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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20. 2024

[함안] 말이산 고분군 이야기



지자체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다양한 시설이나 도로 명칭에 활용하여 지역 특색을 드러내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경남 밀양시의 '아리랑 아트 센터'는 이 지역 전통 민요인 밀양 아리랑을 상징하고 있고, 전남 고흥군을 관통하는 15번 국도의 별칭인 '우주 항공로'는 고흥군에 위치한 나로도 우주 센터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냅니다.


경남 함안군은 6세기 신라에 병합되기 전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던 '아라(阿羅 또는 安羅로 표기함) 가야'를 지역 문화유산으로 홍보하고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군청 소재지가 가야읍이고, 학교, 시장 등에 '아라' 또는 '가야'가 많이 붙어 있어요. 


가야는 삼국시대 초중반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연맹체이며 아라가야는 그중의 하납니다. 



해발 60미터 안팎의 작은 봉우리들이 2 킬로 미터에 걸쳐있는 가야읍 말이산 주능선 위에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들이 줄을 지어 있습니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을 한자로 차음한 것으로서 '우두머리의 산'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던데 설득력이 있습니다. 작년에 김해, 고령 등 타 지역의 가야 고분과 함께 말이산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자랑스러워들 합니다. 


함안 박물관 내 고분 전시관에 들어가 '예습'을 한 다음에 밖으로 나오면 고분들이 줄지어 선 구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함안 박물관에서는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말이산에서 아라가야를 보다' 특별전을 하고 있고요. 



고분 전시관에서는 아라가야의 여러 무덤 축조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석축을 쌓고 보를 가로질러서 석실을 조성한 다음 목관을 안치한 왕족의 '구덩식 돌덧널' 방식은 민간인의 간단한 널무덤과 대비됩니다. 


말이산 4호 고분 모형


무덤 내부 피장자의 머리 위쪽에 있는 껴묻거리 (부장) 공간에서는 다양한 상형 토기와 철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에 말이산 4호 고분에서 나온 수레 모양 토기는 함안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수레바퀴는 사자의 영혼을 사후 세계로 운반한다는 공통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피장자의 다리 쪽에서 발견된 인골 편을 통해 순장殉葬자 4-5 명도 함께 묻은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순장은 들을 때마다 끔찍하고 믿어지지가 않아요.


4호 고분에서 출토한 수레 모양 토기


수레 모양 토기 모양을 응용한 디저트, 휴지 꽂이, 가로등 - 함안군 가야읍


지하 매장 공간의 규모에 걸맞게 고분의 지상 부분도 흙을 쌓아 올려 거대한 봉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 그랬으면 후세 사람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텐데요. 봉분은 주검이 안장된 지하 매장 주체부를 보호하는 목적 외에도 규모를 크게 해 무덤의 존재를 알리고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어 보입니다. 


무덤은 죽은 사람을 땅에 묻어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만, 고대 왕국에서 왕족의 무덤은 단순한 시신 처리 공간을 넘어 사회 계층과 권력 구조를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적 형상물로 진화했습니다. 사후 세계에서도 왕의 권위가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하여 풍부한 껴묻거리와 생사람까지 함께 묻은 거지요.


고대 사회에서 대형 고분은 왕과 지배층의 권력과 지위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아울러 왕권의 정당성과 권위를 후대에까지 전달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형과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랜 역사 속에서 사회 계층을 구분하고 위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위세 떨쳐 보이기' 행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더욱 미묘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상류층의 대 저택, 고급 자동차, 명품 의류는 부유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고, 호화 결혼식은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의 성취를 실증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행, 식사, 쇼핑 등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일종의 신분 조회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남들과 대비하여 우월감을 얻기 위하여 고가의 사치재를 구매하는 '눈에 띄는 소비' 행태를 '과시적 소비'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존재하는 시대와 문화의 가치는 다르지만 사회적 위상을 강조하여 내적인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망은 천육백 년 전 가야 시대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안의 말이산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까지 아름다운 경관이 이어집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와 들풀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관리가 참 잘 되어있는 말이산 고분군은 공동묘지라기보다는 공원입니다. 


#함안여행, #함안한달살기, #함안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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