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달꼬달 Apr 21. 2022

흰 머리카락은 슬프다

나이듦에 대하여

취업 준비 때문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다. 작은 도서관 책장에 앉아, 보기만 해도 졸린 두꺼운 책들과 씨름했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때였다.

가장 편한 옷차림을 교복처럼 입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녔다. 점심도 간단히 먹는데 늘 소화는 잘되지 않았다. 잠은 부족했다.


어른들은 흔히 인생 중 가장 예쁠 때 아무 꾸밈이 없어도 빛난다는 시절이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비 내리기 직전의 하늘처럼 우중충할 뿐이었다.


몇 년 동안 취업 준비가 끝나고 합격이란 선물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정말 이게 최선인가, 이러고 평생 밥벌이하며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으로 답답했다. 취업은 했지만 사직서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방황이 끝나지 않았던 20대가 싫었다. 지금도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다.


마흔이 되고 쉰 살이 넘으면 무언가 명확한 것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고 현재 있는 것에 만족하면 살고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스스로 ‘그래 열심히 살았다’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방황이 끝나고 걱정이 반으로 뚝딱 줄어들거라 생각했다. 20대라 순진했다.     


요즘 거울 앞에서 설 때마다 속이 상한다. 이제 젊음보다 나이 듦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굴 구석구석 보이는 주름살과 생기를 잃어가는 피부. 하지만 그중에 가장 슬픈 건 흰머리다.


서른 후반부터 조금씩 눈에 띄게 늘어가던 흰머리는 한두 가닥 새치 단위를 넘긴 지 오래다. 머리를 살짝만 들어 올려도 가득하다.


주름살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건 흰 머리카락이다. 뽑을 수 있는 단계를 넘었기에 뿌리는 남기고 눈썹 칼로 잘라보지만 이제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얀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아직도 꿈 많은 소녀 같은데 겉모습은 자꾸만 늙어간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쫓기는 기분이 든다. 빨리 나이 먹고 싶다 생각했던 때는 정신적 성숙함만을 생각했다. 젊은 육체를 가졌던 나이에 육체가 늙어간다는 게 어떤 것 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엄마는 자주 염색을 했다. 서른 후반 일찍 머리카락이 하얗게 올라왔다. 한 달에 한번 이상 꼭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생긴 것이다. 하얀 머리카락을 일찍 만나야만 하는 건 유전인 걸까? 엄마는 미안해한다. 본인을 닮아서 머리가 빨리 하얗게 된다며 좋은 점만 줬어야 하는데 왜 안 좋은 점은 물려줬는지 속상하다 하신다.     



염색은 머리숱이 적은 나에게는 특히 골치 아픈 숙제 거리다. 미용실을 갈 때마다 고민을 한다. 염색을 해야 하나? 조금만 더 버텨?


염색을 자주 하면 부작용이 많다. 두피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요즘에는 흰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흰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요란한 시술로 주름살을 지운다 한들 나이 듦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염색 또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나이가 먹었기에 가능하다.


나에게도 백발 스타일이 어울릴까?          

작가의 이전글 스물여섯, 피아노를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