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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13. 2020

부하가 떠나고 싶은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예전에 시골 동네서 농사짓는 이웃은 친척이자 직장 동료였다. 삼촌, 조카, 아버지 친구를 매일 만나 서로 도와가며 땅을 파고 김을 맸다. 서로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어 말도 많아서 동네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지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웬만하면 잘 지내야 했다. 지금은 아래층 아파트와 층간 소음으로 다투어도 엘리베이터에서만 마주치지 않으면 되고, 정 심하면 다른 동네로 이사가 버리면 상황 끝이다. 그렇지만 예전에 동네를 뜨는 건 지금으로 치면 일가친척 놔두고 이민 가는 격이었다. 무엇보다 대대로 이어온 농사라는 가업이자 직장을 포기하는 건 보통 심각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장을 그만두는 건 엄청난, 그래서 가족 친지가 다 말리는 사건이자 모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이유는 직장이 싫어서라기 보다 사람을 못 견뎌서다. 즉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고 상사와 동료를 떠나는 것이다.



직장인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대개 일과시간엔 상사와 부하를 포함한 직장 동료와 함께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간에 마찰이 불가피한데 쌓이면 만성 스트레스로 발전한다. 상사에 대한 불만은 직장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에 으뜸이다. 상사가 별것도 아닌 걸 과장해서 트집을 잡는다든지, 내 잘못이 아닌 걸  가지고, 자질이나 능력을 거론하며 인격을 모독할 때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는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런 불만이 아니꼬운 감정에서 출발한다. 부하가 보기에 상사가 자격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일상적인 상사의 말과 행동까지 눈에 거슬리고 불쾌해진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엔 아니꼬운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도 있다.



문제가 되는 그 '자격'에 재미있게도 나이와 학벌 있다. 연장자를 대우하는 장유유서 문화는 이미 직장에서 '은퇴'하고 '직급'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아직 '알바'로 가끔씩 뛰고 있다. 나이가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하는 부하는 맘 한 켠에  작은 불씨를 지펴 놓고  있는데, 언제라도 불만의 횃불로 타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나이 많은 상사의 말을 더 잘 듣는 것도 아니다. 나이만큼 단골로 등장하는 아니꼬움의 소재가 학벌이다. 중학교 중퇴하고 자수성가한 사장이 박사학위 부하에게 '오 상무 공부 좀 하시지' 했다고 치자. 사장은 업무 파악 좀 하라는 뜻으로 공부 운운했더라도 듣는 오 박사는 고깝다.



능력이 뛰어나서 또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서 이른 나이에 경영자가 된 것은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남보다 덜 배우고도 각고의 노력으로 정상에 선 입지전적인 기업가들의 이야기는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직장 사회에서는 자신의 상사가 그 위치에 걸맞게 존경스러워야지 안심하고 순종하는 정서가 있다. '존경'의 조건에 사업적 능력 외에 나이, 학벌, 인맥, 아파트 평수, 심지어 골프 실력까지 포함되는 세상이다.



이렇게 자기 잘못이 아닌, 어찌 보면 강점 때문에 본의 아니게 부하와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경영자가 있다. 아니꼬움은 ‘쌍벌’죄다. 아쉬운 쪽이 풀어야하는데 경영자는 항상 아쉽다. 매듭을 푸는 것도 경영자의 임무다.

청년 출세와 자수성가를 오히려 자기의 약점으로 삼고 그만큼 나를 낮춰보세요! 

존경까지는 몰라도 겸손한 상사가 되어 부하를 붙들어 맬 수 있을 것 같다.


주역에서는 겸손을 덕의 근본으로 두면서, 노겸勞謙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공로가 있음에도 겸손한 것이 노겸이다.

勞謙君子는 萬民의 服也라.  군자가 노겸하면 만민이 복종한다
주역 지산겸地山謙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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