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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23. 2020

사장 말은
주어 서술어가 따로 논다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실제 작가도 모르는 작가의 의도를 도대체 누가 아는 거냐?

어느 유명 시인이 자신의 시가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자기가 모두 틀렸다면서 한 말이다. 작가가 깔아 놓은 시대적 배경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복선을 O X로 판단하는 건 무리다. 문학의 해석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경영자의 말은 문학이 아니다. 명료해야 한다. 사장하고 회의를 하고 난 후에 (사장 빼고) 따로 모인다는 회사가 있다. 사장 얘기가 애매모호하고 듣는 이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의도를 '연구'하기 위해 중지를 모은다고 한다. 황당한 건, 그런 곡절 끝에 사장이 시킨 (시켰다고 결론 낸) 대로 해서 가져갔더니 사장이 '글쎄 내 얘기는 그게 아니고..' 하면서 화를 내더라는 것. 모호한 통신이 야기한 대형 참사를 소개한다. 


1990 년 1월 25일 콜롬비아 발 아비앙카 52편 여객기가 뉴욕 JFK 공항에 착륙 중 추락하여 73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연료 부족이었다. 뉴욕공항의 기상상태가 안 좋아 몇 차례 선회를 하면서 사고 여객기는 연료가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조종사는 'priority'(우선, 긴급한 일)라는 말로 비상상황을 알렸으나 공항 관제탑은 착륙에 우선순위를 달라는 부탁으로 들었지, 비행기가 '앵꼬'될 정도로 급한 상황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스페인어 사용자인 조종사가 'priority'를 긴급함의 어감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또는 용어를 좀 순화시켜 완곡하게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때 조종사가 단도직입적으로 'emergency' 아니면 아예 'may day' 같이 규정된 용어로 외쳤다면, 공항 관제사는 즉시 공항 활주로를  비워 놓고 비상 착륙을 유도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급박한 상황을 모호한 용어로 전달하다 생긴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경영자의 통신은 연애편지도 아니다. 대기업엔 총수가 몇 마디 하면 거기 숨겨진 '깊은 뜻을 재해석' 해서 책으로 엮는 팀이 있다고 한다. 경영자가 한 말을 해석하다 진을 빼면 본론이 실종된다. 경영자 말의 핵심 메시지는 백지에 쓴 굵고 검은 글씨처럼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사무 환경에서 쓰는 언어는 미사여구를 동원한 감동의 어록보다는 말하는 이의 의도가 드러나는 직설법이 으뜸이다. 말하기 거북한 내용일수록 빙빙 돌리지 않고, 첫머리에 패대기치는 게 효과적이다. 


경영자들의 말이 모호한 이유는 대개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영자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보니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추진해야 할 행동 간에 경쟁을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면 말이 꼬이고 요점이 헷갈리는 상황이 된다. 주어를 시작했을 때는 코로나 방역을 강화였다가 서술어에 들어가면서 중소 상인들 영업 배려로 분위기가 바뀌어 끙끙대며 말꼬리를 감추는 식이다. 애인하고 속삭일 때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도 되지만, 경영자가 생각이 흐르는 대로 말을 뱉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진다. 


경영자의 말은 간단명료가 큰 가치다. 누구든지 알아듣기 쉽게 요점이 명료하고 간결해야 한다. 논리와 문법에 오류가 없는 말이 알아듣기 쉽고 전달도 잘 된다. 오해의 여지도 없어야 한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복선은 금물이다. 구설수에 오르는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말이 와전되었다고 변명하는데, 곡해의 근원적 책임은 발언자에 있다. 설사 말의 앞뒤 맥락을 생략하고 편집하더라도, 본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미리 점검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횡설수설 내뱉은 경영자의 한마디가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경영자의 말은 돈이다.


서부진언 언부진의 書不盡言 言不盡意'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주역 계사 상전

예로부터 말의 열등함을 이르는 가르침이 많다. 뜻을 말로 옮기는 게 어렵다는 말씀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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