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고 따뜻한 사회적 경제
100 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은 99세 노인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많이 가질수록 욕심을 낸다. 욕구는 발전과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예로부터 기독교, 유불선 사상 공히 욕심을 죄악의 근본으로 여기고 경계하고 있다.
오늘날은 대량 생산이 과도한 소비를 견인하고 있다. 소비할 재화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는 식이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팔기 위하여 광고 등 갖가지 방법으로 소비를 촉진시킨다. 기업의 욕심이 소비자의 욕심과 맞아 떨어지면서 과소비가 조장된다.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벤츠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차에서 내릴 때 남에게 보이는 맛으로 비싼 차를 탄다는 풍자다. 미국의 경제학자 솔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유럽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던 직업이나 가문이 아닌 소비를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던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소비는 문화 또는 미덕이라는 꼬리를 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미국과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중국마저도 소비에 있어서는 미국식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다.
흔히 국민 총생산액을 가지고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눈다. 우리나라도 최근 일 인당 총생산액이 3만 불을 넘어섰다 하여 스스로들 대견해하였다. 생산은 소비로 이어지므로 일 인당 소비를 많이 하는 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대우를 받는 셈이다. 그러나 생산액만 가지고 단선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가늠하는 방식은 온당하지 않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8년 캔자스대 연설에서 미국의 그릇된 가치관을 지적하면서, 국민 총생산액에는 대기오염 피해 비용, 무기 제조비용, 교도소 운영 비용 등이 포함된 반면 교육, 결혼, 지성, 공무원의 청렴, 헌신, 열정 등 정작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은 제외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경제 성과를 평가하는 패러다임도 금전적 가치와 아울러 사회적 가치 창출로 진화하여야 한다.
손익영허 여시해 행. 損益盈虛 與時偕行 덜고 더하며 채우고 비움을 때에 따라 함께 행해야 한다.
주역 산택손 괘山澤損 卦의 단전
손해를 감수하는 덜어냄의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무작정 손해 보는 것이 아닌 훗날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지금은 일시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탐욕스러운 기업들이 초래한 미국 발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당시 200여 개의 기업으로 구성된 스페인의 대형 협동조합 몬드라곤은 7만 명의 조합원 중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협동조합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으며 영리보다는 상부상조가 우선하는 기업의 형태이다. 자아를 과포장하고 있는 소비의 거품을 걷어내어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이 산택손山澤損 괘의 지혜를 실천하는 길이다. 소외계층을 배려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작업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다. 작은 것을 덜어내어喪 큰 잃음大失을 막는 현명한 사회적 투자다. 덜어냄喪은 계산된 잃음失이다. 지금이 바로 '덜고 비워야' 할 그때이다.
사회적 경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이나 환경오염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존 시장경제와 달리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사람과 분배, 환경 보호 등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점이 특징이다. 사회적 경제는 18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에도 농민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시작되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크게 발전했다. 당시 높은 실업률과 고용 불안정, 빈부 격차 심화 등의 문제로 사회적 경제가 대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과 2012년에 각각 「사회적 기업 육성법」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다음 백과
공중 화장실엔 장애인용 칸이 따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비율이 대개 비장애인용 서너 칸에 하나 정도 꼴인 20-30%이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몸이 불편한 지체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2-3% 정도라고 한다. 남녀 화장실을 반반으로 나누는 건 인구 비례상 이치에 맞지만 장애인용 화장실의 비율은 '비합리적'으로 과도하게 보인다. 게다가 공간도 더 크고 복잡해서 만드는데 비용도 많이 들 게 틀림없다. 이것은 단선적인 효율의 경제 원리보다는 이웃의 약자를 배려하는 나눔의 원리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당장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약자를 배려하며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현명하고 따뜻한 사회적 경제의 원리가 이것이다. 시장과 정부가 완벽하지 않으면 당사자인 사회가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경제가 진정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그림자를 사회적 경제의 '보이는 손'이 보살핀다. 그렇다고 해서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이 고장 난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사는 ‘청렴한 상태’ 일 때를 전제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는 필요 이상으로 사서 쟁여 놓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꼭 필요한 것마저도 부족해서 고통받는 이웃이 공존하고 있다. 이웃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신생아성 반응 울음’이라는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생아실에서 한 아기가 울면 다른 아기들까지 따라 운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과 불안을 같이 느끼는 인간의 공감 본능을 확인해 주고 있다.
사회적 경제는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사회 서비스를 우선 가치로 추구하는 경제활동이다.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이익 창출이 필수인 점은 일반기업과 같다. 다만 영리가 최우선 목적이 아니라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재정적으로 외부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자선기관과 구별된다. 방치했을 때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공동체의 문제들을, 정부의 복지나 독지가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업의 활동을 통해서 해결하고 축소해 나간다.
사회적 경제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의 사업체로 구현된다. 사회적 서비스와 이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이 신종 비즈니스 모델은 일반 영리 기업에 비해 지속하기가 당연히 어렵다. 한 켤레의 신발을 팔면 다른 한 켤레를 제3세계의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미국의 탐스 슈즈는 사회적 기업이다. 할리우드의 배우 등 저명인사들이 이 착한 구매에 동참하면서 유명해졌다. 리오넬 메시 선수가 뛰고 있는 FC 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FC 바르셀로나는 20여만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며 품격 있는 축구를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SK 그룹은 총수 개인의 강력한 의지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