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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달꼬달 Mar 30. 2022

스물여섯, 피아노를 배우다

직장인의 취미생활 즐기기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큰 목표 중 하나는 취미생활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거였다. 직업의 선택은 현실과 타협하여 차차선을 택했지만, 못 찾은 나의 꿈은 취미생활로 포상받으며 살겠다는 게 이유였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에 한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피아노 가방을 들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지금과 달리 맞벌이가 적었고, 초등학생까지 사교육에 목매던 시절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유일한 사교육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크기가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 정도는 갖고 있었고, 그 집 아이들은 엄마의 권유로 반강제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물론 친구가 다니는 게 부러워 엄마에게 졸라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가야 하는 나와는 달리, 학교 말고 다른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투박하기 그지없던 피아노 가방.

체르니, 바이엘이니 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상 단어를 제 입으로 말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릴 적 부러움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살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두면 좋을 테니까. 피아노만큼 대중적인 악기도 없으니까. 주변에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 집 근처에서도 배울 수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처음 소리 내가 조차 어려운 목관 악기들도 많은데, 두드리면 바로 소리는 나는 악기니까. 피아노는 어느 곡이든 솔로 연주 가능한 기본 중에 기본인 악기니까. 대중가요부터 클래식까지 연주해 보고 싶으니까. 피아노 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멋진 모습을 상상해도 기분이 좋으니까.     


하지만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두 달이 넘어갈 무렵 흥미를 잃어 그만두었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배우는 단계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바로 포기하고 마는 것처럼 나 또한 그 선을 넘지 못했다.


정말 피아노가 좋았다면 조금의 어려움이 닥쳐와도 버틸 힘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리 피아노를 좋아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정말 태어나 피아노란 악기를 처음 접한 사람이었고, 아주 기초부터 한 손으로 동요부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배우기를 한 달이 넘어가자 한 손에서 두 손으로 연주하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역시 처음이라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시기, 집 이사부터 사무실 일까지 바빠지자 나는 학원을 하루 빠지고 두 번 빠지고 하면서 자연스레 학원과 멀어졌다.


아이가 크면 멋지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엄마를 상상해 본 적도 있지만, 그건 그냥 드라마 속 이야기인 것 같다.      


누군가가 그랬다. 살면서 운동 하나, 악기 하나 정도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다시 배우게 된 악기는 우쿨렐레였다. 기타는 어려울 것 같고, 기타보다는 쉽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악기였다.


우쿨렐레를 배운 곳은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였고, 나 말고도 배우는 수강생이 여럿이었다. 모두들 우쿨렐레는 처음이었고, 선생님은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같이 노래 부르기를 시키셨다. 그때 느꼈다. 사람들이 악기를 왜 배우는지.      


초보 수준인 우리가 연주하는 곡은 쉬운 동요들이었지만, 박자를 못 맞추어 손가락과 입이 따로 놀기 일쑤였지만 재미있었다. 내 손은 바빴고, 내 귀는 즐거웠고, 내 마음은 신이 났다.  

   

매번 그렇듯 일상에 치이면서 나는 우쿨렐레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하게 되었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잘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즐기는 수준이라도 도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것인데, 뒤돌아보면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에 빨리 포기했던 것 같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우쿨렐레 일지, 아니면 다시 피아노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악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악기 배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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