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길거리에서 신문이나 담배 파는 작은 간이매점을 키오스크 KIOSK라고 불렀던 것 같다. 이제 거의 모든 패스트푸드 점은 키오스크 단말기가 손님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기계의 도움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할 때 키오스크가 해준 지는 오래되었고 미국엔 입국 수속까지 키오스크로 하는 공항이 늘어나고 있다.
공항에서는 카운터로 직접 가서 수속하는 선택이 있지만, 키오스크를 거치지 않으면 주문할 도리가 없는 식당이 많아졌다. 컴퓨터 게임으로 단련된 요즘 고객들은 수많은 메뉴, 추가, 사이드, 음료 따위를 능란하게 선택하고 주문과 지불을 처리한다.
식당에서 손님이 종업원을 대하는 기회는 주문할 때, 음식 갖다 줄 때 그리고 음식값을 낼 때의 세 번인데 키오스크는 그중 주문과 지불을 깔끔하게 대행해 준다. 음식을 사물함 같은 데다 넣어주기도 한다니 잘하면 식당에 들어가서 종업원 마주치지 않고 먹고 나올 수도 있겠다.
이렇게 키오스크를 통하는 비대면 방식은 인건비뿐 아니라 종업원의 감정 노동 부담도 줄여준다. 고객 입장에서도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복잡한 주문을 주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자발적으로 기계에다 카드를 물리면서 '지출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도 있다.
반면에 오랫동안 사람이 해왔던 일을 기계에 맡기는 불편의 그늘도 있다.
기술을 이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용 경험이 적거나 덜 민첩(=빠릿빠릿) 하면 기계와의 대화가 어눌해지며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화면 빽빽하게 전개된 정보와 끝없이 강요하는 결정에 압도되어서 어리바리하다 잘못 누르고 진땀이 나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다. 천신만고 끝에 주문을 '완수' 해놓고도 정신이 반쯤 나가서 신용카드를 꽂아 놓은 채로 돌아서기도 하고.
늙으면 행동이 둔하고 시각과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노인들에게는 키오스크 화면에 투사된 시각 정보를 파악하고 조작하는 작업이 틀린 그림 찾기 게임만큼이나 만만치 않다. 게다가 화면을 보면서 뭘 먹지... 하며 '연구' 하다가는 시간이 초과되어서 화면이 넘어가기 일쑤다. 이미 시킬 것 다 결정해 놓고 뒤에서 기다리는 젊은 '선수'는 답답해서 미친다.
한국인에게는 대체적으로 '조급한 정서'가 있다. 줄 서 있는데 앞사람이 꾸물대면 (바쁘던 안 바쁘던) 초조해지면서 원인 제공자를 조용히 저주한다. 키오스크 앞에서 고군분투하던 노인은 한국인 또 하나의 특징적 정서인 '남의 눈치'가 보여 중도 포기하고 링에서 내려온다.
키오스크는 아무래도 디지털 기기를 많이 이용하는 젊은이 친화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패스트푸드 가게한테 주 고객층도 아닌 노인을 위해 전용 창구나 경로 키오스크를 따로 운영하라고 강제하면 비시장경제적인 팔 비틀기가 된다. 다만 키오스크 메뉴를 가급적 알아먹기 좋은 말로 바꾸는( 지금은 한글로 되어있지만 영어 발음기호 수준임) 등 돈 더 안 들이고 기술 취약 계층에게 도움 주는 방법은 고민해 볼 만하다.
한편 노인들도 결제 단계에서 먹통이 되었다고 키오스크에 대고 버럭 역정만 낼 게 아니라 사용법을 숙지하도록 노력해서 점점 늘어나는 키오스크 거래에 적응하는 게 현명하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하는 지자체도 있다고 들었다.
내가 가끔 가는 김밥집 주인은 키오스크를 설치한 다음부터는 카운터에서 빤히 보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아마 키오스크에 주문뿐 아니라 인사까지 맡겼다고 생각하나 본데, 기계에 녹음된 인사말은 인사가 아니고 안내다. 인사人事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소비자 응대를 기계가 대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인간 상호작용의 결핍은 개인화된 서비스와 따뜻한 환대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종업원이 싹싹해서 단골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키오스크가 재미있는 식당만 고집하는 경우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접객 방식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 대신에 기계와 소통하는 섭섭함의 일부를 보상하는 인공 지능 기반의 키오스크가 이미 소개되고 있다. 주문자의 목소리를 인식해서 메뉴 선택과 결제를 도와주는 직관적인 프로그램이 노인 사용자의 애로사항도 동시에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
2035년 어느 날 점심시간, 박 과장은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A.I. 키오스크는 박 과장의 생체정보를 인식하고 대화형 주문 절차를 시작했다.
박 과장은 평소대로 빅맥 +후렌치 후라이 세트를 선택했다.
박 과장의 최근 건강검진 정보를 업데이트한 A.I. 키오스크는 빅맥 세트 대신 샐러드와 그릴드 치킨을 역 제안했다.
A.I. 키오스크가 측정한 박 과장의 현재 심박수와 검진 정보를 종합 평가한 결과 지방 함량과 열량이 높은 햄버거가 박 과장의 건강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과장이 먹고 싶은 빅맥을 관철하려면 박 과장의 원격 주치의가 A.I. 키오스크에 승인 코드를 입력해 줘야 한다. 점심시간이라 통신이 안되고 들어 줄리도 없다.
박 과장은 체념하고 A.I. 키오스크가 제안한 샐러드와 그릴드 치킨의 주문에 동의했다.
박 과장은 식당이 지원하는 암호화폐를 선택하고 키오스크의 지갑 기능으로 돈을 냈다.
A.I. 키오스크 하단에 깜박거리는 박 과장의 실시간 혈압 수치가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