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는 중심점이 우리 편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이긴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니 많이 들어와 봐야 소용없다. 이론적으로는 고만큼만 힘을 쓰면 되는데 실전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당긴다. 상대편이 끌려오면서 우리 편까지 제물에 뒤로 나자빠지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태는 가끔 불편하다.
정치 :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을 하다. 다음 한국어 사전
정치의 사전적 의미와 현실은 많이 다르다. 사회적 관심이 많은 사안에 정파가 개입되어서 '침을 바르고' 소위 정치 이슈의 딱지를 붙이면 찬반양론이 팽팽해지다 못해 어떤 때는 '끊어지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정치 현안들은 이해 당사자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오랫동안 해결을 하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해온 고질적인 딜레마들이다. 가부 간에 공히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어서 찬반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FTA, 이민 정책, 노동 유연성 같은 현안에 있어, 국민의 보편적 이익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어느 누가 정책의 올바른 향방을 명쾌하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불가피하게 양단간 결정을 하더라도 저울질해서 기우는 한쪽을 택할 뿐이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사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같은 문명국가에서는.
그런데 일단 정파와 진영이 어떤 사안에 방향을 정하고 나면 극단으로 몰고간다. 반대파의 공격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과포장하고 미화한다. 사안을 선과 악의 가치로 가르고, 반대파를 사악한 동기를 가진 집단으로 비난하는 게 정치적 선동의 첩경이다. 선은 악과 타협하지 않는것이 정의다. 정파는 정의를 가장한 정략으로 여론끼리 양보없는 한판 싸움을 붙인다. 정권을 빼앗거나 유지하기 위해 설정한 전략이 정략인데 정치꾼들은 국민의 안위를 놓고 정략을 사용한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정치의 생리다. 다만 국민들이 거기 덩달아 춤만 추지 않으면 된다.
상인은 자기가 파는 물건이 최고라고 홍보하지만 물건을 사는 소비자가 그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가격, 성능, 디자인, 기능 따위를 비교하며 망설이다가 선택을 하지, 그 물건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또는 '착해서'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삼성 테레비를 보고 엘지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 흔하다. 소비자들 중에 특정 메이커의 제품만 고집하는 이른바 충성고객이 있기는 하다. 메이커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꼭 현명한 소비자는 아니다. 심한 경우 메이커 이름에 'XX 마니아'라고 붙여 부르는데 마니아엔 정신병자라는 뜻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모든 주장에 대해 묻지 마 식으로 동조하는 것은 어리석다. 국민은 정치의 소비자답게 냉정하고 차분하게 정치권에서 선전하는 각각의 정책들을 '요리조리'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지하는 진영의 입장에 감정 이입되어 반대 진영의 주장을 자기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착시하고 식식대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반대 의견을 가진 주위 사람들, 제 가족까지도 물어뜯는다. 삼성 라이온즈 팬과 엘지 트윈스 팬이 으르렁거릴 수는 있어도, 삼성전자 고객과 엘지전자 고객이 서로 비난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훌리건은 '마니아' 소비자보다 더 위험하다. '개돼지'로 불리기도 한다. 여론 선동에 자주 낚이고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정작 양쪽 '개돼지' 떼에 싸움을 붙여 놓은 각 정파의 정치인들은 담담하다. 선수끼리 밤에 따로 만나 낮에 언론 카메라 앞에서 했던 거친 언행에 대해 사께 잔 너머로 양해를 구하며 킬킬거리기도 한다. 마치 촬영 중에 실감 나는 주먹 연기를 한 액션배우가 나중에 상대역에게 아팠냐고 물어보듯이... 그 사람들도 어차피 같은 직장 '정치권'의 동료다.
축구시합을 할 때 선수들은 일제히 자기편의 승리를 위해서만 공격하고 방어한다. 그리고 관중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열광한다. 정치는 그래선 안된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정치인(=선수)들이 정당의 당론이라 해도 일사불란하게 따르지 않고 소신에 따라 반대 의견을 내기도 한다. 때로는 소속 당을 뻘쭘하게 하는 이른바 해당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정치 용어로는 '내부 총질'이라고 하는데 국민을 향해서만 총을 안 쏘면 된다. 최종의 목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뛰어넘어 국리민복國利民福이고, 유권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다.
하물며 유권자(=응원단)는 정치 철학을 보고 정당의 지지를 결정하더라도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개별적이고 (정파의 지지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결같이 한 정파만 응원하면 정치판이 유권자 무서운 걸 모른다. 정치 발전은 결국 유권자의 수준에 달려있다.
언론에서 주요 정치 활동에다 '흥행'이니 '관전 포인트' 따위의 말을 쓰는 것은 재미로 그런다 쳐도 무책임하고 마땅치 않다. 유권자는 무조건 우리 편에만 손뼉을 치는 축구 응원단이 아니라 이제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 응원하다 흥분해서 운동장에 뛰어드는 건 더더욱 안된다. 잡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