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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29. 2020

재벌의 독재 경영은 여기까지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전 세계에서 팔리는 테레비 10대 중 5대가 한국의 삼성 아니면 엘지 제품인 이유 중 으뜸은 제품의 경쟁력이다. 국가 이미지의 덕도 있지 않냐고?  우리 기업의 제품이 한국의 국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대기업의 대부분은 재벌 그룹이다. 총수와 그 일가에 의한 폐쇄적인 경영 방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세계시장에서 무한 경쟁하며 승승장구해온 것일까? 과거 정부의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우선, 독자獨自 경영의 순기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독자'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하는 것이고 독재(獨載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 와는 글자 한 획 차이다. 잘릴 일이 없는 재벌 총수는 월급쟁이 계열사 사장들 같이 단기 성과에 목을 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무리하게 사람 잘라가며 '당일치기' 실적 놀이하는 걸 견제한다. 총수는 통 크고 호흡이 긴 장기 계획을 갖고 의연하게 밀고 나가다가도, 시시각각 바뀌는 경제 사회 정치 기상에 맞추어 민첩하게 전략을 수정하고 실행할 수 있다. 전문 경영인 체제 같으면 계획 짜는 데만 (회의와 보고서로 ) 수개월 까먹을 (그것도 사장 바뀌면 원위치하는 ) 프로젝트를, 재벌기업은 총수가 고개만 살짝 끄떡이면 맘 놓고 저지를 수 있다. 


게다가 실행이 일사천리다. 

다국적 기업에서는 한국 법인의 실천력(implementation)에 다들 혀를 내두른다.( 분석력은 좀 떨어져도 요즘처럼 팽팽 돌아가는 세상에선 속도가 갑이다. ) 우리나라에서도 명령 침투가 가장 신속한 조직은 군대, 조폭, 재벌기업 정도일 텐데, 그중에서 재벌 총수 자리는 부동의 종신직이다. 막강한 권한을 평생 행사할 사람의 조직 장악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 말 한마디로 (기업 내에서) 안 되는 일이 없다. 다른 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한다. 설사 그 '한마디'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총수에게 되묻지 않고 '연구'해서 그 뜻을 밝혀낸다.


다음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제일 들어가고 싶은 직장 중 하나가 대기업이고 들어가서도 헌신적으로 일한다.

회사 내 경쟁도 치열하기는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본능적인 주인 의식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은 대책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전에 필자가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보면, 동남아 출신은 벽돌 한 장 들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데 우리나라 인력은 한 번에 다서-여섯 장씩 들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걸 본 방글라데시 기능공은 즉시 '형님'을 바친다. 한번 했다 하면 화끈하다. 이런 건 근성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비범하고 근면한 직원들 덕에 재벌 기업이 컸다. 총수에게는 몰라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룹 연관 산업 계열사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

테레비를 만드는 엘지 전자에 엘시디 패널을 공급하는 회사는 엘지 디스플레이며 각각 별도의(대규모) 법인이다. 둘 다 엘지 그룹 소속사로서 한 회사처럼 서로 도와가며 일한다. 엄청난 물량을 주고받는 공급자와 구매자로서 사업적 마찰이 없을 수 없으나 그룹의 총수가 계열사 간 분쟁 정도는 손쉽게 조정할 수 있다. 아버지로서 어린 자식들이 피 흘리고 싸우게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벌에 따라 변수가 많은 가설이지만,

기업의 총수나 이인자가 30-40대 청년이다. 

사업주의 가족이 아니고서는 역량을 검증할 절대 경험이 부족한 신예를 믿고 거대한 조직과 자본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이런 파격적인 '나이 파괴' 기용이 오히려 경쟁력이 되어 재벌의 다른 불리한 경영요인을 상쇄할 수도 있다. 젊은 총수가 참신한 감각으로 미래 위주 전략을 차고 나가면 좋은데, 반대로 위험요소가 만만치 않은 재벌기업의 특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견제 장치 없이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의 판단에 의지하여 경영하기엔 기업이 많이 커버렸고 복잡해졌다. 국가나 기업이나 독재가 오래가는 건 위태롭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엉뚱한 생각을 할 때,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아니 되옵니다' 나 ' 통촉하옵소서'를 서너 번 합창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모든 임직원이 좋다고 올린 테레비 광고 시안을 보고, 아닌 것 같다고 물리는 총수에게 감히 토를 다는 중역은 드물다. 오늘날 재벌 총수의 권한은 조선시대 신臣권의 견제를 받던 왕권보다 강력하다. 경영권은 역모나 쿠데타로도 빼앗을 수 없다. 총수 개인의 관심으로 출발한 신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정상적인 타당성 검토가 끼어들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한편 이런 절대적 상명하복 구도는 기업 내에서  줄줄이 도미노처럼 전달되어 말단에까지 이르고 조직이 경직된다.  


대기업 한 군데만 잘못되어도 우리나라 전체 경제가 흔들거린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우리나라 총 GDP의 20%가 걸려있다. 일개 사私기업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한 사람이나 가족의 직관과 판단에 의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의사결정을 하향 위임하는 것도 서두르는 게 좋다. 여러 계열사에 속한 말단 실무자들이 회의실을 옮겨가며 논의해서 올린 제안이, 총수와 계열사 사장 몇 이서 꼭대기 층에 단출하게 앉아 결정한 것보다 더 현실적일 때가 있다. 여러 실무자들이 가진 데이터의 총합이 총수와 사장의 그것을 앞서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참여한 결정에 대해서는 실행이 빠르다. 실행은 실무자가 한다.


국가와 기업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둘째 이유는 같다.  '다수의 결정이 대개 옳기 때문이다'가 둘째 이유다. 서로 다른 첫째 이유는, 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이고, 기업은 '일을 직원이 하기 때문에'이다. 상사의 갑질을 견제하는 '직장 내 민주주의' 와는 좀 성격이 다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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