짱이 생겼다.


청광 구간에서 의왕에 들어서면 바라산 못 미쳐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지자체에서 365 계단이란 이름을 붙이고 중간중간에 입춘, 청명 같은 절기 이름을 설명과 함께 붙여놓았다. 종주 구간의 절반을 지나서 많이 지쳤을 때다. 하도 힘이 들어 일행 중 한 친구가 절기 설명들을 재미있어하는 것까지 첨엔 미웠다.


그런데 반복을 하다 보니까 힘든 건 마찬가진데 '또 여기구나, 그렇지 뭐'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보다' 하며 남의 일처럼 마음 만 이래도 슬쩍 비켜가니 쪼끔은 부드러웠다. 몸만 힘들라고 하고 마음을 따로 떼어 놓는 유체이탈 기술이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두려움이 가중시키고, 정신적 고뇌엔 육체적 위축이 동반한다. 그럴 때 한쪽이라도 떼어놓으면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살면서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누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반응하지 않고 나를 그저 통과해 지나가게 할 수만 있으면 감정의 손실은 줄일 수 있다, 그게 사건이든 사람이든.


색불이공 色不異空 [물질적 현상(色)은 실체가 없다]의 실천을  없는空 것부터 시작하면 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나는 잘 안 보이니까. 왠지 이번 종주 길엔 반야봉을 들러야 할 것 같다. ( 반야봉은 종주코스에서 약간 비껴 있어서 선택 코스다.) 이러다가 머리 깎고 입산할라.


심무가애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구경열반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반야심경 중에서




8월이 되었는데도 대피소를 다시 연다는 소식은 없었다. 검색을 해보면 (내게는) 생뚱맞게 장터목 대피소 직원이 출연하는 테레비 프로가 앞을 가리더라. 요즘은 지리산 대피소를 치면 테레비 연속극이 나온다.


일단 종주 출발 날짜를 9월 말로 늦추었다. 더 늦으면 날씨도 추워지고 해가 짧아져 포기하기로 했다. 배수의 진은 아니다. 종주 못하면 대수냐. 우린 준비하면서 많이 얻었다. 훈련을 목표에 종속된 과정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과정 자체가 독립 선언을 할 만큼 더 큰 가치를 발견했으니.


(다음에 이어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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