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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08. 2022

[고흥] 연홍도의 이발 요금이
'  000원'인 이유

고흥高興에서 만난 사람들

연홍도에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로 걸어 올라가는데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 놓은 이발소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머리를 좀 잘라야 할 텐데' 하다가 그냥 왔는데 습도가 올라가면서 아프로 afro 스타일이 되었다. 여기서 머리나 깎고 갈까 하는, 내 수준에는 상당히 파격적인(=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객客쩍은 짓을 하는 것도 여행하는 잔 재미의 하나. 연홍도는 전라남도 고흥高興 반도의 서남단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https://blog.naver.com/tourgoheung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본 게 언제 적인가. 이발소에서는 깎고, 미장원에서는 자른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선 이발소를 못 찾아 줄곧 미장원엘 가는데 아직도 그 분위기가 썩 편하지는 않다. 먼저 살던 데 있는 이발소가 멀지는 않지만, 거기는 점심시간 이후 두세 시간 동안은 못 가는 사정이 있다. 이발사가 트림을 하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와 입간판 앞에서 번호를 누르니 전화받는 소리가 써라운드로 울린다. 바로 담 너머에서 '누구시냐'고.


"간판 보고 전화하는 건데요, 지금 이발돼요?"


60대 남자가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 오라며 반긴다. 옛날 시골에서 야미(야매)로 노천 나무 의자에 앉아 머리 깎는 걸 본 적이 있다. 무허가 마당 이발소 체험을 각오한다.


그러자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이 이발사에게 빈 수레를 가리키며 '그럼 이건 어떻게 하랴' 하는 눈치를 준다. 뭔가 함께 가지러 가던 참인 모양이다.


이발사가 모처럼 외지에서 굴러 들어온 손님 놓칠까 봐 '어찌 쓰까잉'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사람 좋은 척하면서 거들었다.

"저는 시간 많으니까 갔다 오세요."


"그라믄 마루에 앉아 5분만 기둘리시요."


그러자 옆에 사람이 한마디 한다.

"모대도 ( 못해도) 10분은 걸릴 것인디..."


"20분도 좋으니까 천천히 갔다 오세요."

이발소 미장원 가서 기다리는 건 당연한 데, 선심이나 쓰듯이 내가 좀 거만한 투로 상황을 정리했다. 대인배 나오셨어.


두 사람은 서둘러서 부둣가 제방 옆에 가서 꽃나무 한그루를 캐왔다.

스마트폰 앱의 초 시계로 재보니 9분 걸렸다 (헐, 할 일 참 없다).


"이발은 어디서..."


밖으로 잡아끈다.

"쪼오리로 가시지요잉."


울타리를 돌아가니 뜻밖에도 작지만 깔끔한 이발소가 뒤란에 별채처럼 들어앉아있었다. 

하나 있는 의자에 앉으니 크리스털 속 국가 공인 자격증이 거울 옆에서 빛난다.

미리 얼만지 물어보려다가 야박한 것 같아 말았는데, 간판에 붙어있던 가격 '000원' 이 맘에 걸린다.


중국집 메뉴판에 '싯가' 또는 아예 가격을 가려놓은 샥스핀이나 해삼 주스는 부르는 게 값이다. 객지에서 바가지 쓰는 것도 여행의 일부 아닌가 하면서 잠시 후 닥쳐올 충격에 대비했다.


이발소에서 깎는 게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내가 호의적인 분위기를 한 자락 깔았더니, 이런 머리는 이발소에서 깎아야 한다며 전문가의 자신감과 함께 미장원에 대한 견제 의식을 내비친다.


열일곱 살 때부터 이발 기술을 배우면서 일당 10원을 받았는데 이용사 자격증을 따고 나니 250원을 주더라는 '라떼는 말이야'부터, 서울 올라가서 영업 잘하다가 아이엠 에프 맞아 고생한 얘기까지...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를 '아이엠에프 사태'라고 하며 '아이엠에프IMF (국제통화기금)'를 가해자 부르듯 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은 아이엠에프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 국가 부도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다만 한국 경제가 아이엠에프를 '졸업'할 때까지 한동안 물주인 그들의 간섭을 받았을 뿐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가까운 과거의 질곡이 '아이엠에프'라면, 가까운 미래에 글로벌 차원에서 공유할 고통은 '코로나'가 되겠지. 코로나를 그저 과거형으로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엠에프 땐 사람들이 이발도 자주 안 했겠군요."


"고거이 아니지라, 남편들이 사업을 접거나 실직당항께 미용 기술을 취미로 배워놨던 여자들이 너도 나도 미장원을 차려부러 이발소 손님까지 끌어갔단 말이지요."


덤덤하고 무난해서 수면을 유도하는 이발소 특유의 대화는 이제 종교로 이어진다.


"젊어서 몸이 겁나게 아팠었는데 그때 마침 섬에 복음이 들어왔쓰라. 마을 회관 빌려 시작한 교회에 나가 예수님 영접하면서 나았지요. 의사도 깜짝 놀라더랑께요."


아. '간증'...


나는 성당에 다닌다는 것, 어제는 능가사楞伽寺에서 묵었다는 사실까지 고백함으로써 이 대화에 내가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지 않더라도 이해하시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발 손님이 많지는 않겠다며 말을 돌리니까, 남자가 스무 명 남짓 사는 섬에서 무슨 영업이 되겠냐고 한다. 이발사는 '젊어서 기적의 치유를 경험하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고향에 봉사하러 내려왔노라고 한다. 남녀 노인들에게 염색도 해주고 가끔 육지 교회에 나가 이발 교육도 한다고.


그가 '머리도 감으셔야지요?' 해서 그러는 게 도와주는 것이려니 하고 '그럼요' 하면서 세면대로 옮겨 않았다. 이발소는 미장원과 반대로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자세로 머리를 감는다. 거울 속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를 보며 요금이라도 넉넉히 내서 봉사하는 데 보태야겠다는 나름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빼면서 물었다.

"얼마를 드려야지요?"


"그냥 해드린 겁니다."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다.


"봉사하기 위해 이발하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손님."


그래도 나는 지갑을 열면서,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섬 주민도 아닌데요. 그러면 이 돈으로 교회에 연보라도 바치세요"

급하니까 국민학교 때 몇 번 가본 교회에서 들었던 '연보 바치다'가 튀어나왔다. 지금도 쓰는 문장일까?


상대의 태도는 단호하다.

"글쎄 안 받습니다. 제가 왜 간판에 숫자를 지웠는데요. "


' 000 원'

아차 싶다.


나는 어쩌라고 이러시나...

 

이발 의자에 앉아서 내내 온갖 속된 생각과 의심으로 일관한 내 머리를 벽에다 찧고 싶지만 기껏 다듬어준 머리가 망가질까 봐 참는다.




연홍도의 이발사는 나의 머리, 그리고 천박함과 오만함을 깎아주었다, 공짜로.


하지만 얼마 지나면 그것들은 머리카락과 함께 다시 자라날 것이다.


여기 또 와서 깎는 수밖에 없다.


그땐, 선불 안 받으면 머리를 못 맡기겠다고 버티는 전략을 써야겠다.


고흥에서 귀인을 만났다.


이 참에 개종을 해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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