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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21. 2020

잘못된 기억을 우기는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작은 농막에 가끔 간다.  와이파이도 안되고 테레비도 없지만 편안하다. 비 오는 날은 더 좋다. ( 마당 일을 안 해도 된다.)  각설하고,  십여 년째 다니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영월 집'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30 퍼센트는 영월을 평창, 태백 등 다른 이름으로 물어본다. 그래도  울진이나 괴산처럼 멀리 가진 않고  같은 강원도 안에서 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평창이니 정선이니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럴 때마다 '웬 태백?  영월이라니까'라고 고쳐줘도 담에 만나면 다시 태백으로 돌아간다. 이젠 포기했다. 택시 타고 전설의 고향 가자면 예술의 전당에 데려다주듯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된다. 영월을 평창으로 기억하던  태백이라고 하든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런데  회사에서 경영자가 잘못된 기억을 우기면 문제가 크다.


부하들이 아니라고 하면 화를 낸다. 우두머리가 엉터리 사실을 120 퍼센트 확신하고 주장하는데 회사 내에선 당할 사람이 없다. 이것을 오기억이라고 하는데 정보의 조각들이 인지認知 착각에 의해  잘못 조립되거나 이미 가지고 있던 정보의 틀(=선입견)에 변형되어 입력되면서 진실로 굳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그 틀은 완고해진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계열사를 방문했는데 그때가 8월 첫 주였다. 회장이 한 임원을 찾으니 제주도에 갔다고 한다. 회장은 자기가 오는데 휴가 간 임원이 언짢았다. 사실 그 사람은 제주도 리조트 현장에 대형 입찰이 있어 출장을 간 터였다. 나중에 그 일은 회장에게 해명이 되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임원은 승진 심사 때마다 번번이 회장 선에서 퇴짜가 났고 끝내 퇴직하고 말았다.  한 번 잘못 입력된 기억은 좀처럼 수정이 안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 부정확한 정보나 소문으로 인해 굳어진 경영자의 신념이 기업의 핵심 정책을 그르칠 때 문제는 심각하다. 신념이 아니라 편견이고 고집이다. 시멘트와 같아서 한번 굳어지면 부수지 않는 한 풀 수가 없다. 섣불리 깨려다 자칫 파편이 튀어 다칠 수도 있다. 부하 입장에선 그러려니 하고 맞춰주는 게 차라리 신상에 이롭다. 세상엔  경영자의 아집을  '굽히지 않는 소신'으로 미화시켜 놓은 성공 신화가 많다. 자격 없는 경영자들은 주위의 고언이나 부하들의 충언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말릴수록 더 버티며 조직을 위험에 빠뜨린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기업 현장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 문제를 풀 사람은 경영자 당사자밖에 없다.  반복되는 문제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고치든지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고치는 게 어렵다.  너무 많은 기억을 관리하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정 반대의 경우도 문제다. 회사의 집단 기억상실증이다. 회의를 하다가  오래전에 저장한 화일이나 이메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느 폴더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나 한참을 뒤적거려도 안 나온다. 근무시간 29%를 자신과 조직의 데이터를 검색하는데 낭비한다는 통계도 있다. 화일 검색 소프트웨어 팔기 위해 부풀린 숫자인지 몰라도 이런데 시간을 꽤 잡아먹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자료가 아예 없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것도 개인이 아니고 회사 전체의 축적된 노하우의 기록을. 이런 회사 차원의 데이터 손실이 인터넷 해킹에 의한 범죄보다는 바로 직원의 이직으로 빈번하게 발생한다. 직원이 은퇴하거나 이직할 때 동시에 소중한 데이터가 함께 걸어 나간다. 유에스비를 들고나가는 게 아니고 노하우나 기술이 회사와 후임자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은 채 퇴직해 버린다.  장기 근무한 직원일수록 송별회만 신경 쓰지 오랫동안 쌓인 무형의 자산을 옮겨 놓는 작업이나 절차는 의외로 허술하다.  직원들의 이동이 점점 빈번해짐에 따라 이는 기업 경영에 큰 위험으로 작용한다. 이미 퇴직한 전임자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동안 생산성과 효율은 크게 내려간다. 


직원 퇴직 시 성실한 업무 인계로 이런 문제를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 터지고 나서 그만둔 직원 오라 가라 하며 허둥대지 말고 사내에  CRM 같은 데이터 공유 체계를 확실히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 회계 장부 기장하듯이 (번거롭더라도) 시장 정보, 정책의 성공 실패 사례 등을 문서화하는 집단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하나 끝낼 때마다 반드시 복기해서 기록하고 열람시키는 절차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직원 간에 노하우와 생각을 자유롭게 통신하고 공유하는 문화를 북돋아주는 게 중요하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잘못된 기억과 올바른 기억의 차이를 보석의 그것에 비유했다.

보석은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화려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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