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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01. 2023

챗 GPT에게 길을 물어도 될까?

여행할 때, 살아갈 때

© cristofer, 출처 Unsplash


대개 도움이 필요하면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건넨다. 여행하다 길을 물을 때가 그렇다. 두 팔로 여기저기 찔러가며 열심히 길을 가르쳐 주는데 공간 지각 능력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들으면서 지레 포기할 때도 있다. 길 눈이 밝아야 하지만 길잡이도 잘 만나야 한다.


번지수가 틀린 길잡이


혼자 내설악 십이선녀탕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장수대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오래전에 카대 의대생들이 참변을 당한 코스다. 대승령 고갯마루에서 내려가는 길을 놓쳐 헤매는데 마침 저 마치 풀숲에 둘러앉아있는 40-50대 서넛이 보였다. 길을 물으니 손으로 한쪽 비탈을 가리키며 어디를 거쳐 내려가라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난 길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약초꾼들이었고 산삼이나 버섯 캐러 다니는 꾼들이 다니는 '전문가' 루트를 가르쳐 준 거였다. 나는 그날 산에서 못 내려올 뻔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 상대가 나의 상황과 필요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고 길을 묻든지 지혜를 구하든지 해야 한다. 자동차를 몰고 가며 자전거 탄 아이 따라갔다가는 아파트 지상도로로 진입해 경비원한테 한 소리 듣게 돼있다.


돈키호테 


미국에서 방향을 물으면 프랜차이즈 식당을 지형지물로 삼아서 가르쳐 주곤 한다. "쭈욱 가다가 '데니스' 나오면 그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 하라고 한다. 거기다 대고 "저기요 '데니슨'지 뭔지 스펠링" 좀 불러달라고 하면 (Denny's : 미국의 식당 체인점인데 한국에선 잘 안 보임) 성질 급한 이는 답답해서 아예 자기 차를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사양할 틈도 없다. 


길을 물어본 자의 사정은 무시하고 자신이 아는 길만이 최선이라고 고집하고 밀어붙이는데 옆에서 누가 훈수라도 거들면 싸움 난다. 가끔 얘기가 잘 통하면 '세계 테마 기행' 프로에서처럼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행운을 건지기는 한다.


개인마다 여행의 목적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행선지가 같아도 그 경로는 다를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판단력을 더하기 위해서이다. 선택에 대한 최종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중심 잘 잡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스토커 형도 있는데 대개 노인들이다.


한 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투트가르트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마주 앉은 노부부에게 슈투트... 가는 거 맞냐고 물어봤다. 그냥 인사 겸 해본 소리였다. 노부부는 그 후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앞으로 몇 정거장 남았는지를 정확히 계산해서 내게 '고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담이 되어서 이제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노부부의 서비스는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기차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가까워지면서 부부가 좌불안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내가 혹시 내리는 역을 지나칠까 봐 나를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마당에 내가 졸기라도 하면 경찰을 부를 것만 같았다.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여행 온 외국인들이 걱정된다. 우리도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지도 들고 두리번거리는 외국 사람들 보면 좀 불안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리저리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잘만 돌아다닌다. 노파심은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원전原典은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을 뜻하는 불교 용어라고 한다. 자비 어린 배려가 스토커가 되고 민폐가 되는 세상이다.


마침내 귀인을 만나다


길을 물어보는데 한숨을 길게 쉬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오늘 길에서 귀인을 만났다,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라. 자기는 잘 아는 길이지만 나그네 눈높이에게 맞춰서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깊은 고뇌에 빠진 거다. 


차를 갖고 있는지, 여행 목적이 관광인지 딸네 집을 찾아가는지에 따라 해안 도로를 추천하기도 하고 자동차 전용도로 타고 그대로 내빼라고도 제안한다. 미심쩍으면 어딘가 전화를 해서 재확인한다. 중간에 서비스 많이 얹어준다는 활어회 집도 추천한다. 이런 선의의 도움을 오지랖 떤다고 부담스러워하는 축도 있다.


신뢰할 만한 최선의 정보를 얻는 대신에 많은 역질문逆質問에 장단 맞추는 수고는 좀 감수하라. 서브웨이에 가서 주문하면서 ( 알아서 달라고 하지 않고 ) 인내를 가지고 각종 선택의 시련을 극복해야지 비로소 괜찮은 조합을 맛볼 수 있다.




새로운 곳에 이르러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길을 물어본다. 인생에서 조언을 얻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살면서 새로운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해서 경험과 지식이 딸릴 때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서 미래에 마주칠 수 있는 어려움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운다.


여행 중에 낯선 이에게 길을 묻는 건 여정의 일부다. 인생에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얻는다. 도움을 청하다가 은인을 만나고 새로운 길동무가 생기면 인생이 바뀐다(=팔자를 고친다).


우리는 누구에게 물어볼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저 뭐든 말해줄 사람을 찾으면 진정으로 필요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방해받을 수 있다. 약초꾼의 말을 무작정 믿을 게 아니라 직관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불행해지지 않는다. 다른 선택을 위해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무얼 물어볼지는 더욱 중요하다. 내가 누구이고 알고 싶은 게 무언지를 성의 있게 풀어놔라. 질문이 영악하면 '돈키호테'가 '귀인'으로 바뀌는 수가 있다. 선한 영향력도 있고 현명한 에너지도 있다.


길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과정과 같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남의 조언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만 결국 삶을 살아가는 주인은 나다. 자신을 믿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나저나 내비게이터가 생기면서 이제 여행 중에 사람 붙들고 물어보는 일은 줄었다.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효율적인 해답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양한 지역 정보와 문화를 접하는 풍부한 여행 경험의 기회 또한 줄었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하면 원로에게 묻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파일 중에 특정 키워드를 기준으로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클릭한 순서대로 죽 보여주는 게 문헌 검색의 결과(라고 들었)다.


요새 열광하는 챗지피티는 프롬프트만 잘 처넣으면 클릭할 파일들 대신에 그럴듯한 자료 자체를 만들어준다. 클릭이 한번 줄고 결과물이 자연어로 줄줄 나오니까 감동하고 신뢰한다.


챗지피티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자료의 서술을 확률 순서로 나열한 언어 모델이라고 한다. 물량이 많은 가짜가 물량이 적은 진실을 이겨 넘길 수 있다면 챗지피티에서는 결국 물량이 깡패고 심판이란 말인가. (챗지피티 입력 내용 편집)

라고 챗지피티에 입력했더니



챗지피티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자료의 서술을 물량 많은 순서로 나열한 것이 아니며, 가짜와 진실을 구분하지는 않습니다.(챗지피티 출력 내용 편집)

라고 발끈한다. 그러면 기준이 뭐냐고 다시 물었다.


챗지피티는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와 관련된 다양한 인터넷 자료를 활용하여 결과를 생성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느 순서로 자료를 채택하느냐는 챗지피티 자체의 내부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집니다. 챗지피티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결과를 생성하기 때문에 자료의 출처, 신뢰성, 언어 등을 고려하여 결과물을 제공합니다.(챗지피티 출력 내용 편집)

 나름 생각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건 노파심일까. 실수로 인한 혼란은 누가 책임질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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