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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26. 2020

말하는데 3년, 듣는데 30년 걸린다.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사장이 한 소리 또 해가며 몇 시간씩 계속하는 마라톤 회의는 얼차려에 지나지 않는다. 회의 끝나고 늦은 점심을 때운 임직원들은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정작 회의 내용은 아득하고 생각도 잘안난다. 회의라는 큰 일을 해 낸 당신 이제 쉬어야 할 시간이다. 경영자들이 알아둬야 할  게 있다. 회의에서 직원들한테 꾸역꾸역 잔소리해봐야 일정량을 초과하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튀어나온다. 잔에 물이 넘치는 거와 같다. 발언자가 자신 없으면 같은 소리 되풀이하게 되어있고 전달 효과는 반비례한다. 말은 간결할수록 전달이 잘 된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권리와 남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킬 권리가 많아진다.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 말은 대개 이런 권리행사로 채워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같이 상갓집에 가서도 업무 지시를 한다. 잊어버릴까 봐 지금 얘기한단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겠다는 것이다.  잘못 걸리면 일거리만 늘어나니 부하는 이런 상사와의 접촉을 일단 피하고 본다.


先行其言 而後從之 행동을 먼저 하고 말은 뒤에 따르다  : 논어 위정편


필자가 유럽 근무 초기에 네덜란드의 중요 거래선과 대표 상견례 겸 점심을 먹었다. 얘깃거리가 없었던지 나는 생뚱맞게, 독일 시내가 깨끗한 것을 히틀러의 결벽증과 연관 지어서 얘기했다. 나중에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현지인 동료한테 혼(?) 났다. 히틀러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판에 오해받을 얘기를 했으니, 극히 위험하고도 무식한 입방정이었다. 그 쯤 되면 점심 자리에 있었던 거래선이,  '그럼 유태인이 쓰레기란 말이냐'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거였다. 회사의 책임 있는 자가 외부 사람과 만나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거나, 직원들도 잘 모르는 내부 얘기를 풀어놓으면 옆에 있는 실무자는 조마조마하다. 상담은 공적인 일이다. 자기 흥에 취해 개인적인 정치, 종교 취향을 발설하는 건 금물이다. 대표이사가 정치적 관점을 표현하는 걸 금지하고 있는 회사도 많다. 

할 말 없으면 가만히 있든가 야구 얘기나 하세요!


사장이 말을 못 해서 망한 회사는 별로 없다. 사장이 말을 잘 들어서 흥한 회사는 많다. 말을 하는 데는 3년 걸렸는 데 남의 말을 듣는 데는 30년 걸렸다는 말이 있듯이 듣는 것도 능력이다. 경영자는 우선 듣는 걸 즐겨하고 그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회의 때도 이면지 쓰라는 잔소리할 시간에 질문을 유도해서 직원들이 나서서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드세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받는 보고의 양도 많아진다.  짧은 시간에 쓸 것 버릴 것 가려내고, 말하는 이의 심중,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 보고 맥을 짚는 연습을 해야 한다.  유능한 언론인은 취재원의 맘을 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상대방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가며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걸 본다. 경영자도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한자의 들을 청聽 자는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耳(귀 이)에 두 개의 口(입 구) 자만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들어주다, 판결하다, 다스리다, 용서하다, 따르다 등으로 쓰임새가 확장되면서 글자도 복잡해졌다. 말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들어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그러고 보니 성인 성聖 자가 들을 청聽 자와 닮은 게 우연은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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