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 30-31
Day30
체리베일 - 노와타
85km
텐트지만 따뜻하게 잘 잤다. 아직 새벽 온도는 7~8도로 그렇게 춥지 않다.
어제 마당에 텐트를 치게 해준 소방관 대니얼이 아침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같이 먹자고 해서 7시에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에그파이와 과일 샐러드, 베이컨 그리고 오렌지 주스. 8시까지 출근하는 소방관인 그는 대가족 틈에서 자라며 늘 이렇게 아침을 먹으며 자라왔기에 혼자 사는 지금도 매일 이렇게 아침을 차려 먹는다고 했다.
그는 이 커다란 집에 혼자 살기 때문에 누구든 집에 오는 걸 환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웜샤워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떠나기 전,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고 그는 내게 부모님과 함께 만들었다는 애플소스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오늘도 바람이 거세 속도가 나지 않았다. 종일 느릿느릿 페달을 밟은 것 같다. KFC에서 점심을 먹고 살짝 고민했다.
'오늘 33킬로미터밖에 안 왔지만 바람도 심하니까 여기 커피빌에서 자고 갈까?'
그러나 결국, 내가 할 일은 힘들어도 자전거 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안장 위에 올랐다.
우리는 캔자스에 있어.
네가 이제껏 보았던 어떤 곳보다도 더 따분하고 황량한 곳이지.
1540년에 코로나도와 그 부하들이 황금의 도시를 찾아서
여기로 진격해 왔었을 때 그 사람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그 중 절반이 미쳐 버렸어. 어디가 어딘지 통 알 길이 없었거든.
산도, 나무도, 하다못해 길가에 튀어나온 바위도 하나 없었으니까.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오늘은 여행한 지 30일째 되는 날이다.
30일 중 24일을 달렸고,
한 달 동안 먹고 자는 데 27만원, 휴대전화 사용료 5만 6천원 정도가 들었다.
킥스탠드가 한 번 떨어져 나갔고, 아직까지 펑크는 안났다.
그리고 일리노이, 미주리, 캔자스주를 거쳐 4번째 주 오클라호마주에 도착했다.
오클라오마주에 도착한 뒤, 저녁 6시까지 라이딩을 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노와타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소심하게 텐트칠 곳을 물어봤지만 다들 냉랭해서 살짝 기가 죽었다.
어쩔 수 없이 소방서를 찾아 가다가 경찰서 문이 열려 있길래 가까이 가 보았다. 경찰아저씨가 "뭘 도와줄까요?"라고 물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나오셨다.
"텐트 칠만한 곳을 찾고 있어요."
"그럼 우리 집 마당에 쳐요. 거기가 안전할 거예요." 경찰아저씨가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아저씨가 안내해주는 집으로 따라갔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저녁으로 시리얼과 빵을 먹었다. 아저씨는 다시 일하러 가신 건지 집이 깜깜하다.
휴, 오늘도 무사히 잘 곳을 구했구나. 매일 어떻게든 안전하게 잘 수 있어서 신기하다.
Day31
노와타 - 브리스토
25km
바람이 많이 불어 속도를 전혀 낼 수가 없었다. 오르막길보다 힘든 게 바로 바람이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페달을 꾸역꾸역 밟다보면 목적지에 언젠가는 반드시 다다르게 된다는 확실함이 있다. 바람에 지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분명히 앞으로, 목적지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즉 내가 무언가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그 무언가를 해 나가는 것이 더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아무튼, 바람이 심한데다 화물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내 옆을 지날 때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아서, 차들이 지나가고 나면 중심을 잃고 멈춰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가 아,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소심하게 몇 번 손을 흔들어 봤지만 세워주는 차는 없었다. 굉장히 여러번 시도를 해봤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조금 타고 가다가 다시 바람에 멈추고, 또는 끌고 가다가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까 내게 길을 알려줬던 경찰이 괜찮냐며 차를 세웠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도저히 못 타겠어서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해요.”
그러자 그가 작은 승용차에 불과한 경찰차에 자전거를 싣고 오와쏘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자전거에서 모든 짐을 다 빼고 앞바퀴까지 뺐지만 트렁크에도 뒷자석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가방들은 뒷좌석에, 자전거는 트렁크에 3분의 2정도 넣고 3분의 1은 밖으로 삐져나온 상태로 끈으로 고정한 뒤 출발했다.
“점심은 먹었어요?” 아저씨가 물었다.
“오늘 원래 오올가에서 서브웨이에 갈 생각이었어요.”
“그럼 같이 서브웨이 가요. 제가 살게요.”
나는 언제나처럼 제일 저렴한 6달러짜리 deal of the day(15cm+음료+감자칩)을 시키려고 하는데 내게 풋롱(30cm) 세트를 시키고 남은 건 싸가라며 풋롱을 주문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따라 반쪽은 맛있게 먹고 반은 포장했다.
털사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기에 털사를 향해 가는 중에 그만 졸음이 쏟아져 꾸벅꾸벅 졸아버렸다. 졸고 있는 와중에 잠깐씩 깨서 '왜이렇게 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털사를 한참 지나 있었다. 곤히 자는 나를 깨우기 싫어서 털사를 지나쳐 계속 가고 있던 것이다. 결국 브리스토라는 곳까지, 그를 만난 탈랄라에서 70마일(112킬로미터) 정도를 운전해서 온 것이다. 얼마나 잔 거지 대체….
브리스토의 어느 공원에 내려 자전거를 다시 조립하고 아저씨와 서로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진 뒤, 잘곳을 찾기 시작했다.
모텔로 갈까 하다가 일단 소방서에 들러보자 하고 가서 소방관에게 물으니 시장에게 전화를 해주었고, 시장이 소방서 뒤에 텐트를 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텐트를 치고, 양해를 구해 소방서에서 샤워를 하고, 코앞에 달러제너럴과 할인마트가 있기에 할인마트에 가서 신나게 장을 보고 돌아와 텐트 옆 테이블에서 아이스티와 아까 싸온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소방서 옆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예배시간을 기다리며 밖에서 놀고 있던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이사왔어?”
“아니 여기서 하루만 잘 거야.”
“저기 자전거좀 봐! 그녀는 바이커야.” 다른 아이가 말했다.
이렇게 아이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시카고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왔다고 하자 아이들은 세상 놀라워했다.
“앞으로 두달동안 엘에이까지 갈 거야.”
“그녀는 시카고에서 한달 걸려서 여기까지 왔고 두달동안 엘에이까지 갈 거래! 자전거로!” 한 아이가 흥분하여 새롭게 합류한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다.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흥분하여 얘기하는 학생들. 질문이 동시에 여럿에게서 쏟아져 정신이 없지만 즐거웠다.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했다.
“무섭진 않아? 저기서 자면?”
“여기 안전할 것 같아보여!” 내가 말했다.
“여기가 안전하다고? 풉” 여기가 안전할 리가 없다는 듯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가 대답했다.
아이들과 서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했다. 특히 곱슬머리를 한 아이가 가장 놀라워하고 관심을 보였다.
예배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교회로 돌아갔고 나도 조금 뒤 교회에 들어가 화장실도 사용하고 설교도 잠시 듣다가 나오려고 하는데 곱슬머리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러더니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안전하게 여행하길 기도할게.”
교회는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연다고 한다. 나는 오늘 브리스토까지 절대 올 계획이 아니었다. 오와쏘, 또는 아무리 멀리 가봤자 털사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거셌고, 히치하이킹에 계속 실패했고, 그러다 경찰아저씨를 만났고, 하필 잠이 들어 원래 가려던 털사에서도 한참 떨어진 브리스토라는 전혀 계획에 없던 곳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와 있다. 모텔로 가려다가 소방서에 왔고, 하필 오늘이 예배가 있는 수요일이어서 소방서 옆 교회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요즘 길 위의 인연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이 만남들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 그러니까 내가 좀 전에 a가 아닌 b를 택한 차이 때문에 생긴 이 만남들은 진짜 우연일까, 아니면 원래 만날 수밖에 없도록 정해져 있던 것이라서 모든 것이 이 만남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이 모든 만남들이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
경찰아저씨에게 안부문자를 보내니 답장이 왔다. 가는 길에 브리스토 경찰서에 들러 내 이야기를 하며 안전하게 보살펴 달라고, 그리고 엘에이까지 가는 길에 있는 다른 경찰들에게도 나를 보거든 잘 보살펴 달라고 얘기해놨다고.
이렇게 귀한 인연을, 바람이 만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