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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17. 2020

선택 장애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해외 근무할 때 본사에서 출장 왔다 돌아가는 직원을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운전을 맡겼다가 그 사람이 차 키를 가지고 귀국해 버려 애먹은 적도 있다. 집사람하고 여행할 때는 둘이서 지도 판독과 운전을 분담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내가 기꺼이 차 운전을 맡는 이유는 (예전에 내비게이션 없을 적에) 갈림길에서 방향을 결정하고 결과에 대한 원망을 듣기 싫어서였다. 회사에서 맨날 하는 일이 책임지는 건데 휴가 가서는 피하고 싶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결정을 하게 되는데 결정의 대부분은 선택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지선다형 시험을  (흔히들 '객관식이라고 하는 데 문제 출제 형식을 가지고 주관, 객관으로 가르는 건 무리인 듯하다.) 치면서 수없이  연습을 해왔지만 선택이 불편할 때가 많다.  조직을 경영하면서도 수시로 결정과 선택을 강요받는다. 인재의 발탁, 해고 등 인사에서부터 사업 전략, 회사의 인수나 매각까지 광범위하다.  직위가 높을수록 사안은 엄중해지고, 그 결과가 조직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영자는 결정에 앞서 전문가나 실무자 등 주위의 의견을 묻게 되는데, 걸린 껀(건)이 클수록 주변 사람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나뉘어 각자 의견을 최선이라고 주장해서 결정권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주관이 없는 경영자는 어제 한쪽 말을 듣고 결정한 걸 오늘 다른 쪽 말을 듣고 번복하고 갈팡질팡  혼란을 초래한다. 아예 결정을 미루고 우물쭈물하다 때를 놓치고 낭패하는 경우도 있다. 실기失期  또한 나쁜 선택이다. 그런가 하면 잘 안되었을 때 그 결정을 제안한 부하에게 책임을 미루기 위해 '잘못되면 당신 탓'이라는 복선을 깔아놓는 비겁한 경영자도 있다. 집에 가서 배우자에게 물어보거나 답답하다고 점쟁이를 찾아가는 이도 있다. 모두 자질이 부족한 경영자들이다. 결국 경영자는 혼자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게 경영자의 존재 이유다. 


현명하고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확고한 경영이념이 필요하다. 소신이나 철학이라고 해도 좋다. 최상위 개념의  원칙을 세워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헷갈릴 때마다 일관성 있게 기준으로 삼으면 최악은 면한다. 원칙 자체보다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르는 줏대가 중요하다. 사거리에서 표지가 안 보이면 직진이다. 왼쪽 오른쪽 망설이다 대형사고 난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사물에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열린다.
논어 학이學而편


그다음은 추상화 (일반화) 된 경험이다. 경험이 지식이고 나이가 스승이란 말이 있지만, 요즘 세상에서 단선적으로 해보거나 겪어본 기억의 가치는 크지 않다. 경영자는 과거의 경험과 시행착오들을 추상화해서 일반적인 원리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터득해야 한다. 빠르고 적절한 추상화는 경영자에게 절실한 능력이다. 추상화는 과거 경험과 당면한 복잡한 문제가 서로 통신하는 언어다. 다른 말로 '가닥을 잡는다'라고도 한다. 


원칙과 경험을 바탕으로 결국은 자신 내면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참여했던 어떤 과정에서 해봤던 놀이가 있다. 

실내에서 눈을 가리고 약 20-30 미터 정도의 통로를 맨발로 걸어서 통과하는 것이 주어진 밋션인데, 가는 길 여기저기에 압정을 장애물처럼 뿌려 놓아서 자칫하면 찔리게 되어있었다. 관중들 중 더러는 술래가 압정을 피해 안전하게 가게끔 소리쳐서 도와주지만, 다른 이들은 일부러 술래를 장애물 쪽으로 유도해서 혼란스럽게 했다. 이 상황에서 무사히 통로를 빠져나가려면 여러 목소리들 중에서 어떻게든지 바르게 인도하는 소리를 선택해 듣고 따라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차분하게 눈을 감고 ( 어차피 눈을 가리니까 ) 기도하듯 집중하면,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소리를 용케도 가려내서 한 걸음씩 무사히 내디딜 수 있었다. 고요한 자기 마음의 원형을 회복할 때 수많은 신호 중에서 진리를 감별해 낼 수 있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말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하늘의 뜻이 있다는 얘기다. 중용 첫 장에서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명령했고 그것을 따르면 도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내 안의 본성을 찾는 게 어렵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하늘의 명命이 자신의 본성本性이고 본성을 잘 따르는 것이 도道다.
중용中庸 첫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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