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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Feb 27. 2024

걸핏하면 바꿔대는 정부 기관의 명칭

문화재청-국가유산청

내가 만난 홍콩이나 대만 등 동남아 사람들은 대개 에디, 카리나 같은 영어 이름을 갖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 영어식 이름을 명함에 새겨갖고 다니는 이들이 더러 있기는 해도 아직 많지는 않다. 서양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후에도 여자 쪽이 본인의 성姓을 유지한다 (부부별성). '내가 성姓을 간다.'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경우 '성을 바꾸는' 징벌도 감수하겠다는 극단의 다짐이다. 이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수적인 정서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정부 조직의 이름은 얘기가 다르다. 정권을 잡으면 철학관이 된다. 국정철학 운운하면서 행정부 조직의 명칭을 개명하고 '거듭나겠다'고 선언한다. 나라 이름 안 건드리는 게 다행이다.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었다가 다시 국가정보원이 되었다. 국민의 인식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렇고 그런 이름의 간판을 계속 바꿔달았다. 내무부로 시작한 행정안전부만 해도 '행정', '자치', '안전'을 앞뒤로 돌려 막기 하면서 대 여섯 번은 좋이 명칭을 꾼 걸로 기억한다. 


문화재청을 '국가유산청'으로 바꾼다고 한다. '문화재'라는 용어가 재화적 성격이 강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변경한다고 신문에 났던데 납득이 잘 안 간다.  


'재화적 성격'은 사실 '문화재' 보다, 형제간 법적 소송이 먼저 연상되는 '유산'이 더 강하다. 혹시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기관의 명칭에 'Heritage'를 쓰는 영국 캐나다를 따라 하고 싶다면; 'Heritage'는 재산뿐 아니라, 문화, 역사, 자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가치 있는 유산을 포괄한다. 따라서 '문화유산'이라고 번역해야 의도하는 Heritage의 뜻에 충실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본래의 명칭인 '문화재'나 '문화유산'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1. 정부 조직의 이름은 기관의 역할과 목적을 명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역사와 문화를 고려해서 작명한다. 하지만 일단 정한 명칭은 그 고유성을 존중해서 변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새로 생긴 마을라는 뜻인 '신리新里'와 '새말'이 전국 여기저기에 있다. 같은 뜻의 (서울 동대문구) 신설新設동은 갑오경장 때 생겼다. 하지만 이들 동네가 이제 오래되었다고 해서 '고리古里'라고 바꿔 부르지는 않는다.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는 지도에서 보면 남북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경계하고 있다. 지금 와서 '충청동도 · 충청서도'로 바꿀 수도, 바꿀 필요도 없다. 


조직의 명칭이 내용과 모든 변화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바, 이름표를 자주 바꿔달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조직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2. 정부 조직의 명칭은 국제 사회와의 상호 교류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서 적절한 이름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를 감안해서 구성한 조직과 명칭이 다른 나라들의 조직과 딱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사한 기능을 하는 행정 조직도 나라별로 업무의 성격과 구성이 다르기 마련이다. 


FBI, Police, US marshal, Sheriff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미국의 경찰 기능을 한국의 경찰 조직과 일대일로 연결시킬 방법은 없다. 미국에 입국할 때는 이민국이 시비를 걸고,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출입국 외국인 정책 본부 (예전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여권을 심사한다.  


정녕코 기관의 명칭 때문에 국제 교류에 지장이 있다면(그런 경우가 상상이 안되지만), 영어 명칭만 슬쩍 국제 기준으로 바꾸어도 된다. 출입국 외국인 정책 본부의 영명은 어느새 이민국( Korea Immigration Service)으로 바꿔 놓았고, 여성가족부의 영명인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에 '여성'은 없다. 국가권익위원회의 영명은  'Anti-Corruption and Civil Rights Commission' 인데 갑자기 '반 부패 Anti-Corruption'로 시작한다. 


문화재청의 영어 명칭은 이미 홈페이지에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 문화유산 관리국)으로 되어있다. 굳이 영어 명칭을 따라 수십 년 쓰던 기관의 명칭을 바꾸는 행정은 본말이 전도되었고 명분도 약하다. 




행정 기관에서 종사하는 공무원에게 기관의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기관의 업무를 빠삭하게 이해하고 있는 위정자와 실무자들은 설령 명칭을 '56국' 같은 숫자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명칭의 상징성과 고유함을 인식하는 주체는 바로 일반 국민이다. 기관의 명칭을 변경했다고 관보에 싣고 언론에 알려봐야 국민의 인식을 강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앞으로 십 년 동안 '문화재청'으로만 기억하며 때때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게 다 비용이다. 돈을 차라리 전국에 박제되어 있는 향교 시설을 재활용하는 데 쓰는 실속 있지 않을까 한다. 




미국의 행정 조직명 앞에 'K'를 붙여서 한국 기관의 영어 별칭으로 삼는 요즘의 풍조는 천박하다. 테레비 뉴스에서 KCSI 로고 모자를 쓰고 현장을 감식하고는 있는 요원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내게는.  왜들 저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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