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인사
캠핑장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가는 사설 캠핑장인데 미리 알아볼 게 몇 가지 있었다.
캠장 : 네에?
영감 : 00 캠핑장이지요?
캠장 : 네에?
영감 : 안녕하세요?
캠장 :... (0.5초)
캠장 : 네에?
영감 : 다름이 아니고요......
몇 번의 '네에'를 듣고 나서야 본 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네' 다음에 오는 '에'는 음정이 3-4 도 올라가는 데 뭔가 문의하는 전화 통화에서 흔히 듣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추임새다.
긍정의 '네'가 아닌 계속 말해보라는 '그런데요' 정도로 들린다. 지금 대화가 무척 사무적이라는 걸 암시하는 동시에 바쁘니까 용건만 얘기하고 끊으라는 재촉이 묻어있다. 요즘 말의 끝마디를 올리는 억양은 내가 어려서는 못 듣던 말투로서 (내게는) 기계적이고 깍쟁이처럼 들린다.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저쪽에서 순간 멈칫한다. 예상치 않은 초면으로부터의 인사에 허를 찔린 캠장이 내 의도를 탐색할 겨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건 뭐지... 하는 경계 태세가 느껴졌다. 이어서 다시 '네에'가 돌아왔다. 안녕하다는 건가?
내가 전화를 건 캠핑장 홈페이지의 시설 이용 규칙엔 '절대로', '제발', '무조건', ' 안됩니다' 따위의 살벌한 경고성 문구가 눈에 많이 띄었다. 사설 캠핑장은 적은 인원이 관리하다 보니 업무 처리와 질서 유지 부담이 많아 통신문에 방어적인 표현을 쓰는 걸로 짐작했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다가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성가신 부탁을 거절하기가 불편해질까 봐 일단 초장엔 뻣뻣하게 시작하는 걸까?
선의의 인사말이 비굴한 수작으로 접수되지 않았나 해서 씁쓸했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간단한 인사말의 기능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공감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려서 집에 어른이 찾아오면 아버지는 으레 인사라는 걸 하도록 명령했다. '네가 바로 누구로구나.' 상대방 어른은 내 이름을 아는데 나는 그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른이 자기 소개를 해야 마땅하지만 돌아갈 때까지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내가 네 종백숙부 (당숙)다' 하고 촌수를 밝히는 적은 있어도 자기 이름을 얘기하는 이는 없었다. 자는 걸 깨워서 인사시키는 경우도 많았으니 아버지에겐 윤리 교육이었지만 내게는 아동 학대에 해당했다.
우리의 전통적 인사는 타인과의 맥락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랫사람이 늦지 않게 인사를 주도하고 윗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인사의 상향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일순 一巡이 완성된다.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는 게 전통적 인사의 기능인데, 부정한 뇌물을 건네면서 '인사한다'라는 은어를 쓰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인사 예절은 문화에 속하고, 문화는 공동체가 오랜 시간 공유해온 전통과 관습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생활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유럽 가치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문화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인사 예절도 포함된다.
문화적으로 태생이 다른 동 서양의 예절이 뒤섞인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인사조차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기형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하나같이 배꼽 위치에 양손을 얹고 90도 이상 허리를 굽히(게 강요받)는 아이나, 악수를 하는 동시에 상호 위상의 차이를 계산해서 고개 숙이는 각도를 정밀 조절하는 어른을 보면 그렇다.
유교에 기원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예절은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확고한 위계질서 속에서 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면에 서양의 예절은 중세 기사들의 거칠고 야만적인 행동을 순화한 궁정 예절에 기원한다. 나약한 여성을 존중하는 에티켓과 상대의 경계를 늦추는 악수가 그 결과물이다.
악수는 친선의 예절이고 절은 공경의 예절이다. 마사이 족이 아이에게 침을 뱉으면 기복祈福의 예절이다. 문화권역별로 예절의 형식이 다를 뿐, 우열은 없다.
동서양 문화를 모두 싸잡는 예절은 버겁다. 우리 상황에 맞게 양자를 절삭하고 취사한 간략한 인사 방식에 사회가 합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