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려서는 편지 봉투 쓸 때 꼬박꼬박 서울'특별시'로 시작했다. 조선의 도읍지가 된 이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서 서울이 '특별'하긴 하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으로 서울의 특별함은 조금 퇴색했지만 경기도로 분산된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
요즘은 사적인 편지 쓸 일도 별로 없지만 서울 사람이 봉투에 굳이 '특별시'를 붙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안 그래도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따위 아파트 이름 때문에 주소가 한없이 길어지는 판인데 한 자라도 실속 없이 보탤 이유가 없다.
서울시 말고도 '특特'자 붙은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된 이래 세종시, 강원도가 그러했고 올해 초엔 전라북도가 특별자치도에 합류했다. 지자체의 특성이나 규모에 걸맞게 자율권을 확대해 주는 명분으로 '특별자치'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듯하다. 해당 지자체는 주소에 '특별자치'를 추가하고 간판과 도로 표지판도 갈아달았다. 관청의 인쇄물 양식은 교체하지 안 했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옛날 양식은 폐기하거나 이면지 함에 쌓여 소진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비용과 환경에 부담이 된다.
'특별자치'를 추진해 왔을 해당 단체 입장에서는 경사스러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 '특별함'의 수혜자는 단체장과 소속 공무원들 그리고 일부 지역주민에 국한한다고 본다. 다만 그들끼리 자축하고 길바닥으로 끌고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차를 타고 여행할 때 도로 표지판이 제공하는 지명, 행선 방향, 속도 제한, 나들목 등은 긴요한 교통 정보다. 하지만 행정구역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은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섰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시차가 발생하지도, 언어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그런데다 글자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표지판 '강원특별자치도'의 가독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행자는 지금 지나는 행정구역의 자치 수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식별 가치가 없는 표지판은 한정된 시선을 빼앗아서 되레 필요한 정보의 획득을 방해할 수 있다.
인간은 지역의 정체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지명을 선택해서 장소를 구분해 왔다. 역사, 문화, 자연환경 등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인간의 집합적 기억이자 공간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바로 지명이다. 숙원사업이었던 '특별자치도' 달성을 생색내기 위해, 역사적 경험이 담겨있는 '전라북도' 지명을 해체하고 억지로 끼워 맞춘 '전북특별자치도'는 경박하고 생뚱맞다.
물론 지명도 자연과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 그러나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관청의 업무 절차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고유한 지명을 함부로 바꾸는 행위는 문화유산 파괴에 해당한다.
강원도, 전라북도 지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간판 바꿔달지 않아도 얼마든지 특별 자치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 특별한 자치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광역단체뿐 아니라 기초단체에도 '특'이 붙는다. 창원 특례시, 수원특례시... 이러다가 '특'의 약발이 떨어지면 어떻게들 할 건지. ' TV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고 써 붙인 맛집이 생각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서울시청은 주소를 '서울특별시'로 명시한 반면, 서울대와 서울역은 '서울시'로 되어있다. 중구청, 은평구청, 동대문구청 등의 홈페이지에도 주소가 '서울시'이고 강남 3 구인 강남, 서초, 송파 구청의 주소는 '서울특별시'다. 아파트값이 특별해서 그런가?
설렁탕을 시킬 때 '특'이라고 하지 않으면 '보통'을 갖다 준다. 그러나 서울은 보통 시가 따로 없으므로 굳이 '특별'을 안 붙여도 '특별시'의 자격에 변함이 없다.
종로구청의 홈페이지에는 구청 주소가 그냥 '서울 종로구'로 시작한다. '특별'도 없고 '시'도 생략했지만 오히려 깔끔하고 특별하다. 특별함은 주소나 간판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터득한 원로 기관답다.
경기도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실현되면 글자 수가 제일 많은 자치단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