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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31. 2022

[산청] 문화가 교차하는 원지 강변로

산청 이야기

구글 지도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이 산청군을 거쳐 남류하다 양천강과 합수하는 지점에 원지가 위치하고 있다.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는 번화한 원지로에 비해 시가지 언저리에서 두물머리를 끼고도는 원지 강변로는 운치가 있고 차분하다.



산청지리산도서관




원지강변로 101 번지에 단아한 이층짜리 도서관이 있다.


1층 자료실의 원통형 서가 주변 책상엔 좌석마다 ( 다른 도서관에서는 인색한, 그렇지만 전깃불이 환한데 무슨 놈의 전기가 더 필요하냐고 할까 봐 불평도 하지 못하는) 전원 콘센트가 달려있고 놀랍게도 콘센트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장치까지 한 벌로 붙어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죽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나의 도서관 회원증으로 전국의 여러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는 '책이음 서비스'라는 게 생겨서 타지 사람도 책을 대출할 수 있다고 도서관 사서가 알려준다. 여행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2층에 올라가면 북 카페와 시청각실, 강좌실, 그리고 옥외 데크가 있다. 옥외 데크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지리산 물줄기인 양천강을 바라보며 독서를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


북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가 정숙함에 질려서 그냥 나왔다. 다른 도서관의 열람실 기능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도서관마다 상당 부분을 칸막이 공부방이 점유하고 있다. 서가가 있는 자료실과 구별해서 열람실이라고 부르던데 역설적으로 대충 읽는 열람閱覽이 아닌 수험서를 열공熱工 하는 공간이다.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의 기능을 희석시키는 현상이지만 수험생(입시, 고시, 취업)을 '모시고' 사는 지역 주민 가정의 고민을 외면하고 원론만 주장할 수 없다.



산청군작은영화관



반갑게도 원지에 극장이 있다. 내동 안 가다가 하필 여행 다니면서 극장 가냐고 하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 영화와 여행은 통하는 데가 있다. 영화보고 나면 여행 다녀온 느낌이다. 양천강을 내려다보는 남부 체육 문화 센터 2층에 2관 규모의 산청군작은영화관이 있다. 원지강변로 67번지.


영화관이 들어선 적이 없거나 장사가 안돼서 문 닫은 지역에 정부나 지자체가 소규모 영화관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영화관 브랜드에 겸손하게 '작은'이라는 형용사를 박아 넣어서 만만해 보이는 동시에 크게 기대하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 지방의 대중문화 수요를 충족하고 영화 산업의 매출에도 도움이 되는 괜찮은 공익사업이라고 생각한다.


11월에는 이 영화관에서 기획전을 연다고 한다. 독립영화 13편을 보여주는데 무료다. 크게 노는 작은 영화관이다.


도서관과 영화관의 이름에 '원지'는 빠지고 행정지명인 산청이 붙었다. 물주가 지자체여서 그런가 보다. 그렇지만 나의 측두엽엔 '원지' , '극장' , '도서관' 세 조각의 기억이 흩어져 입력되어 있다가 훗날 회상 시 원지 극장, 원지 도서관으로 재생될 것이다. 내비게이션에서 검색이 안되면 지방에서는 티맵이 잘 안 터진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사람의 인식 메커니즘을 무시한 공공 기구의 관제 작명이 주는 혼란도 사회적 비용이 된다(고 믿는다).



목화 빵집




원지 시내에서 멀리 보이는 빵집의 옥상 간판을 보고 궁금해한 이유는, 체인점 이름이 아닌 적나라한 ''이 인상적이었고 지방 도시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명물 빵집이 하나씩 있다는 생각이 나서였다.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원지 강변로에서 발견했다. '환자도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게 이 빵집의 약속 1번이다.


빵과 커피를 주문하니 대뜸 텀블러 안 가져왔냐고 묻는다. 마치 몇 번을 얘기해야 말을 듣겠냐는 듯한 질책이 묻어있었다. 나도 알고 보면 비행기에서 마실 것 줄 때 개인 컵 내미는 사람이라는 둥 횡설수설 늘어놓으며 방어에 들어갔다.


그다음에 갈 때 작은 보온병을 가지고 갔더니 물경 2천 원을 할인해 준다. 수작업(=핸드 드맆)으로 커피를 내려주면서 거의 가격의 반을 깎아준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텀블러를 사 와도 수지가 맞겠다. 개인컵 사용 보상에 대한 세계 최고 할인율임에 틀림없다. 환경보호 실천에 특별한 철학이 있는 목화 빵집은 원지강변로 55번지에 있다.



원지강변로 55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집,

한 번에 한 테이블만 예약받는 집,

주문받은 시간에 맞춰 쌀 씻고 밥을 안치는 집,

상호가 번지수인 집


수식어가 많이 붙는 특별한 식당의 이름과 주소는 원지강변로 55 다.


전화로 예약하면서 '송구스러운' 어조로 혼자라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혼자 식당에 들어갔다 쫓겨난 적도 있지만 이 집은 시간만 맞으면 된다. ( 공간은 여유 있지만) 테이블을 하나만 가동하는 데다 주인이 여러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므로 시간은 내 선택이 아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니 밥과 국을 제외한 밥상을 마악 차려놓았다. 밥상에 급하게 달려드는데 벽에 낙서처럼 쓴 시 구절이 내 손목을 잡는다.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 ('밥 먹는 자식에게' / 이현주 시인)


적막한 식당에서 독상을 받으니 절에서 발우 공양하듯 경건해지면서 음식 남기기도 눈치 보인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주로 이용해 요리한다고 한다. 찬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조리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내놓는다. 돈은 (요리 클래스를 운영한다든지) 다른 일로 번다고.


원지강변로 55는 목화 빵집의 옆집이다.






원지강변로는 55번지를 꼭짓점으로 남아공의 희망봉처럼 돌면서 동행하는 강이 양천강에서 경호강으로 바뀐다. 거리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진다. 경호강 쪽 원지강변로엔 숙박업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문화의 음양陰陽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지자체의 여행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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