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예찬
어려서 아침 밥상에 미역국이 오르는 날은 필시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cf. 김밥을 주면 누군가의 소풍날이고) 케이크, 촛불, 노래를 생일상이 대신했다. 삼촌까지 거의 열 식구 중에 누구 생일인지는 밥그릇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밥이 수북이 쌓인 사발 (고봉高捧) 앞에 앉은 사람이 주인공. 반면에 초상집 문 간에 차려 놓는 밥 세 그릇은 망자의 넋을 데리고 갈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사잣使者밥이다.
밥으로 탄생을 축복하고 저승길을 배웅했다.
동네에서 어른을 만나면 인사가 진지 잡쉈냐였다. 지금도 점심시간 언저리에 스치고 지나가면서 식사했냐고 묻는다.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인사말이 궁해서 묻는 거라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밥을 먹었는지 여부로 이웃의 안녕을 점검했다.
때 거리를 걱정하던 시절에도 부엌의 밥통엔 대개 한 두 공기의 찬 밥이 남아있었다. 불시에 거지가 동냥하러 들어오면 퍼줄 밥 한 덩어리도 필요했다. 생명의 양식을 남과 나누는 행위가 특별히 선심이랄 것도 없었다. 길에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 소생술 하는 것과 같다. 식량이 풍족한 요즘 오히려 밥통이 비어있다.
논산에 입대해서 훈련받을 때 밥 먹는 시간이 되게 짧았다. 그나마 부족한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는 변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식탁에 앉자마자 밥을 국에 말았다. 1 분이 채 안 되어서 조교가 '동작 그만!' 하는데 튀어나가지 않으면 바디 블로가 날아왔다. 밥 먹고 나서 명치를 워커 발로 맞으면 눈물이 찔끔 나게 아프다. 잔반 통으로 걸어가는데 동기 한 명이 따라오면서 내 식판에 조금 남은 밥 좀 달라고 존댓말로 사정했다.
밥은 곧 생명이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매를 마다치 않고 체면도 없었다.
우리말의 밥은 곡식을 쪄서 만든 음식의 협의와 끼니를 뜻하는 광의가 있지만 예전엔 거기서 거기였던 게 끼니에서 밥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서민의 식탁은 밥에 국하고 반찬 한두 가지면 됐다. 식당에 가서 고기로 배를 채운 다음 밥을 디저트처럼 해치우는 지금 세태도 끼니의 기본인 밥을 유전자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19세기말 조선을 방문한 서양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라고 했다. 밥을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배 불리려고 먹는다고 하나같이 조롱하고 있다. 지금보다 밥을 3-4 배 먹었다고 한다.
당시 서민들에게는 밥이 끼니의 전부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을지 몰라도 밥만 먹고살 수 있다. 다른 반찬이라고는 짠지, 간장 정도니 자연히 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양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강도 높은 농사일도 오직 밥심으로 해냈다.
밥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자그마치 88번 농부의 정성과 손길을 거친다고 해서 쌀 미米자가 되었다고 한다. 밥풀 하나 남기거나 쌀 한 톨이라도 흘리면 죄로 간다고 겁주는 게 밥상머리 교육의 1호였다.
내가 농사를 지었든, 돈을 주고 샀던, 밥은 내 맘대로 처분하면 안 되는 귀하고 신성한 음식이었다.
70년대 초까지 쌀이 부족해 정부에서 혼분식을 강제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해서 잡곡이 섞이지 않았으면 혼났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정책만큼이나 까마득하게 들린다. 우리나라는 필리핀의 세계적인 벼 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IRRI)에 농학자를 보내서 70년대 중반 통일벼 품종을 개발했다. 그 후 시작한 녹색혁명을 통해 쌀 생산성을 높이고 식량 자급에 성공했다. 정작 주요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은 어찌 된 건지 현재 쌀 부족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 은 '민주국가에서는 기근이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야당, 언론이 살아있는 나라는 기근, 기아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이론이다. 왕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王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오늘날 국민을 굶기는 독재자는 학살범과 다름없다.
우리나라는 식습관이 바뀌면서 쌀 소비량이 줄어 이제는 쌀이 남아돌고 보관을 고민하는 형편이 되었다. 대접하면서 '많이 드세요' 하던 덕담도 '맛있게 드세요'로 바뀌었다. 양보다 질이다. 식당 가면 다른 걸로 배를 다 채우고 나서 밥공기를 서로 떠다민다.
그래도 변함없이 밥은 생명이자 에너지이며 안녕과 축복이고 신성하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어린애한테 새우젓을 못 먹게 했다는 민족이다. 소화가 잘 되어서 배고플까 봐. 수천 년 역사에 불과 삼사십 년 간 좀 먹고살만하다고 밥을 우습게 알다간 다치는 수가 있다.
요즘 만남을 제안하면서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할 때가 있다. '이나' 조사에는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이라는 뜻이 있다. 밥 먹는 행위를 소박하게 또는 하찮게 여기는 정서가 깔려있다. 밥이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를 곰곰이 생각한다면 좀 오만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정치인들이 '단순한 식사 자리, 확대 해석을 경계' 운운하는 기사를 가끔 본다. 마찬가지로 밥 먹는 건 아주 사소한 수작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경계하는 '확대된 해석'이 생명을 주고, 에너지의 원천이고, 축복이며, 신성한 밥만큼 가치 있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국민뿐 아니라 밥에게도 되지 못한 무례한 언사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오곡밥을 지어먹으며 한 해의 액운을 막고 건강과 풍년을 기원한다.
밥은 신통력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