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寧嬪 김씨를 애도함

[관아재고 觀我齋稿] 번역 : 원문 36-37 페이지

by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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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고 觀我齋稿'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석趙榮祏 (1686, 숙종 12~1761, 영조 37 )의 시詩·서序·기記·제발題跋 등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책에는 18세기 한국의 시·서·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 조영석은 물론 정선·이병연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1984년에 필사본 2 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번역 습작입니다.



영빈寧嬪 [1]을 애도하며


(원문 중 주석) 영빈에게는 대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 기사년(1689)[2]에 인현왕후가 폐위될 때, 영빈도 나가서 사저에 거주했으며, 갑술년(1694)에 왕후(인현왕후)가 복위하자, 빈 또한 다시 궁으로 들어갔다.


태사문정太師文正 [3]의 집안이 대대로 이어지고, 온화하고 유순한 자태와 몸가짐, 충실하고 깊은 성품을 지녔다.


법문法門 [4]에서 자라나 모범과 법도를 이어받아, 일찍이 임금의 간택을 받아 나라를 돕는 일에 참여했다.


금궁金宮 [5]에서 보낸 세월의 아름다운 순간들, 계수나무 궁전[6]에서 일찍이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따랐네. [7]


옛 선인 번희樊姬와 맹광孟光[8]의 전통을 이을 이가 있으니, 그 아름다운 공적이 역사책(동편 彤編[9])에 찬란히 빛나는 것을 길이 보게 되리라.


[1] 영빈寧嬪 김씨 (1669 ~ 1735), 숙종의 후궁, 영의정 김수항의 종손녀

[2]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남인이 집권하고 서인이 몰락함

[3] 높은 관직을 가진 문벌가

[4] 궁중의 법도와 규범

[5] 후궁들의 거처

[6] 궁중의 화려한 전각을 지칭하는 미칭

[7] 영빈이 궁중에서 겪은 영화와 시련을 표현

[8] 樊姬(초나라 장왕의 부인)와 孟光(후한 양홍의 아내)으로, 현모양처의 전형

[9] 왕실 여자(왕비, 후궁 등)의 행적과 덕성을 기록한 역사 기록이나 전기


其二

울창하구나, 양산楊山(양주)[1]의 소나무와 전나무 벌판, 관원들이 장례를 준비하며 붉은 장식(朱蟠)[2]을 삼가 두른다.


주나라 현비賢妃의 위엄으로 세 왕조에서 예우를 받으며 찬란하게 (婺宿) 예순 해[를 보냈도다.


비 갠 능선엔 석마石馬가 흐릿하고, 봄이 돌아왔으나 뽕나무 집은 폐허가 되고, 새집은 버려졌다.


친척은 마지막 가는 길(祖道)에 나와 상여 줄을 잡고, 시녀만 빈 궁을 지키며 쓸쓸히 문을 닫는다.


[1] 영빈 김씨의 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2] 왕실 장례에서 관이나 병풍 등에 두르는 붉은 비단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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