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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16. 2024

궁금해도 참아야 하는 질문들

'너거 아버지 뭐 하시노'는 어느 영화에 나와서 유명해진 대사다. 극 중에서 교사가 체벌할 학생들의 집안 배경을 일일이 파악하고 있다. 학생의 개인 신상에서 부모의 직업은 중요한 정보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다른 사람의 신상을 궁금해하는 이유가 안전과 보호, 그리고 자신의 위치나 가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사회적 욕구와 관련 있다고 보고 있다. 낯선 사람의 출신 지역이나 배경을 알아내는 것은 그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평가하고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다. '너거 아버지 뭐 하시노'도 학생 체벌이 초래할지 모를 문제를 사전에 거르기 위함일 것이다. 


과거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대체적으로 허용되었다. 예전 사람들이 나그네를 만나면 으레 건네던 '고향이 어디슈' 와 '어디 사는 (황)가 이옵니다'로 완성되는 대화는 우리 전통 사회에서 출생지가 혈통과 함께 한 사람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었음을 말해준다. 정서적으로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 민족은 이 질문을 통해서 처음 만난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제 처음 보는 사람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는 것은 결례다. 누구든지 남에게 밝히기 꺼려하는 개인 정보가 있기 마련이다. 민감한 정보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른데 개인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라든지 사적인 신념 등이다.


예를 들면, 요즘 우리는 상대방의 출신 대학을 대놓고 묻지 않는다. 학벌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학력이 지위와 직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에서 초면에 출신 대학을 물어보는 건 적절하지 않은 호기심으로 여겨지며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영어 능력을 거론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 '실력'은 단순한 외국어 기능을 넘어 개인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파트 평수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냐고 묻는 건 무방하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까지 파고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위치와 규모를 집어넣으면 아파트 시세가 자동으로 환산되는 세상이다. 아파트가 재산 목록의 윗줄을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평수는 개인의 경제적 상황이나 심지어는 인생의 성취도까지 상징할 수 있다


상대가 여자라면 나이를 묻는 것도 결례가 된다. 대학 입학 연도를 의미하는 '몇 학번'을 물어 에둘러 나이를 추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학은 으레 들어가는 것으로 단정하는 오만한 접근이다.  요즘은 노인의 연세도 여쭙기가 조심스럽다. 나이가 더 이상 지혜와 경륜의 척도가 아니고 되레 차별과 소외의 명분이 되는 세상이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가 강조되면서 남의 사생활에 관심과 질문은 많이 줄어들었다.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대학 입시, 취업, 결혼, 가족계획 따위도 금기어가 되었다. 


하지만 거꾸로 연예인의 연애, 결혼, 이혼, 불화, 불륜 등 대소사 및 시시콜콜 사생활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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