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Jul 29. 2023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

공동체 의식

https://www.chosun.com/economy/science/2023/05/25/STZKDU47YJC23KGQU3KMNW63YU/


지난 5월 전남 고흥에서 우리 기술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 누리호의 3차 발사에 성공했다. 지난 10년간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국민들은 안도했고 역경 속에서 땀과 열정을 아끼지 않는 실무자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그러자 어느 신문에 '누리호 엔지니어들이 임신한 아내는 못 챙겨도 부품은 확실히 챙겼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관련 기술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좀 부풀리기는 했지만, 가정생활을 희생해 가며 국가 숙원사업에 매진한 그들에게 사람들은 고마워했다. 직장 일로 가족을 소홀히 한 가장을 은근히 찬양하는 게 우리 정서다. 80년 대엔 상사가 퇴근길에 제안(=지시) 한 회식에 가느라고 결혼기념일 저녁 약속을 못 지켜도 그러려니 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029500157&wlog_tag3=naver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감염병 대응에 중심 역할을 한 이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었다. 한결같이 노란 민방위복을 입고 하루에 몇 차례씩 테레비 뉴스에 나오는 정 본부장이 익숙해질 무렵 사람들은 '수척해진 모습', '거의 밤새는 듯' 해가며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정은경 본부장의 흰머리 그리고 그녀의 조직에서 소비한 김밥 같은 소박한 간식 메뉴를 취재해서 '몸을 돌보지 않는' 공직자의 자기희생정신을 칭송했다.



https://www.insider.com/deborah-birx-coronavirus-task-force-scarves-2020-4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정 본부장 비슷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가 데버라 벅스 박사다. 그녀는 백악관 코로나 대응 조정관( White House Coronavirus Response Coordinator)을 맡아 앤서니 파우치 박사와 함께 미국 정부의 코로나 정책을 지휘하면서 거의 매일같이 브리핑에 나왔다.


데버라 벅스 조정관은 브리핑 자리에 화려한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나와서 미국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암울한 시기에 시민들이 그녀의 패션을 통해 희망과 긍정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일 당시 정은경 본부장이 노란 민방위복 대신에 미국의 벅스 박사처럼 화려한 복장으로 대중 앞에 섰다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공직자라고 비난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온 국민이 기원하는 거국적 프로젝트가 성사되거나,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면 으레 주인공들의 숨은 노력을 '발굴'한 기사가 따른다. 라면만 먹었다든가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먹고 자고 했다는 처절한 서사가 단골로 등장한다. 특히 일과 훈련에 몰두하느라고 만삭의 아내를 돌보지 못했다거나 아버지 임종을 놓쳤다는 대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동을 먹는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어서 전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함께 나누고 협력하여 해결하려는 특징이 있다.


전체가 하나의 태도로 일관一貫하는 자세를 기대하는 우리 사회에서 전체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튀는 행동을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고위 공직자가 어쩌다 이 흐름에 역행하면 국민을 좌절시키고 사회의 엄청난 지탄을 받는다.


얼마 전 전국적으로 수해가 속출했을 때 해외 출장에 나섰거나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곤욕을 치른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이 그렇다. 당사자들은 해외여행과 골프가 정작 수해 복구나 지원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고 억울해했지만, '분위기' 파악에 실패한 한 죄과로 결국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서양에서도 공직자가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난받는 사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 때 파티를 열었다가 들통이 난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수상의 경우 방역 규정을 어긴 '위법'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공동체 의식 부재를 공공의 안녕에 대한 배신으로 연결시키는 우리의 정서와는 온도차가 있다.


https://www.cbsnews.com/news/boris-johnson-partygate-apology-covid-lockdown/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고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가족 중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나아가 자기희생적인 측면을 도덕적 가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동생 대학 등록금을 대기 위해 버스 안내양을 자원한 누나들은 전설이 아니다, 그 누나 몇 명은 아직 이 땅에 살고 있을 것이다.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기희생적 정서가 우리나라 경제의 압축 성장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을 전체의 일부로 인식하는 고 맥락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조직을 위해 자신의 가장 가치 있는 무언가를 지불하는 자기희생이 당연시되고 때로는 강요된다. 


'일관一貫'은 엽전 꾸러미처럼 처음과 끝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일관성 있는 개인의 언행은 듬직하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체는 위험하다. 공동체 의식과 전체주의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단일한 가치의 질서에서 개인을 ( 좀 외롭긴 하지만) 독립시키는 경향이 일과 가정의 균형에 대한 인식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자기의 이익을 깎아서 사회에 기여하는 뺄셈의 헌신도 있지만, 자기의 능력을 내세워서 사회를 선도하는 덧셈의 영웅도 있다.


주역의 산택손 山澤損 괘는 산 아래 연못이 있는 형상인데, 이것은 아래에 있는 연못 바닥을 파서 그 흙을 산 위에 보태어 높여 주는 것을 표상한다. 이와 같은 손損괘의 상은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하층부를 이루는 민중들을 수탈해서 상층부를 이루는 지배층을 살찌우는 것을 상징하므로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손괘 [損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표지 사진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chael Knoll님의 이미지

작가의 이전글 인사는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