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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r 12. 2023

점점 누추해지는 우리말

존대 어미의 남용

자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직원이 오시더니 자리로 안내해 주다.


식당 방문 후기는 인터넷 정보의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식당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일단 음식과 서비스에 대한 인터넷 평판을 보고 나서 결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소비자의 서비스 경험담에서 좀 부자연스러운 어법을 발견하게 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인이나 종업원의 행동을 기술하면서 존칭 과 존대 어미 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일반화하고 있다.



자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직원이 오더니 자리로 안내해 준다.


위문장에서 과 를 생략하니 문장이 간결하고 명확해졌다. 마구 '퍼주던' 존칭, 존대 어미를 없애니까 왠지 행위자를 하대하는 듯한 어감을 느끼지만, 직원·오더니·준다 모두 평이하고 중립적인 표현이다.



메뉴를 주문하면 기본 찬 세팅해 주는데요.


그래서 혹시 종업원의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해서 일부러 존대어를 붙였나 했더니 당연한 상차림에도 존대 어미 가 붙었다.



종업원분들이 정리를 시작하니다. 식당 주인 같은 께서 말씀니다.


[....]


우린 손님으로 안 보이나요? 저희가 한마디 하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니다.


심지어는 서비스에 실망한 솔직 후기를 늘어놓으면서도 과 가 정신없이 들어갔다. 하다 보니 화자인 자신까지 존대하고 있다.



'먹튀' 호프집 사장 50대 커플, 잡고 보니…


똑같이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그냥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두 이서 만약에 같이 드으면 둘이 같이 거의 나가는데 서로가 서로한테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계산하고 나왔어?'라고 보통 물어보지 않느냐 저희가 물어봤어요. 되물어봤는데. 거기서 두 분이 당황하더라고요.


식당 주인도 마찬가지. 이제는 하다 하다 음식값 안 내고 도망친 파렴치범에게까지 간접화법임에도 불구하고 를 꼬박꼬박 붙이고 있다. 무뢰한이라 해서 공개적으로 욕을 해서도 안되지만 존대를 남발하는 것도 혼란스러운 화법이다. 존대는 존경하여 받들어 대접한다는 뜻이다.




. 구독자, 디자이너, 여성,.......... 가장, 와이프,


식당 후기뿐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존칭 존대 어미가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다. 정신 나간 언론이 앞장서고 있다.


방송이나 인터넷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쓰거나 말할 때 행위자를 높이면 듣는 이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어법이 된다. 말하는 화자의 가친이나 워낙 나이가 많은 사람 이외에는 , 여성, 가장 처럼 중립적으로 표현하는 게 무난하다. 그리고 무례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일단 문장에 나오는 모든 주체를 무차별적으로 높이고 보자는 천박한 어법이 우리 사회에서 판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쩌다 지적하면 꼰대의 고리타분한 잔소리로 치부한다. 감독해야 할 공기관마저도 '다수가 사용하면 인정해야 한다'라는 유약한 문제의식으로 방치하고 있다. 사장死藏되고 있는 압존법이 한 예다. [압존법壓尊法 : 높여야 할 대상이지만 듣는 이가 더 높을 때 그 공대(恭待)를 줄이는 어법]


이런 문제 제기는 어법에 집착한 교조적인 주장도 아니고 신세대 언어에 거는 딴지도 아니다. 오히려 언어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한다.


불필요한 접미사나 존칭은 말을 공연히 길게 만들어서 전달력을 떨어뜨리고 소통에 장애가 된다. 


더욱이 일률적으로 (=개나 소나 ) 붙이는 존대 어미는 금세 존대의 변별력이 없어져 (= 약발이 떨어져서) 옥상옥 격으로 새 말꼬리를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예, 손님분, 따님분] 그러면서 말은 덕지덕지 누추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이 종목의 끝판왕은 [스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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