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찾아오는 손님
새벽이면 엄마를 찾는 꼬마 귀신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지 며칠째다.
새벽에 수시로 잠에서 깨고 다시 잠이 든다. 바로 잠드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지만 대부분 한밤중 새벽 기상이다. 달아난 잠은 다시 쉽게 오지 않는다.
아직 밖은 깜깜하다.
오늘은 1시, 아직 한밤중이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기필코 다시 자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어제는 3시, 다시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책이라도 읽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저께는 5시, 잠자기를 포기한다. 그냥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아침을 맞이하기로 한다.
육아의 시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과 전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유 수유 덕에 새벽에 깨는 일은 일상이었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가는 나의 손목은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감기에 걸려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생기면 아이는 수시로 새벽에 엄마를 찾았다. 그래도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새벽에 엄마를 찾는 일은 적어졌다.
‘이제 잠 좀 잘 수 있겠구나’ 했지만...
요즘 새벽에 먼저 깨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엄마가 되었다.
새벽에 자꾸 눈이 떠진다.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한 참의 시간이 남아있다. 내일 아침 아니, 오늘 아침도 출근은 해야 하고, 제대로 자지 못하면 하루 종일 피곤할게 뻔했다.
나도 잠을 다시 자고 싶다.
새벽녘에 깨서 다시 잠들기란 어지간히 쉽지가 않다. 어김없이 잠들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누웠다. 반듯하게 천장을 보고 누워도 본다. 잘 자는 아이를 확인하고 이불도 덮어준다. 세상모르고 드르렁 코 골고 잠자고 있는 남편을 보며 나는 코를 올려 찡그려본다. 나의 부스럭거림으로 아이가 나 때문에 잠을 깰까 노심초사하는 새벽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다시 잠들기 위한 나의 몸부림
온갖 생각들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는다. 사무실 일부터 아이 걱정까지 생각은 꼬리와 꼬리를 물고 끊어지지 않는다. 30분, 1시간, 시간은 흘러가는데
‘잠을 자야지, 잠을 자야지’ 하는데 잃어버린 잠은 다시 쉽게 오지 못한다.
‘더 이상은 안되지’ 이러다 날이 샐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1, 2. 3. 4. 5. 6, 7. 8, 9, 10. 1, 2, 3, 4, 5, 6, 7, 8, 9, 10......
구구단도 외워보고 100까지 수를 세어도 보지만, 다음 순서를 기억하는 머리 씀도 싫어 습관처럼 무의식으로 셀 수 있는 1에서 10까지 수 세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수를 세어 쉽게 잠드는 날은 정말 행운인 날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드물다. 1시간, 2시간을 침대에 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누워서 잠을 자야 되는데 하는 걱정으로 온갖 생각이 떠올라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새벽에 시체 놀이
새벽에 깨서 잠들지 못하는 상황도 힘들지만, 이 새벽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잠 못 드는 새벽에 다시 잠을 자게 하는 특효약은 책만 한 것이 없다. 잡스러운 생각 대신 책을 읽으니 그나마 의미도 있고, 또 읽다 보면 자야지 자야지 하는 억지스러운 노력보다는 쉽게 졸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이 자는 남편과 아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아주 조용히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작은 스탠드 불을 켜고 책 읽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일어났다. 분명 1시간 넘게 누워서 아이가 곤히 잠들었음을 확인했는데 정말 귀신같다는 말 밖에는....
오늘도 찾아온 손님
현재 시계는 아직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 5시 정도면 책 읽는 것마저 포기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지만,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다. 나는 1시간은 넘게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결국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몇 번을 다시 확인한다. 깜깜한 새벽에는 작은 불빛도 너무나 밝게 느껴진다. 머리맡 무드등 불빛을 아무리 약하게 해 놓아도 너무 밝다 느껴진다. 그렇다고 안방을 벗어나 다른 방으로 가면 아이가 깨는 걸 알아차리는 게 늦어 아이를 다시 재우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침대에 누워 날이 새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고민하다 생각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안방 안에 있는 화장실이라면 소리가 잘 들려 아이 뒤척임을 바로 알 수 있고, 화장실 안에서는 불을 켜고 있어도 안심이 될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책을 찾아들고 화장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아이의 화장실용 발 받침대에 앉아 읽다만 책을 펼쳐본다. 화장실 안에 있으니 볼일이 보고 싶어 지지만 물소리에 아이가 깰까 볼일을 보는 것마저 포기한다. 새벽 시체 놀이 대신 책을 읽을 수 있다니 행복하다 느낄 무렵, 10분이나 책을 읽었을까?
“엄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신! 새벽이면 엄마를 찾는 꼬마 귀신이다.!!
나는 급히 화장실에서 나와 아이와 같이 눕는다. 토닥토닥 아이를 다시 재워본다. 분명히 곤히 잠자고 있는걸 몇 번을 확인했는데, 1시간 넘게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에는 엄마를 찾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깨어난 아이가 그래도 그나마 다시 빨리 자주면 그날은 운수 대통한 날이지만, 바로 잠들지 못하고 1시간 이상 뒤척이는 날은 정말 화산 폭발 직전이 된다.
새벽에 깨어나 잠을 못 자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아이 눈치 보느라 책도 못 읽고 아이를 다시 재우는 것마저 원활하지 못하는 날은 물 없이 고구마라도 먹은 사람처럼 답답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깜깜한 방안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당장이라도 일어나 남편의 코를 잡고 비틀어 버리고 싶다. 언제나 나를 더 화나게 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남편이다.
그래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아이를 재우다 나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