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에 대한 얘기
현판 사진 출처 : 영남일보
"한국으로 모셔갈 만큼 (아버지가) 회복이 안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미국에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임종 때 곁에서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애도해야 하기 때문에.. "
영화 '콜럼버스'(코고나다 감독, 존 조 주연)에 나오는 살벌한 대사 한 대목. 쓰러져서 미국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시지 않는 이유가 부모 임종의 강박과 애도 방식 때문이라고 주인공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장례 절차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으리라.
부모의 죽음을 두고 자식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처신마저 격식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엔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초상집에서 상주가 일정한 리듬으로 소리 내어 곡哭을 하는 절차도 있었다.
과거 전통시대에는 부모상을 당한 상주를 효孝의 실천에 실패한 죄인으로 여기고 임종에서 장례에 이르는 절차가 슬픔과 아울러 죄책감을 반영하도록 설계되었다. 효가 부모 사후까지 연장되어서 장례와 제사로서 불효를 보완하는 개념이다.
친하다 할 때의 ‘친親'에는 부모라는 뜻도 있다. '친가親家'는 어버이가 사는 집이고 '가친家親'은 자기 아버지를 가리킨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형성하는 부모 자식 간의 가족 관계가 친근함의 원형인 것이다.
유교 사회에서는 가족 중심의 윤리 체계를 강조했고 그중에서도 어버이를 잘 섬기는 효가 가족 구성원 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가치로 부각되었다.
나아가 가족의 안정을 통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동양에서 효孝는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갚는 도덕적 의무를 넘어서 가족, 사회, 국가를 연결하는 핵심 사상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 먼저 자기 자신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
대학
효孝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다스리는 기초 윤리인 자효慈孝의 한 축이기도 하다. 효도에 비해서 부모의 의무인 자식 사랑(자애慈愛)을 윤리에서 강조하지 않는 건 인간 본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효도는 때로 본능적으로 자동 실행되지 않는 바 (사람의 자격 운운하며) 의무적 도리로 규정하고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가 감시하기도 했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논어論語에도 효가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묻는 제자에 따라 공자가 말하는 효의 정의가 다양하다.
효는 부모를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가,
부모 앞에서 얼굴빛을 온화하게 만드는 것이 효라고도 했다.
그런데 공자는 논어 이인 편에서 '이제까지 부모가 살아계신 게 다행이지만, 여생이 그만큼 짧아진 것은 걱정스럽다'라는 딜레마를 토로한다. 사실적 (그렇다는... ) 이기도 하고 교훈적(그래야 마땅하다는...) 이기도 한 자식의 심정이다.
부모의 나이를 모르면 안 된다. 한 편으로는 그것으로 인해 기쁘고 한 편으로는 그것으로 인해 두렵다.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논어 이인 편
이 대목은 '애일愛日'의 개념과도 통한다. 한나라 때 양웅이라는 학자가 쓴 법언法言이 원전이라고 한다. 여기서 '애愛'는 사랑보다는 '안타깝다'로 새긴다. 즉 노부모를 섬길 수 있는 날이 줄어들어 하루하루가 안타깝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 중에 당호堂號를 애일당愛日堂 이라고 붙인 집들이 더러 있다. 안동 도산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고택과 광주의 고봉 기대승 고택이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는 가족 간의 유대가 확대되면 국가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사회 과학적 셈법이 고려된 반면, 서양에서는 법률적 규칙 준수를 국가 안정의 장치로 삼았다.
우리 사회에 서양의 개인주의 패러다임이 녹아들면서 동양적 효 사상이 고전적 가치로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부모 봉양을 '아웃소싱'하는 사회 풍토와 맞닿아 있다.
제자 자유子游가 효가 무어냐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오늘날 효라고 하면 부모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개나 말도 모두 기르는 일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논어 위정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