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를 타 보는 것도 국내 여행하는 재미 중의 하나다. 운전기사가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어 올려주는 정감 있는 광경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본다. 행정 구역 단위가 군이면 군내버스, 시市면 시내버스란 이름으로 다니는데 지역에 따라 농어촌 버스라고도 부른다.
한때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다니는 버스는 모두 시외버스로 알았는데 서울 위주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경남 산청군) 원지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지만 원지에 내려 산청읍 같은 관내 읍면으로 들어가려면 군내버스를 탄다. 지방에서 인근 타 시군市郡 지역 간에 왕래하는 노선도 시외버스라고 하는데 수도권의 광역버스 폭이다. 군내버스의 노선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중간에 서는 정거장 수가 적어서 직행버스라고도 부른다.
농촌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자가용 이용자는 늘어서 그런지 버스 승객 중에 학생과 노인들이 많다. 도시도 그렇지만 시골 버스는 주민 편익을 위한 공공성이 강하다. 거리에 비해 이용자가 적어 정기적으로 버스를 배차하기가 곤란한 오지 마을에 '천 원 택시'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다. 마을 주민이 나들이할 때 택시를 부르면 천 원만 받고 관내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차액은 지자체에서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행복택시라고도 불린다. 노인들이 병원 갈 때 편리하게 이용한다.
작년 가을 남쪽의 한 고장에서 머무를 때 군청 소재지인 읍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숙소를 잡았다. 주로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읍내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박물관 등 여러 문화 시설을 돌아보기로 한 날은 버스를 타고 읍으로 '출근'했다.
차를 버리면 몸과 마음이 한갓지다. 양손이 자유롭고, 시야가 넓어지고, 주차 걱정에서 해방되는 대신 띄엄띄엄 버스 시간에 구속된다.
시골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하루에 서너 번만 다니는 게 보통이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간격이 20분 넘는다고 불평한 내가 머쓱해진다.
정거장에 붙어있는 버스 시간표가 심란하다. 운행 시간이 자주 바뀌는지 덕지덕지 덧 칠을 해놓아서 해독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 실력이 필요하다.
옆 도시에서 떠나오는 직행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읍내로 향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내가 첫 손님.
종점인 읍내 시외 터미널 간다고 하고 교통카드를 들이대자 버스 기사가 한 손으로 나의 동작을 제지하며 다른 손으로 단말기를 조작한다. 나중에 보니까 교통카드 사용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학생들이었다. 기사가 됐다고 해서 6천 얼마라고 뜬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나자 (지방에서 교통카드가 멕힐 때마다 나는 몰래 감격한다.) 문득 숙소의 '이모님'이 내고 다닌다고 한 요금이 기억났다. 3천 얼마라고 한 거 같은데. 버스 한쪽에 요금 인상 안내문이 붙어있기는 해도 설마 두 배씩이나?
나는 버스 탄 목적이 이동뿐 아니라 구경이라 시야가 넓은 앞자리에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올라타는 촌로가 '버스 삯이 올라서 4천 원이지'라고 하며 요금통에 현금을 집어넣는데 버스 기사는 앞만 쳐다보고 있다. 내가 탄 데서 오분 거리도 채 안 되는데 2천 원씩이나 차이가 나네. 주민은 할인해 주나? 버스 기사가 내 요금을 잘 못 계산했다면 지금쯤 얘기를 해줄 텐데, 외지 뜨내기라고 쉽게 본 걸까? 2천 원에 생각이 산만하게 흩어진다.
국민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면서. (지금 우리 애들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혼자서 버스 타본 적이 없다. 미국 살 땐 학교가 200 미터 거리에 빤히 보이는 데도 애들을 꼭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지하철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 시내에서는 버스와 전차가 서민의 발이 돼 주었다. 만일 버스에도 마일리지 제도가 있었다면 나는 동네 마을버스 정도는 평생 공짜 타고도 거슬러 받을 텐데.
정릉 종점에서 버스를 타면 빈자리가 많았지만 나는 출입문 옆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서서 갔다. 신설동 대광 중학교 앞에서 내려 안암동 들어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되는데 만원 버스 안쪽에 앉아 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신발주머니가 떨어져 나간 적도 있었다. 걸핏하면 학교까지 따라다니던 엄마의 심정을 내가 결혼해서 애를 낳은 후에나 이해하게 되었다. 일곱 살짜리 어린애를 만원 버스에 혼자 태워 보내며 오죽 불안했을까.
그땐 버스에 차장車掌이 동승해서 버스 문을 단속하고 요금도 받고 했는데 남자였다( 나중에 여자 안내 양으로 바뀜). 가방에 수북이 담긴 돈을 보고 나도 커서 버스 차장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버스 요금이 3원으로 인상된 후에도 예전 요금 1원으로 '쌩까는' 둥 나는 차장 형들이 만만했지만 운전수 ( =기사) 아저씨는 말도 없고 무서웠다. 버스나 트럭 운전수 아저씨들은 덩치도 크고 기운도 센 줄 알았다. 지금까지도 나는 버스 운전기사가 어렵다.
비록 소액이지만 버스기사한테 따져서 부당한 요금을 정의롭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경파가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심약한 가슴은 그까이꺼 2천 원 기냥 눈 감고 넘어가자는 온건파로 기울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읍이 멀지 않았다. 불현듯 온건파 쪽에 유리한 시나리오가 한 편 떠올랐다. 맞아, 아까 4천 원 노인은 필시 터미널까지 안 가고 도중에 내릴 거야. 그러면 요금이 나보다 많이 쌀 수도 있지. 기사에게 시비 안 걸기 잘했네. 그때부터 나는 4천 원 노인이 중도 하차 하기만을 간절히 고대했건만, 그 여자 노인이 나머지 여정을 고스란히 나와 함께 하는 동안 무심한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물우물하는데 운전기사가 먼저 버스에서 내려버린다.
하루 종일 읍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갈 때는 군내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차고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군내버스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여러 마을을 거치는 완행 농어촌 버스다. 버스에서 교통카드로 찍어도 되는데 일부러 터미널 창구에 가서 표를 끊으면서 직원에게 같은 구간의 시외버스 요금을 물어봤다. 4천 얼마라고 한다.
아침에 올 때 6천 얼마 냈다는 얘기를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창구에 흘린 이유엔, 심드렁하게 나올 게 뻔한 직원의 반응에 대비해서 지레 물을 타는 늙은이 특유의 엉큼한 완충 장치가 한 자락 깔려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창구 직원의 대답은 '여기가 아니고요.'의 오리발 형, 아니면 '아버님, 버스 기사에게 직접 얘기하지 그러셨어요'의 책망 쪼, 또는 '나중에 콜센터에 한번 문의해 보세요' ,'국민 권익 위원회에 진정' 등등... 그래도 나는 일단 얘기해 본 걸로 퉁치고 스스로 현안의 감정적 정산을 마감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창구 직원이 캐묻기 시작했다. 내가 버스 탄 시간, 정거장, 요금을 어떻게 냈는지 등을 '취조'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한참을 얘기한다. 다시 내게 교통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전화로 카드 번호를 불러준다. 내 뒤로 표를 사려는 사람들 줄이 늘어지면서 나는 초조해졌다. 일이 커지고 있다. 인제 됐어요! 하고 직원을 말릴까, 아니면 그냥 도망칠까 하는데 창구 직원은 내 전화번호를 받아 적고 나서야 나를 놔줬다.
일주일 정도 후에 누가 전화를 해서 '전산 오류'... 기술적으로 수정이 어렵다는 낙장불입의 호소를 하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군내버스 타는 데로 걸어가는데 전화기가 진동한다, 터미널 사무실인데 지금 어디 계시냐고. 1 분도 안되어 버스 출발선으로 다른 직원이 현금 2천 몇백(만 원이 아닌) 원을 동전까지 맞추어서 가지고 나타났다. 그쪽으로 잘 안 다니는 기사라서 실수했다고. 디지털은 흔적이 남는다. 무섭다. 그리고 창구 직원의 직업 정신이 놀랍다.
그냥 지나가든지 아니면 현장에서 쉽게 끝낼 일을 용열 맞게 우물거리다가 여러 사람의 수고를 끼쳤다. 운전기사도 한소리 들었을 테고. 예전부터 나는 대중교통 관련 이런 흑역사가 꽤 있다.
1990년대 동유럽에 출장 다닐 때 택시미터 가지고 기사와 실랑이한 적이 여러 번이다. 바가지 써봐야 얼마나 한다고... 그 시절 폴란드나 체코의 택시비는 서독의 시내버스 요금보다 쌌다. 공산 정권이 붕괴되면서 민주화의 여망에 들떠있던 동유럽의 도시 근로자들에게 나는 서유럽 깍쟁이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쪽에서 뺨 맞고 동쪽에다 화풀이했을 졸렬한 내가 지금도 면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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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군내버스는 완행인 대신 요금도 이천 원이 안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시골버스에 가깝다.
승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올라타면서 아이구구 한나절이 걸려도 기사는 아무 소리 않고 기다려준다. 터미널을 막 빠져나가는 버스를 세우고 헐레벌떡 올라타는 아줌마한테 '아니 뭐 하다가... 퍼뜩 앉으이소 ... 아유, 표는 집어넣고요...' 핀잔을 주고받는 운전기사와 승객도, 옆에서 보는 이들도 모두 밝은 얼굴이다.
시골의 농어촌 버스는 큰길과 샛길을 번갈아 타면서 마을의 입구마다 들리는데 같은 노선이라도 시간에 따라 동선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개 수도권 교통 카드가 호환되고 거리 비례가 아니라 구간 요금제다. 탈 때 행선지를 얘기하면 기사가 단말기에 요금을 입력한 후에 카드를 댄다. 아예 획일적으로 요금을 단일화한 군(시) 내 버스도 있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지 않고 버스에서 내리자니 적응이 안 된다. 습관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