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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08. 2023

이름값 하는 한국의 정당政黨

붕朋과 당黨의 차이

한국어의 명사에서 한자어의 비중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개념어 빈도가 높은 학문적 영역으로 가면 보조사를 빼고는 모두 한자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한자어 어휘가 모두 중국어에서 온 건 아니다.


'관찰觀察'이나 '망신亡身'은 우리말에 깊숙이 뿌리내린 한문 차용 개념에 속하지만, '과학科學', '사회社會', '철학哲學'처럼 일본 사람들이 19세기 경 서양 학문과 기술을 도입하면서 만들어 낸 신조 한자어도 있다.


한자는 글자마다 뜻이 있어 길고 복잡한 의미를 간단하게 줄여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한자로 구성한 단어는 각 글자의 뜻이 살아있어야 제값을 한다.


'망신亡身'은 '망亡'과 '신身' 두 글자의 뜻이 모여서 '명예, 체면 따위가 손상된다'라는 뜻이 된다.


'분별分別'도 살짝 다른 개념의 '분分'과 '별別'로 이루어졌다. 우리말로 새기면 '나눌 분分' , '나눌 별別'로 '분별' 이 안되지만 영어로 '분分'은 divide로, '별別'은 separate 정도로 번역이 되는 바 두 개념의 차이를 대략 식별할 수 있다.


'분分'이 한 개를 여럿으로 나눈다는 뜻이 강하다면 '별別'은 복수의 개체(= 무리)를 여러 묶음으로 가른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분별'은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을 한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저 '구별한다'로만 이해하면 단어의 기능을 다 쓰지 못함이 된다.


이렇게 약간일 망정 다른 뜻의 두 글자를 합성한 단어인데 이제는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 어휘가 무수히 많다. '어차피於此(於)彼' 같이 순우리말에 버금가게 동화되어 '어차피' 한 뭉치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굳이 글자별로 뜻을 헤아려봐야 실익이 없다.


그러나 '차이差異'에서 '차差'와 '이異'의 같은 듯 다른 개념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단조롭게 '다름'으로만 받아들이면 좀 밑지는 장사다.


복합적으로 함축한 한자어의 풍성한 의미가 납작하게 압축되어 평면적으로 통용되고 두 글자가 눌어붙어 박제되면, 개별 글자 단위가 가지 쳐서 신조어를 파생시키는 재미도 없어진다.


'붕당朋黨' 이 그렇다.






조선왕조 실록에 붕당朋黨이 언급된 기사가 꽤 자주 나온다. 오늘날 정당政黨에 해당하는 당파를 당시엔 붕당朋黨이라고 싸잡아서 불렀다.


하지만 동양 고전에는 붕朋과 당黨의 본질을 구별한 용례가 다수 나온다.


붕朋이나 당黨은 공통적으로 ‘무리’를 뜻하지만 각각 무리 짓는 동기가 다르다. 논어 첫 머리 '유자원방래...'에서 붕朋은 뜻을 같이 하여 동문수학한 벗 들인 반면 당黨은 이익利益을 추구하기 위해 뭉친 집단이다.


중국 송나라 때 정치가 겸 문인이며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歐陽脩는 관료사회를 일신하는데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붕당론朋黨論에서 군자가 군자와 더불어 모이며, 소인배가 소인배와 더불어 모이는 건 자연의 이치와 같다고 역설하면서 붕朋과 당黨의 개념을 확연하게 구별해서 논했다.


그러나 신의 생각으로는 소인小人은 붕朋이 없고 오직 군자君子라야 그것이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소인이 좋아하는 것이 이익과 녹봉이고, 탐내는 것은 재물과 화폐입니다. 그 이익을 같이 할 때 잠시 서로 끌어들여 당黨을 만들면서 붕朋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신은 소인은 붕朋이 없고, 그 잠시 붕朋이 된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군자君子들끼리는 도道를 같이 하면서 서로 도움을 줍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나라를 섬기기에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시종 한결같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들의 붕朋입니다.

구양수


재물을 탐하는 소인들이 이익을 같이 할 때 잠시 끌어들여 당黨을 만들고,


도道와 의義를 지키는 군자들이 도를 같이 하면서 서로 돕는 게 붕朋이라는 주장이다.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군자부당 君子不黨’도 같은 맥락으로 '군자는 당黨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혹자는 당을 '편든다'라고 해석하기도 함)


이익단체에 가까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당政黨 그 명칭이 불행하게도 구양수 붕당론의 구분에서 당黨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당을 위해 개인의 안위를 희생한다면서 선당후사先黨後私 운운하는 기사를 가끔 본다. 사익을 위해 모인 자들끼리 가당치 않는 생색이다. 차라리 조폭처럼 조직을 배신하고 살신성인하는 게 도리가 될 수도 있다.


대한한국의 당黨이 붕朋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런데,


주역周易의 정치 철학은 과시 파격적이다.


주역의 11번째 지천태地天泰 괘에서 군주의 덕목으로 네 가지를 주문하는 데 마지막이 붕망朋亡이다. 가까운 벗, 무리를 버리고 멀리 있는 사람을 데려다 쓰라고 하고있다.


[九二] 거친 것을 포용해 주고, 황하黃河를 맨몸으로 건너는 용맹을 쓰며, 멀리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 붕비朋比를 없애면 中行(중도)에 배합하리라.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주역 지천태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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