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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Aug 22. 2022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27~29



Day 27

리치힐(미주리주) - 포트 스콧(캔자스주)

63km


모텔에서 푹 자고 일어나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캔자스주에 위치한 포트 스콧이라는 도시에 웜샤워를 구했다. 즉 오늘은 일리노이주, 미주리주를 거쳐 3번째 주, 캔자스주로 넘어가는 날이다.




종종 “자전거 타면서 무슨 생각 하세요?”라는 질문을 듣는데,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언제 도착하지? 또는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너무 기분이 좋다”란 말을 생각보다 많이 내뱉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언제쯤 도착할까란 생각을 더 많이 하긴 하지만.





그리고 요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용감하다'(brave), '강인하다(tough)'는 말을 자주 듣는데,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사실 난 반대로 용감하고 강인하지 않아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을 뿐인데...


그나저나 오늘은 강풍으로 인해 여행 중 두 번째로 울컥했던 날이다. 구글 지도는 왜 꼭 자갈길로 안내해 주는 것이며, 나는 왜 항상 바보같이 그 지도만 믿고 길을 가는 것인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가뜩이나 중심잡기 힘든 자갈길을 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지나갔다. 핸들을 꽉 쥔 손이 아파왔다. 자길길보다는 고속도로가 훨씬 편하다. 앞으로 지도는 참고만 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 와중에 너무 잘 견뎌준 포키.. 사실은 나보다 더 씩씩하다.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올 때,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앞으로 나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페달을 밟다가, 이따금 반대 차선으로 밀려났다.


울컥… 길은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목적지까지의 예상 거리를 넘었는데도 아직 갈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게다가 토네이도 주의보 안내가 핸드폰에 떴다.


‘Tornado watch.’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갈 거리는 채웠으니까.


자전거를 싣기 좋은 픽업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소심하게 손을 흔들었는데 쌩하고 지나쳤다. 어쩔 수 없이 오르막을 계속 끌고 가다가 거의 다 올랐을 때, 저 앞에 차가 멈춰 선 모습이 보였다. 좀 전에 지나친 그 차였다. 얼른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밟아 차로 향했다.


"괜찮아요?" 차 안의 남자가 물었다.


“포트 스콧까지 태워주실 수 있나요?”


남자는 내 또래로 보였는데, 50킬로그램이 넘는 내 자전거를 혼자서 번쩍 들어 트럭 위에 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심상치 않다. 이 길을 그대로 자전거 타고 갔다면 해가 질 때까지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도 멀리 여행 가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한국의 서울이라는 도시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한 번도 히치하이커한테 차 세워줘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적 처음이에요. 당신은 뭔가 세워줘도 될 것 같아 보였어요."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데 포키가 오늘 또 한몫 한 듯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포트 스콧에 도착했고 내려서 2킬로미터 정도 자전거를 타고 오늘의 웜샤워 호스트 집에 도착했다.


이곳은 알고 보니 호텔이었는데, 호스트는 호텔방을 웜샤워 사이트에 등록해 두고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내어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고급진 호텔을.




주방이 있어서 편의점에 가서 냉동피자라도 사 오려고 나가려는데 비가 와서 다시 방에 돌아와 닥터페퍼랑 바게트에 잼을 발라 먹는 것으로 저녁을 때웠다.


밖에선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오늘 하루 나보다 더 고생 많았을 포키는 방금 옆에서 사료 한 그릇을 뚝딱했다.


이렇게 비가 세차게 오고 천둥도 칠 때, 이런 좋은 방 안에서 잘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 텐트에서 어떻게 자지..)




Day 28

포트 스콧 - 아이올라

70km



호텔에서 푹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던 에그 베네딕트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실내에는 강아지 동반이 안된다고 해서 춥지만 테라스에 앉아 밥을 먹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었다.



조식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했다.






오늘 미국에서 라이딩 중 처음으로 큰 개의 위협을 받았다. 나를 추월할 만큼 빠른 개라서 반대 차선에 차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반대 차선으로 돌진했다. 그 순간은 차보다 개가 더 무서웠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반대 차선 운전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속도를 늦춰주었다. 그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나를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낼 곳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는 차가 무서워서인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운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내 차선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역시 도로로 오니 덜 힘들다. 그리고 거기엔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편의점에 들어가 미니피자와 콜라를 사 먹었다. 먹고 나와 출발하려고 준비하는데 한 가족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가족 중 엄마, 아빠가 내 여행에 대해 듣고는 놀라워하셨다. 그러고는 5달러를 쥐어주시며 말했다.


"강아지랑 물 사 먹는 데 써요. 얼마 안 되니 부담 갖지 말아요."


대화한 지 채 5분도 되지 않는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출발 전 잠시 휴대폰을 봤는데, 시카고 웜샤워 호스트였던 소피가 내가 그려준 고양이 그림을 예쁜 갈색 프레임 액자에 끼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가 우리 집에 며칠 밤 머물다 갔어요. 감사의 의미로 그녀는 우리 집 고양이 핀토와 하이메시를 그려 주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 그림들을 액자에 끼워 벽에 걸었어요. 사진으로는 이 작은 걸작의 섬세함을 다 담을 수가 없네요.”




아… 그림에 맞는 액자를 고르고 끼워 넣었을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너무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덕분에 남은 20킬로미터를 금방 왔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가족과 소피를 생각하면서 달리니 힘이 불끈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 힘은 결국 사람들로부터 온다.


덕분에 금세 아이올라에 도착했다. 오늘의 웜샤워 호스트 대런은 자전거 샵을 운영하고 있어서 샵에서 내 자전거 청소를 해주었다. 곧 체인을 바꿔야 한다길래 대런에게 고맙기도 하여 그에게서 체인을 교체했다.




대런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교회에서 머물 수 있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대런 차를 타고 교회에 짐을 놓고 월마트에 가서 같이 장을 본 뒤 다시 교회로 돌아 왔다.


텅 빈 교회 안. 소파에 침낭을 깔았다. 따뜻하고 안전하다. 화장실도 있고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다만 내일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아마도 점점 추워져서 남쪽으로 내려갈 듯하다.


내일은 어디서 잘 수 있을까...







Day 29

아이올라 - 체리베일

90km


교회에 커피포트가 있어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출발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제 자전거 청소를 해서일까? 자전거도 엄청 잘 나갔다. 어깨춤이 절로 추어졌다.







점심으로 맥도널드를 먹고 총 90킬로미터를 달려 체리베일에 도착해, 소방서에 가서 텐트 칠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한참 고민하던 소방관이 교대 근무 후 퇴근한 동료 소방관 집 마당이 크다면서 전화를 해서 물어봐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오늘은 ‘대니얼’이라는 소방관의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게 되었다.


텐트를 치고 편의점에 가서 우유와 닥터페퍼를 사 왔다. 얼른 쉬고 싶어서 텐트 안에 모든 짐을 던지듯 넣었다.


대니얼은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샤워실을 쓰게 해 주어서 샤워를 하고 텐트로 돌아와 저녁으로 시리얼을 먹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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