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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15. 2023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

늙은 친구들에게


어려서부터 엄마가 반복해서 주입한 훈계가 서너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너는 친구 많이 사귀지 말라'였다. 이처럼 '너는~'에 힘이 들어가면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경험에서 연유한 당부가 얼추 맞다. 넓은 네트워크(=마당발)가 세상살이 자산이 되는 요즘인데, 당시 엄마의 비 사회적인 교육엔 아버지 친구들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으리라.


아버지가 걸핏하면 통금시간 다 되어서 집에 데려오던 많은 친구들 중에 막상 아버지가 곤경에 처하자 '코빼기' 디미는 사람 하나 없더라고 엄마는 두고두고 섭섭해했다. 명심보감에도 나오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急難之朋一個無)


우리 엄마처럼,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힘을 써줘야 비로소 '진정한' 친구라고 규정한다면 친구의 범위는 극히 제한된다. 해결사 친구는 지금 세상에서 자칫하면 가정 파탄이나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의 진정한 벗이 배우자의 친구로 자동 편입된다는 보장은 없다. 도리어 남편의 진한 우정은 아내의 입장에서 경계 대상이고 여차하면 저주 1 순위에 오른다. 부도 위기에 몰린 친구의 빚보증을 서주는 남편을 '으리'있다고 축복해 주는 아내가 있을까. 들키면 처갓집 행사에도 못 간다. 전 직장 동료는 생명보험 외판하는 친구를 도와주려고 계약서에 호기 있게 사인했다가 멋쩍게 다음 날 해약했다. 남편 죽으면 따라 죽을 거니까 보험 같은 거 필요 없다는 아내의 강력한 역습에 손을 들고 말았다.


절친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한번 눈감아준 공직자의 선행을 살짝 뒤집으면, 청탁받고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한 부패 스캔들이 된다. 너무 흔해서 웬만해선 클릭도 안 하는 기사다. 각별한 우정은 인맥이라는 업계 전문 용어로 둔갑하고, 인맥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를 매개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친구는 가족과 더불어 인간의 소속 욕구를 충족하는 사私적 관계의 한 축을 이룬다.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은 호칭이나 촌수 따위로 관계가 구별되고 ( 식당의 이모, 삼촌은 제외 ) 사회적으로도 그 관계를 인정받는다. 반면 친구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관계의 친소親疎를 '가까운 친구'정도로 막연하게 계량한다. 그러다 보니 형제보다 돈독한 친구에서부터 자동으로 친구가 되어 삭제를 고민하는 카카오 톡 친구까지 범위가 넓어서 가끔 우리 엄마의 경우처럼 오해가 생긴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흔히 고향, 중고등학교, 대학교 따위 인연으로 친구를 분류한다.


고등학생 때는 진로와 진학을 고민하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힘든 시기이면서 호기심도 많다. 아직 여러 통제를 받는 약자끼리 유대가 형성되는 이 시절은 평생 친구가 발아하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그래서 내 세대엔 친구 하면 자연히 고교 친구를 가리키고 그 외엔 학제의 등급이 앞에 붙는다.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선택한 교우들과는 앞으로 인생에서 직업적인 행로가 겹칠 가능성이 많다. 스타트 엎도 대개 대학 동기끼리 도모해서 성공한다. 교우에서 친구로 전환되는 과정에 이해타산이 개입될 수 있어 고교 친구에 비해 순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동일 지역이나 학교에서 비롯된 향우, 동창의 인연이 모두 친구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물리적인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오히려 유사한 기억과 감상으로 그렇고 그런 담론이나 재생산하는 진부한 친목 집단이 될 공산이 크다.


친구는 서로 가까이 지내며, 이해와 신뢰의 상호 유대로 형성되는 개인적인 관계다. 언제 어디서 만나 얼마 동안 함께 지냈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서, 대화하고, 이해하고, 지원하고, 신뢰하느냐가 관계 발전의 핵심이다.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관심사가 (=죽이) 맞아서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군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만난 전우와 서로 높은 수준의 신뢰를 경험하며 전역 후에 친구로 남기도 한다.


퇴사하면 남남이 되는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직장이 흩어져도 만남을 계속하는 전 직장 동료 (=오비)들이 꽤 있다. 전관예우의 폐단이 부정한 산물이다. 회사와 싸우고 쫓겨난 직원이 밤에 사무실에 나와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말도 안 되는 모순은 순전히 남아있는 동료 직원과의 우정 때문이다.




동양 고전에서는 (내게는 의외로) 우友를 효孝, 인仁과 함께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 가치와 도리로 다루고 있다. 친구의 개념을 붕우朋로 조합하거나, 붕朋과 우友로 나누기도 하는데 구태여 구분하자면 글자 모양에서 짐작하듯이 붕朋은 같은 무리임을 암시하고 우友(손이 겹쳐진 모양)는 도타운 친분을 강조한다(라고 들었다.).


논어 학이學而 편 첫 장에 나오는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 有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붕朋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제자의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멀리서 동창이 찾아와서 즐겁다는 얘기다. 여기서 동창은 그저 같은 학교 졸업생이라기보다 큰 을 공유하며 진덕수업 進德修業하면서 지성을 실천하는 동지다. [자왈 군자 진덕수업 子曰 君子 進德修業 : 군자君子는 덕德을 진전시키고 업業을 닦나니 / 주역 문언전 ]


가치의 공유 없이 기계적으로 모인 동문끼리는 악연이 될 수도 있다. 모 법과 대학의 동창들은 다수의 동기간 및 선후배가 같은 자격시험을 치르고, 같은 직장인 국회에서 근무하는 특별한 인연이면서도 정파가 다르면 서로 피 터지게 싸운다 (저녁때 한정식집에서 만나 서로의 연기력을 격려해 준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는 서로 적이 되어 싸우면서도 끝내 우정을 지켜서 관포지교의 고사를 남겼건만, 이 대학의 동창생 중엔 철천지 웬수로 돌아선 치들이 허다하다.


붕朋끼리 이 갈리면 헤어진다.


논어 안 연 편에서 자공子貢이 공자께 친구에 대해 물었더니 (子貢問), 충심으로 권고해서 잘 이끌어 주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한다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공자는 물어보는 제자의 성향에 따라 맞춤 교육도 실시했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수제자 중 하나로 이재에 밝아 공자 일행의 비용을 전담했고 나중엔 위나라에 가서 벼슬을 한 똑똑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자는 평소에 자공의 자만심을 경계했던 것 같다.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답시고 친구의 결점과 실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압박을 하면 되레 친분이 멀어진다. 이런 친구 따라서 강남 안 간다.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의 길을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마음이 우정友情이다. 공자는 과의 관계에서도 예禮를 지키는 매우 현실적인 도리를 강조했다.


끼리도 예禮 안 지키면 멀어진다.




누군가 친구들 단톡방에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


라고 올렸다.


노년을 잘 보내려면 친구와 잘 어울리고, 노여워하지 말고, 사사건건 트집 잡지 말라는 얘기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친구의 사전적 정의다. 알고 지낸 기간이 길고 인생의 동선이 비스름한데도 친구들 간에 대화하다 충돌이 일어난다. 예전의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면서 부상당해 생긴 몸과 마음의 여기저기 흉터가 주위를 때로 당혹하게 만든다. 충돌에 대한 내성 또한 약해졌다. 함께 우정 여행 가서 우정이 깨지는 이유다.


어쩌면 사람의 관계에서 길이보다 깊이가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결국 가까이 지내면서 나와 공감하고 나의 평범한 안녕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붕우朋다.


친구의 잘 된 모습이 편치 않고, 친구의 신병을 소문이나 내는 사람은 붕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먼저 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브런치 작가 개살구님의 절절한 사연을 여기 소개한다. 마지막 줄이 참 안타깝다. 


https://brunch.co.kr/@45d6938e127f47f/157


제목 사진 © nixcreativ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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