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에서 만난 사람들
경남 의령읍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약 15 분 정도 올라가니 자굴산 자락에 자리한 농업회사법인 의령 조청 한과가 나온다. 주말이라 그런지 널찍한 주차장이 비어있고 체험장 건물에 들어가 봐도 컴컴하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는데 저만치서 누가 걸어오길래 건물 앞에 서서 기다렸다. 한 노신사가 와서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민다. 최성대 대표였다.
지방을 여행할 때 모르는 이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는 드물다. 작년 가을엔 산청의 서당 마을을 지나는데 길 옆에서 감을 따던 청년이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한다. 반가워서 몇 마디 물어보니 우리말이 서툰 태국 근로자였다. 농촌 마을에서는 낯선 외지 사람을 보면 자연히 경계한다. 내 행색과도 관계가 있겠으므로 그러려니 한다.
의령조청한과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 자굴산로 137
최 대표 부부는 30여 년 전에 이곳 의령 칠곡면에서 조청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가 제조한 엿질금(엿기름)을 사용해서 조청을 조리고 한과를 생산하고 있다. '의령조청한과'의 상호는 조청에 방점이 찍힌다. 오랜만에 '엿질금' 소리를 듣는다.
최 대표는 옆 동네인 가례면 출신인데 자굴산의 산세가 좋아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도로명 주소도 자굴산로.
조청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니 주중에 오면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가서 김현의 식품 명인을 소개받아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최성대 대표의 부인이었다.
김현의 명인은 당시 정부에서 시행하는 쌀 가공 산업 육성 정책의 지원을 받아 조청 제조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명인이 공무원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과 정부 융자금에다 논밭까지 처분해서 다 넣고 인생까지 걸었다고 한다.
조청造淸의 뜻은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다. 꿀이 귀하던 전통 시대에 서민들이 곡식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천연 감미료가 조청이다. 곡류에 엿기름을 섞어 당화糖化 시킨 후에 농축해서 만든다.
엿기름은 보리가 발아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효소로서 양조 업계에서는 맥아라고도 부른다. 겉보리의 싹을 2 센티 정도 틔워서 햇볕에 말린 다음 싹과 뿌리를 비벼 없애면 엿기름이 된다. 엿기름은 기름(油)이 아니다. '기르다' 동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엿기름 가루를 망에 집어넣고 조물조물 찬물에 빨아서 나오는 뿌연 물을 찹쌀 고두밥에 넉넉하게 붓고 섭씨 65도에서 8시간 삭히면 식혜가 된다. 어렸을 적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놓았던 밥통이 생각난다. 식혜의 건더기를 꼭 짜내고 국물만 푹 졸이면 조청이 되고, 조청을 더 고아서 굳히면 엿이 된다.
조청은 피를 맑게 하고 세포 재생에 도움을 주는 천연 감미료다. 설탕에 비해 당도가 낮고 서서히 흡수된다. 조청은 엿이나 한과 외에 고추장 담을 때도 들어가고 볶음 반찬 등을 만들 때 설탕 대신에 첨가한다.
별다른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당류 외에도 다양한 영양소와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어서 갈색 빛깔과 특유의 구수하고 달콤한 풍미가 난다. 김 명인의 표현을 옮기면, '조청은 자기 색깔을 속일 수가 없어서' 다른 음식의 투명도를 유지하거나 과자 등의 색깔을 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김현의 명인 부부는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 8000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전통식품을 연구하고 생산해 왔다.
조청은 원가가 높고 제조 공정이 까다롭다.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한과 또한 자동화가 어려워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높은 단가와 낮은 생산성으로 약화된 기업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해 모색한 방안이 6차 산업이다. 현대식으로 지은 전통 한과 문화 체험관에서 쌀 엿강정 만들기, 전통 고추장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체험객을 위해 너른 잔디밭에 놀이터와 파크 골프 코스까지 조성해 놓았다. 정부에서 인증한 농촌 융복합산업 사업자 명패가 벽에 걸려있다.
농촌 융복합 산업 : 농업인 또는 농촌지역 거주자가 농촌지역의 농산물 · 자연 · 문화 등 유형 · 무형의 자원을 이용하여 식품가공 등 제조업, 유통 · 관광 등 서비스업 및 이와 관련된 재화 · 용역을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제공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높이는 산업
건강한 단맛의 조청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으로 인해 물엿으로 대체되고 있다.
물엿은 주로 옥수수 전분에 산을 넣고 농축해서 정제한 공산품이다. 수분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몇 가지 종류의 당으로만 구성되어서 투명하고 냄새가 없으며 단맛이 강하다. 조청에 비해 값이 싸고 사용이 편리해서 음식 조리, 가공식품에 많이 쓴다.
'물엿'은 사전에 ‘아주 묽게 곤 엿’으로 나와있다. 사전적으로는 조청이 바로 물엿이다. 그리고 '엿'의 정의는 '곡식으로 밥을 지어 엿기름으로 삭힌 뒤 겻불로 밥이 물처럼 되도록 끓이고, 그것을 자루에 넣어 짜낸 다음 진득진득해질 때까지 고아 만든 달고 끈적끈적한 음식'이다.
그러나 시중에서 파는 물엿은 쌀로 만들지도 않고 엿기름도 안 들어가는 정제당일 뿐이며 엿이 아니다. 조청이나 엿과 성분도 다르다. 그런데도 물엿 명칭은 묽게 풀어놓은 엿이라는 어감을 준다. 참으로 엿 같은 경우가 아닌가?
개나리는 나리가 '전혀'아니다. '꽈'가 다르다. 개나리는 물푸레나뭇과, (참) 나리는 백합과 식물이다.
마찬가지로,
물엿은 엿이 '전혀' 아니다. 제조 공정과 성분이 다르다. 물엿은 옥수수 전분을 산이나 효소로 분해해서 정제하고, 엿은 곡류를 엿기름에 담가 삭히고 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