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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20. 2023

늘려야 할 건 말이 아니라 사랑이다.

쓸데없는 소리 3

팬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헌신하는 경찰관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론 보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공식 석상에서 자주 듣는 감사 표현이다.


'감사합니다' 와 비교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 상대방의 도움이나 호의를 더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속 없이 말만 두 배로 늘어났을 뿐.


'감사感謝'  '고맙게 여기고 사례하다' 라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이 두 글자에 이미 고맙다는 의사 표시가 사실상 다 들어가있다.


우리는 이런 동사적動詞的 한자어에 '하다' 기능 동사를 붙여서  '감사하다' 라는 용언으로 만들어줘야 말이 된다. 억지로 풀어보면 '고맙게 여기고 사례하다를 하다'가 되어 행위의 뜻이 겹치지만 어쩔 수 없다.  '박수 치다'  '낙엽이 떨어지다' 도 비슷한 겹말이다.


여기에 다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라는 혹을 달면 사족蛇足이나 다름없다.


'고맙다' 나 '감사하다' 로 고마운 마음이 깔끔하게 드러난다. 좀 부족하다 싶으면 '대단히' , '너무' 따위 부사를 앞세워 강조할 수 있다.  




관계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큰 실망을 드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드린다.
'노메달' 사과 말씀드린다.

언론 보도


사과는  '미안하다'나 '잘못했다' 또는 '죄송하다' 같이 짧게 끊는 게 효과적이다.(=가성비가 좋다.)


공식 석상에서는 대부분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라며 말을 늘인다. 말을 하면서 말을 한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긴다.


사과할 마음은 없고 형식적이고 계산적인 '말씀'(=입)으로 때운다는 얘긴가?  


뒤에 덧붙이는 걸로 모자라서 앞에다 늘어놓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국민 눈높이...' 류의 변명조나, '- 했다면' 따위의 조건부로 사과에 물을 타서 듣는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한 말이 명료하다.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을 췌사贅辭라고 한다.


군더더기 말은 소음이다. 소음은 듣기 싫다.




말을 늘린다고 감사와 사과의 양이 늘어나지 않는다. 늘려야 할 건 말이 아니라 사랑이다.


달팽이는 짧은 사랑도 길게 늘려 놓는다.

신광철 시인의  <달팽이의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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