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귀하던 원시시대,
중동에 모여 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동쪽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커다란 불덩어리를 향해 떠났다. 밥을 든든히 먹고 떠났다.
다른 한 무리는 서쪽 지평선으로 지는 커다란 불덩어리를 보고 떠났다. 밥을 든든히 먹고 떠났다.
동양에서는 아침밥이, 서양에서는 저녁밥을 더 쳐주는 유래를 설명하는 설인데 그럴듯하지만 꾸며낸 얘기 같다.
품이 많이 드는 쌀농사는 동양의 경제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농부들은 하루의 첫 끼인 아침밥을 챙겨 먹고 노동 생산성을 높였다. 반면에 서양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마지막 끼인 저녁식사가 일을 마친 후 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동양과 서양을 두 집단으로 일반화하기보다 그 시대에 먹고살았던 (생산과 소비) 형태에 따른 노동시간의 변화로 정리하는 게 온당할 듯하다.
하루 종일 사냥한 동물이나 수집한 식물을 모아서 저녁에 나눠 먹던 수렵채집 시대에 이어, 농경 사회에서는 고된 농사일 전에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고, 다시 산업 사회에 들어와서는 바쁘다 보니 아침은 간단하게 때우고 저녁이 되어서야 푸짐하게 먹게 되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나 어려서는 아침 밥상에 미역국이 오르는 날은 식구 중에 누군가의 생일이었고, 수북하게 고봉高捧으로 담은 쌀밥 앞에 앉은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동네 어른께 와서 진지나 드시라고 초대할 때도 아침 생일상이었다.
우리나라는 농사짓는 사람이 인구의 90% 이상이었던 농업국가였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인구의 90% 이상이 제조업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산업국가다. 농업인구는 전체 5%를 밑도는 데 식량은 남아돈다.
자연히 우리나라도 저녁밥이 중요해졌다. 가족 유대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강화(=접대) 하는데도 저녁이 큰 역할을 하다못해 때로는 지나치다. 식탁에 녹색 병이 늘어서면서 사악한 거래가 완성되는 것도 음침한 저녁 자리다. 찬란한 햇살이 비껴 들어오는 아침 밥상은 부정을 도모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아침밥 먹는 둥 하고 학교로 내빼는 아이들에게 한 술 이래도 더 멕이려고 실랑이하는 엄마는 영화(방화, 외화 양쪽 다)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사회에서도 아침 거르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침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언론 기사가 엄마의 잔소리를 대신한다. 논산에서 훈련받을 때 잠이 부족하면서도 아침밥을 먹는다는 기대에서 아침 기상을 기다렸다. 5분 더 자려고 아침밥을 거른다는 요즘 사람들도 좀 굶어보면 달라질 텐데.
우리말에서는 '아침', '저녁' 같이 때를 가리키는 말이 해당 시간대에 먹는 끼니의 명칭을 겸한다. 지금은 자주 쓰지 않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을 '조석 朝夕(아침 저녁밥)을 걱정'한다고 표현했다. 하루 중 끼니때가 일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언제부터인지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조식이라고 부르던데 별로 정이 안 가는 국적불명의 언어다.
예전 중부 유럽 같은 데서는 저녁 대신에 점심을 잘 먹었다고 한다. 원래 영어의 디너 dinner 는 때와 상관없이 하루 중 제일 중요한 끼니를 일컫는 말이었다. 내 유럽 친구 하나는 꺼떡 하면 'lunch와 'dinner'를 헷갈리는데 그 사람의 출신 지역을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 우리는 hair를 head라고 할지언정 lunch와 dinner를 바꿔 쓰는 일이 거의 없다. )
규모가 작은 유럽 호텔에서 대개 그냥 주는 아침밥은 단촐하고 차갑다( 실제로 차다, 커피 빼고). 빵 쪼가리와 주스 따위가 전부인데 조금 더 쓰면 햄 같은 거 내논다. 커피 인심은 후해서 사발에다 준다. 좀 기름진 영국식과 구별해서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실하게 먹고 하루를 시작해서 그런지 그 사람들 오전엔 비실비실, 비몽사몽 헤매는 듯하다, 내 눈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밥심으로 일했다. 만일 빨리 맛있게 먹는 밥심이 한국의 경제 도약에 일익을 했다고 가정하면, 요즘처럼 아침밥을 괄시하는 세태가 불안하다.
(표지사진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