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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Feb 17. 2023

사람은 울지 않는다, 오열할 뿐이다.

우리 고유어를 저급하게 여기는 언론

© jandenouden, 출처 Pixabay


'남자가 말이야...' 저음으로 깔면서 에 악센트가 들어가면 대개 남자다움의 자격 조건들이 나열된다. '배짱 좋고', '박력 있고', '의리 있고' 따위로 조폭 두목의 성향과 많이 겹치는 전투적 남성성의 규범이다. 원시시대이래 남자가 가부장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환경적으로 강요받는 방어기제가 고정관념으로 굳어졌다. 시대가 바뀐 지금 이렇게 성별로 품행을 구별하는 습관적 편견은 젠더 갈등을 자극할 위험이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지탄받는다. 여자 버전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남자가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관념은 아직 보편적으로 잔존하고 있다.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이나 아픔의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눈물을 소변 참듯이 억누르지 못하는 남자는 유약하다는 인식이다. 싸우다 울면 진 거라는 단순한 실패 판정 기준의 모법母法인 셈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둥 우는 횟수까지 제한한 행동 매뉴얼에 따라 감정 표현을 자제하다 보면 눈물샘이 마르고 인간적인 면모도 퇴화할 수 있다.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부정적 감정 표출을 억제하는 경향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감사와 기쁨은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슬픔과 고통은 숨기는 극기심克己心(stoicism)은 경조사에서도 목격된다. 예전에 초상집에 가면 으레 상주들의 곡哭소리가 들렸는데 이제는 조문객들의 박장대소가 대신한다.  오히려 결혼식장에서 색시나 친정어머니가 눈물을 찍어내는 광경은 심심치 않게 본다.


반면에 공적인 영역에서는 눈물이 넘쳐나는 눈물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유난히 눈물이 헤프다. 연예인은 원래 감성이 풍부한 집단이라서 그렇다지만 정치인의 눈물은 좀 의아하긴 하다. 


정치가 점점 더 슬퍼져서 그런지 정치인들이 예전보다 부쩍 많이 운다.


정치인의 눈물이 뉴스가 되고, 뉴스가 정치인의 눈물 생산을 자극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정치인들은 정치 스트레스로 인해 감정적으로 탈진하거나 대중 앞에서 지레 감격에 겨워 흐느끼기도 하지만, 대중의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우는 경우가 더 많다. 정치적 논쟁이나 비판이 격렬한 순간에 대중의 감성에 호소해서 공감과 동정을 구하는 도구로 눈물을 짜내는 꾀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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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언론에서 우는 것을 오열이라고 쓰고 있다. 특히 연예인이 울면 좋으나 슬프나 획일적으로 오열이 된다.


오열은 설움에 복받쳐 목메어 우는 모습이다. 오열하는 울음은 소리를 죽이든 통곡을 하든 주변의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 강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오열하다 (왼쪽)와 울다( 오른쪽)를 네이버 뉴스에서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검색



사람은 모두 오열하고, 정가은 한 사람과 새 한 마리 그리고 전 세계와 많은 기업들이 다양하게 울고 있다.


이대로 가면 사전을 바꾸어야 할지 모른다.


오열하다 :  사람이, 특히 연예인이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행위


울다:  주식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지면 기업이 하는 행위



삼국시대 전부터 우리말에 수천 년간 깊숙이 뿌리내린 한자어에 밀려 몇 안 남은 우리 고유어마저 천대받고 있다. 정신 나간 언론이 앞장서고 있다.






절박뇨尿란 소변을 보고 싶어지면 참지 못하고 심하게 요의를 느끼는 의학적 증상인데 노인들에게 많다.


노인들에게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현상도 흔하다. 절박루淚라고 이름을 붙였다, 내가.


노인은 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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