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지수사地水師 괘卦에 '소인물용小人勿用'이라는 효사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논공행상 (공적의 크고 작음 따위를 논의하여 그에 알맞은 상을 줌) 시에 전공戰功을 세운 자가 소인이면 중용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소인은 공功이 있더라도 국가를 소유하고 정사를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되니, 차라리 금과 비단金帛으로 상을 주라'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오늘날 후진 정치의 문제를 지적했음이 놀랍다.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후원자의 헌신적인 조력이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선출된 당사자가 후원자들의 공로를 치하하고 보상을 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조선시대에도 개국공신이나 정란 공신들을 등급별로 책봉하여 작위를 수여하고 논밭을 하사했다. 공신 중 높은 등급은 장자가 대대로 공신을 계승하도록 하고 자손들에게 범죄 사면권까지 부여한 기록이 있다. 왕위 세습 과정에서 정통성이 아쉬웠던 태종이나 세조 같은 이가 다수의 공신을 헤프게 봉한 사실은 흥미롭다. 세종은 재위 기간에 단 한 명의 공신도 책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공로를 직책으로 보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선거운동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조직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는 보장이 없다. 감상적인 보은 인사는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차라리 직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서로에게 안전하다. 대통령이 되면 지지세력이나 측근을 등용하는 명분으로 국정철학의 공유를 내세우곤 하는데, 그 통에 출세한 자들이 도리어 국정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지지하면서 성공적으로 중책을 수행할 경륜 있는 적임자는 많다. 대통령은 얼마든지 그 직책에 지명된 자의 국무적 충성을 받을 권리가 있고 또한 최소한 그 정도 리더십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기업의 설립에 투자하고 공헌한 사람들은 그 위험부담과 공로를 기업의 지분과 자리로 보상받는다. 그러나 정치에서 지분은 선거운동에 참여한 지지세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기업과 다른 점이다. 심지어 기업을 설립한 소유주도 최고 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한다. 기업을 일으키는 능력과 운영하는 능력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지세력이 자신들이 도운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에 만족하고 다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나라가 정치 선진국이다. 현실에서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한다.
태평성대에 군주에게 필요한 네 가지 덕목 중 하나가 친한 벗도 사심으로 중용하지 않는 붕망朋亡, 공명정대한 마음이다. 주역 지천태地天泰 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