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Nov 06. 2020

예절 교육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외국어만큼 중요한 예절교육




우리나라의 영어 사교육비 지출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사교육 시장 규모가 약 20조 원인데 그중 영어 과목이 부동의 1위로 5조 원을 넘는다. 영어 배우느라고 놓친 다른 과목 공부, 운동, 취미 등 기회 손실은 제외하고 직접 지출한 비용만 그렇다는 얘기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영어 선생을 붙이기도 한다. 외국어는 어려서부터 시작해야지 발음과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고 병원에 가서 혀의 인대를 끊는 수술을 받는다는 끔찍한 얘기도 들었다. 아이 부모가 영어로 인해 받은 설움이 오죽했으면 저럴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까지 든다. 아무튼 온 나라가 만성 영어 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국제 시민이 되기 위해 외국어만큼 중요한데도 등한시하는 덕목이 있다. 서양 예절이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면 아이들로 인해 좀 어수선하다. 부모들이 애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공간에 데리고 다니는 건 그 자체가 좋은 교육이다. 그러나 한 가지가 더 있다. 도서관은 정숙해야 하는 공공장소다. 도서관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애들을 방치하는 부모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가해자다. 공중도덕의 현장 교육 기회를 잃은 아이가 첫 번째 피해자이고 그로 인해 방해받은 도서관 이용자는 두 번째 피해자다. 사람이 많은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 모인 사람들을 헤치고 자기 애를 앞으로 들이밀어 버릇하면, 그 아이가 커서 그런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기 전까지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용히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모는 자식 교육에 극성이면서도 공중 도덕에 대해서는 관대(또는 무심)하다. 서양 부모들은 자기 애가 사람 많이 모인 실내에서 소란을 피우면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이) 야단친다. 아이가 남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다 소리 대신에 다소곳이 밑에를 바라보고 있거나, 얘기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지만 서양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예절도 언어처럼 습관이다. 어려서부터 배워 몸에 배야(體化) 자연스럽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세계 어디 가서나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는 부모라면,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동서양의 관습과 예절을 균형 있게 교육하고 본을 보여야 한다. 예절 학원은 없다. 부모가 직접 나서야 한다. (하지만 국적 불명의 90도 배꼽 인사는 건너뛰어도 된다.) 


전에 유럽이나 미국에 살 때 한국에서 다니러 온 친지들과 식당같이 현지 사람들하고 섞이는 장소에 가면, 우리 일행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 주위에 눈치가 보일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주의를 주었다간 노여움을 산다. 떠드는 게 잘못이 아니고 다만 현지의 관습하고 달라서 마찰을 피하려 한 건데, '여긴 사람 사는 데 아니냐', '너무 깔끔 떨지 말라' 등의 역공을 당하기도 했다. 다 큰 어른에게 예절을 논하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예절은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동양에서는 예절을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 仁義禮智信 중 하나로 여기고 예의범절을 철저하게 교육하였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반드시 예에 따라 살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오늘날도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동양과 서양의 예절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 영어가 옳기 때문에 배우는 게 아니고 다르니까 배운다. 서양 예절도 우리 예절보다 우월해서 따라가는 게 아니다. 소통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체면과 예의를 중시했다. 동방 예의지국까지 안 팔아도, 예절 하면 어느 나라에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다만 배려와 존중을 예절의 기본 바탕으로 깔면서도, 동서양 간에 예절의 무게 중심이 다를 뿐이다. 동양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경애의 범절이 발달한 반면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평등의 예의가 두드러진다. 외국어를 모르면 불편함으로 끝나지만, 그 나라 예절에 어두우면 인격을 의심받을 수가 있다. 앞에 소개한 베를린 공항의 사례처럼 몰라서 실례한 건데 무례하다 소리를 들으면 참 억울하다. 차라리 무식하다는 게 낫겠다. 어떤 경우엔 동양인들을 아예 가르치려 드는 놈들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다. 예절이나 언어나 외국 문화의 일부이다. 서양 사람들 중엔 동양에서도 빵이 주식인 줄 아는 이들이 있다. 서구가 주도하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동양은 서양의 문물을 많이 이해( 또는 하려고 노력 ) 하지만 역으로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문화에 아직 어둡다. 그러니 아쉬운 쪽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예절의 근본은 남을 배려하는 상식이다. 남의 나라의 예절을 존중하는 것 또한 배려다. <2020. 9.3 몰라서 무례한 경영자, 필자>


유용 정보 : 사람이 많은 곳에서 떠드는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속삭이듯이 얘기하면 스스로 조용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