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재고 觀我齋稿] 번역 : 원문 37-38 페이지
'관아재고 觀我齋稿'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석趙榮祏 (1686, 숙종 12~1761, 영조 37 )의 시詩·서序·기記·제발題跋 등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책에는 18세기 한국의 시·서·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 조영석은 물론 정선·이병연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1984년에 필사본 2 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번역 습작입니다.
조카(族侄[1] ) 중명重明[2]이 보내온 시에 차운次韻함
조카가 보낸 시詩 상자를 손수 뜯어 읽으니, 아침 햇살이 가득하고, 향기롭고 뭇 꽃이 그윽이 피었네.
세세히 묘사한 시구는 눈앞에서 보는 듯하고, 읊으면서 상상하니 고향 돌아간 듯하다.
한나라 관리의 대나무 부절[3]처럼 관직을 받았지만, 처지는 주나라 사람이 고사리 캐는 시[4]를 짓는 것과 같다.
시상은 부질없이 뜰 앞 꽃 피는 것을 보며 떠오르고, 역참 정자에서는 들꽃 향기를 자주 날려 보낸다.
이웃 아이는 누가 꽃을 꺾었냐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하인은 다른 풀길(草徑)을 따라 숨어든다. [5]
창 아래 작은 매화 가지 얼마나 자랐을까, 담장 위에 붉은 살구는 탐스럽게 익었겠지.
향나무 향기가 나는데 몸은 쇠약해졌고, 푸른 병풍 앞에서 다시 탄식하노니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다.
남쪽 땅에서 몸은 아프고, 해마다 흉년이라 부엌에선 살진 고기 삼간다.
조상 산소(松楸 [6])를 정성껏 쓸고 닦아 제사 준비하고, 조상의 위패 직접 손질하여 가문의 계보를 정돈한다.
일찍이 소공召公의 감당甘棠나무를 아꼈다는 고사, [7] 촉蜀 땅에서는 여전히 옥절玉節의 빛[8]이 전하네.
제사를 지내던 석물과 산들이 그 옛 영광을 되비추고, 제사 후 연모燕毛 [9]의 아름다운 모임을 아련히 떠올리게 한다.
[원문 중 주석] 큰 형은 경상관찰사(영백공 嶺伯公)[10]가 되어 원북院北(경남 함안군) 사당을 세우고 선산의 비석을 수리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과연 이를 알까? 문중의 남겨진 전통 받들어 힘쓸지니
집안에 과거 급제자 적다고 한탄하지 마라, 후손이 책을 거의 읽지 않음이 한스럽다. 그대를 위하여 격려하노니, 백발이 되어 궁한 세상살이에 벼슬을 좇는 일이 아픔으로 남는다
[1] 조카뻘 친척
[2] 조중명 : 문신, 관아재와 9 촌간
[3] 한나라 때에, 태수(太守)를 임명할 때 주었다는 대나무를 잘라 만든 부절
[4]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 캐며 은둔한 고사
[5] 다른 해석 : 이웃 아이가 꽃가지를 꺾어도, 누가 꾸짖겠는가? 고집 센 하인이 제멋대로 풀길을 내버려 두니 좁아지네.
[6] 산소 둘레에 심는 나무를 통틀어 일컬음.
[7] 원전: 시경 詩經, 召南·甘棠, 주나라의 명재상 召公奭소공석이 백성을 잘 다스리며 감당나무 그늘 아래에서 정사를 보았는데, 소공이 떠난 뒤에도 백성들은 그가 머물던 감당나무를 베지 않고 존중하며 기려 노래를 지었다.
[8] 옥절玉節은 황제가 파견한 사신이 들고 다니던 명령의 상징. ‘촉군유전옥절휘蜀郡猶傳玉節輝’는 촉군 지역에서 옛 명신들이 남긴 통치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는, 옛 현명한 관리들이 남긴 은덕이 여전히 후대 백성들 기억 속에 반짝인다는 뜻의 인용.
[9] 원전 : 중용 19 - 燕毛, 祭畢而燕, 則以毛髮之色別長幼, 爲坐次 , 연모燕毛는 제사가 끝나고 잔치할 때 모발의 색깔로 나이 듦을 구별하여 앉는 차례를 삼은 것.
[10] 조영복趙榮福, 조선 후기 문신, 호 이지二知, 필자 관아재 조영석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