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향교는 영월 중앙로에서 영월 대교 쪽으로 가다 성당 가는 길로 좌회전해서 직진해서 올라가면 길 오른쪽에 있다. 홍살문이 서 있어 찾기 쉽다. 홍살문은 궁정이나 왕릉, 관아, 향교 등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색의 시설물로서 신성하거나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장소에 왔음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옛 영월 지도를 보면 향교의 위치가 예전 그대로다. 다녀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읍이나 시 외곽으로 이전한 향교가 꽤 많다.
성균관의 하급 관학인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지방에 설립한 공립 교육기관이다. 한때는 향교에 등록하지 않으면 과거 응시 자격을 주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 간 날은 향교의 정문인 외삼문의 왼쪽 서문만 열려있었다. 대개 오른쪽 동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왼쪽 서문을 사용한다. 삼문三門 가운데 신문神門은 헌관獻官만 출입한다. 영월향교도 명륜당을 앞에, 대성전을 뒤에 배치한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다. 들어가면 정면에 교육 시설인 명륜당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학습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댓돌에 신발이 여럿 있는 동재 앞에서 기웃거리니까 이 OO 장의掌議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향교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관리자를 장의라고 한다.
영월향교에서는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요교육’이라는 효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일방향 효 개념에서 벗어나, 부모와 자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쌍방향 효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라고 한다.
커피도 대접받고, '영월 의인 연구'라는 두툼한 책도 한 권 얻어서 나오는데, 매월 음력 1일, 15일 두 번 분향을 올리니 관심 있으면 와서 보라고 한다.
분향은 대성전에서 올린다. 향교의 대성전에 들어가는 내삼문은 평소에 닫아놓는데 오늘은 분향을 위해서 개방했다.
향교는 지방민을 교육하는 학교 이외에 문묘에서 올리는 제사의 기능이 있다. 문묘文廟는 공자를 모신 사당을 일컫는다. 대성전 이름도 공자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에서 유래한다.
향교의 문묘( 대성전) 엔 공자 이외에도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는데, 영월 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 등 오성五聖과 송조 이현宋朝二賢, 아국 십팔현 등 모두 25위를 모시고 있다. 영월 향교에 배향한 송조 이현은 정호程頤, 주희 朱熹이며 아국 십팔현은 최치원, 안향 등이다.
영월 향교의 창건 연대를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는데 6.25 때 풍화루 ( 정문 위 누각) , 명륜당, 홍살문이 소실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는 무조건 전통만을 고수하지 않으며 서구 문물이라 하여 전면 배격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는 물질 중시 풍조와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퇴폐풍조를 배격할 뿐이다."
향교 안내문에 올린 윤리 선언문 중 눈에 띄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