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록 하겠다'라는 말.
위에서 인용한 대목들처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소리를 요즘 들어 언론에서 자주 듣는다. (해) 보다+ '(하) 도록이 결합된 표현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보다'는 [한 번 먹어보다.] 같이 어떤 행동을 시험 삼아한다는 보조 용언이고,
'도록'은 뒤에 나오는 사태의 목적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순서와 과정의 연결어미다. [예, 나무가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다.]
덜 단호한 명령의 용도로도 쓰인다. [예, 몸가짐을 단정히 하도록 해라.]
또는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서와 같이 약속이나 의지의 표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방송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보도록 하겠습니다.]는 대부분 맥락에서 소용이 명확하지 않다.
[자세한 날씨는 기상 캐스터 연결해서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를 보면 목적이나 명령 용법은 해당이 안 되고 그렇다고 화자話者의 의지나 약속 따위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듣겠습니다]와 비교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는 5자에서 10자로 말만 두 배로 늘어났지 (말하고 듣는) 비용 대비 부가가치는 별로 없다.
그러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위 같이 말을 잡아 늘이는 이유가 무얼까.
혹시 1, [그 방법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한 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에서의 용례같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라면? : 방송에서 사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하는데 뭐가 켕긴다는 말인가.
혹시 2, 말을 길게 끌면 정중해 보일까 봐? : 실속 없이 말만 주저리 늘어지면 오히려 듣는 이에게 혼란만 준다.
혹시 3, 누가 쓰는 걸 한 번 봤는데 그럴듯해 보여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한 말이 명료하다.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을 췌사贅辭라고 한다.
군더더기 말은 소음이다. 소음은 듣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