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대박, 개꿀, 지렸다, 미쳤다, 찐, 진심, 우월, 피지컬, 멘털
미국서 몇 년 살면서 언어 때문에 불편한 적이 많았다. 회사 일할 때 보다 패스트푸드 점 같은 데 가면 더 했다.
가끔 점심을 사무실 근처 맥도널드에서 사다 먹었는데 주문받는 점원의 외계어 같은 말이 알아들기 힘들었다. 그냥 드라이브 스루 (= 음주단속식 주문)를 돌면서 메뉴판에 있는 번호를 불러주는 편이 무난했다. 그러다가 방심해서 세트에서 뭐를 빼달라는 둥 토를 달았다가 낭패를 겪기도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봉지를 쏟는데 같은 메뉴가 다섯 묶음씩 나온다든지... 어쩐지 부피가 크다 했다. (영수증, 잔돈 제대로 확인 안 해서 입은 손실이 몰라서 그렇지 모아놓으면 꽤 되리라.)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의 부실한 영어 발음을 자책함과 동시에 미국 아이들의 주문배수注文拜受 태도까지 싸잡아서 원망했다. 나는 이제까지 일하면서 거래처 주문을 잘 못 받아 실수한 적 없다는 터무니없는 비교를 해가면서.
귀국해서 패스트푸드 점이나 카페에 가서 뭘 시킬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목을 한참 뒤로 꺾고 접수대 위에 걸린 메뉴를 '공부'하고 나서 주문해도 젊은 종업원은 궁금한 게 많다. 크기, 온도, 세분화된 종류, 싸 갖고 갈 건지 따위를 확인하는 건데 언뜻 안 들린다. 우리말이라고 정신 안 차린 탓도 있지만 빠르게 뱉어내는 그들의 어휘와 어법에 벙벙해했다. 거기다 코맹맹이 소리까지 섞이면 정신이 없다. 차라리 키오스크가 만만하다, 뒤에 누가 안 서있으면.
불편함의 원인은 국내외 공간적 차이 보다 세대 간 시차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나라 사람 사이에서도 세대차는 외국인과 다름없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세대가 다른 내국인보다 같은 세대의 외국인과 더 잘 통할는지도 모른다. 동일 문화권 안에서 세대 간 문화 편차로 인한 충격은 크다. 외국인을 상대할 때는 미리 문화의 차이를 접어주고 들어가지만, 동족이라고 대충 봤다가 가치관의 괴리를 목도하곤 절망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 낯설어지고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거 말고도,
언어를 사용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세대 간의 벽을 높이고 소통 장애를 야기한다.
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생겨나고 기존 어휘의 의미가 변하면서 세대 사이에 의사소통이 더욱 어려워진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구 세대가 신세대 방향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젊은 세대이고 구 세대는 외국인인 셈이다. 외국에서 살려면 현지 언어를 익히듯이 신세대의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못 마땅한 부분이 더러 있다.
매우, 몹시, 무척 등을 싹 갈아치워 버린, 긍정을 서술하는 '너무'가 비열하고,
'대박', '개꿀', '소름' 따위 강조 부사는 천박하다.
'지렸다', '미쳤다', '찢었다' 같은 감탄산지 형용산지 헷갈리는 동사는 망측하고,
'찐', '진심', '우월', '굴욕', '최애'처럼 변형된 한자어 표현이 생뚱맞다.
뭐 한다고 '피지컬', '비주얼', '멘털' 어쩌고 하며 품사가 틀린 영어를 써대는지 영문을 모르겠고,
이런 거 재 생산해서 부추기는 언론이 어처구니없다.
라고 느낀다.
경험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 세대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된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말들은 정상적인 언어의 변천이 아닌 퇴행의 결과라고 우기는 나는,
구제 불가한 찐 꼰대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