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겸손은 동양의 전통적인 도덕 가치다. 주역에서 지산겸地山謙 괘는 겸손됨을 다루고 있는데 명겸鳴謙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덕이 안색이나 목소리에 나타나 멀리까지 '울려鳴' 퍼진다는 말이다. 자기 자랑을 자제하라는 가르침이다. 지금 시대의 처세로는 좀 불리해 보이지만 자기 홍보를 하지 말라는 얘긴 아니다. 자랑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전하는 거고, 홍보는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강연에 앞서 알려주는 연사의 경력은 자랑이 아니라 홍보에 속한다. 강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이므로 거북하지 않다.
부하 직원들을 붙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경영자들이 있다. 옛날 고생담으로 시작해서 자식 자랑까지 끝이 없다. (말도 못 할 고생 은 그야말로 '말을 못 하는' 법이다.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강원도의 어느 촌로는 일부러 부탁을 해도 예전에 양식이 부족해 조반석죽朝飯夕粥(아침밥, 저녁 죽)으로 연명하던 얘기를 좀처럼 안 한다.) 자랑으로 끝나지 않고, 한두 번 통한 나름 성공 노우하우를 써먹어 보려다 사고를 친다. 상상 속에서 섣불리 규칙을 부여한 가짜 성공 패턴으로 여러 사람과 회사를 고생시킨다. 와이셔츠 봉제의 경험을 유조선 용접에 응용하다가는 대형 사고가 난다.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 보려는 공명심功名心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그나마 쌓은 공덕까지 다 까먹고 만다. 아널드 토인비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하는 경우를 휴브리스 hubris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일이 많은가 보다.
어떤 심리치료사(조지프 버고)는 자기 자랑을 내면에 깊숙이 숨어있는 수치심을 방어하는 자기애自己愛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강점을 부풀리고픈 본능에서 자랑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산속에서 곰과 마주치면 큰 동작을 해서 쫓는 요령과 같다. 자랑질을 당하는 쪽은, 그 속임수를 알면 불쾌해지고 속으면 초라해진다. 좌우간 불편하다. 그러면 할 일이 쌓여 있는 부하들 불러놓고 의사 며느리 자랑하는 경영자의 행위 동기는 무엇일까? 대결의 상대가 안 되는 부하들에게 자기를 부풀려서 무엇을 얻으려는가? 자기의 취미, 종교, 심지어는 치료약, 맛집까지 끈질기게 부하에게 권유하는 이도 있다. 나중에 실천을 확인하고 '실적'이 저조하면 화를 내기도 한다. 가끔은 지난 주말 상사가 참가해서 완주했다는 마라톤 대회 얘기를 다시 꺼내, 자랑 멍석을 알아서 깔아주는 자상한(?) 부하도 있기는 하다.
대개 자기 자랑하는 경영자가 부하의 공이나 일을 가로챈다. 어차피 상사와 부하는 업적에 있어서 공동체다.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예로부터 신하에겐 '무성유종无成有終'의 미덕이 요구되어왔다. 일을 완수하되 공로는 왕에게 돌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하들은 아직까진 착하게 이 '미덕'을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어코 부하의 알량한 업적에까지 젓가락을 올려놓는 경영자는 질병의 차원에서 관찰하고 치료해야 한다. 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색 나는 일은 기관장이 카메라 앞에 나서다가, 입장 곤란하면 대변인 뒤에 숨는다. 기업이나 지역 홍보한답시고 대표자나 기관장이 테레비 광고 모델로 떡하니 나와서 얼굴을 판다. 공금으로 개인 선전을 꾀하는 건 횡령이다.
겸손과 관련된 고사는 많다. 사기史記본기에 나오는 유방 (한고조)이 자신이 천하를 얻는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대목을 보자.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 리 밖에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라면 나는 자방子房만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거리고, 먹을 것을 공급하되 식량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몰아 싸웠다 하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는 것이라면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들이다. 내가 이들을 기용할 수 있었고,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